"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4>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1>
<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2>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3>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4>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아지매예, 저 가서 하이소. 와 자꾸 이리 와서 하는기요?"

이날도 어김없이 싸움이 붙었다. 함께 일하던 선임자가 옆에서 캐이싱 벽면에 페인트칠을 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한소리를 했다. 옆에서 일하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엔진 파이프에 함석판을 붙이기 위해선 함석판을 파이프에 고정시키고 곳곳에 드릴질을 해야 한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자 일하던 여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금방 칠하고 갈 테니 신경쓰지 마이소"라며 자기 일을 계속했다. 사수는 "대체 이 좁은 곳에 이리 많은 사람이 들어와서 일하면 일은 우예하노"라며 구시렁대다 다시 드릴을 잡았다.

캐이싱 내부는 대부분 파이프로 채워져 매우 비좁고 밀폐돼 있었다. 그래서 일은 대부분 족장(발판) 위에서 해야 했다. 문제는 캐이싱 내에 우리 팀만 일하는 게 아니라 점이다.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부터, 용접공, 철을 절단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하청 업체 노동자들이 들어와 동시에 일을 했다. 그렇다보니 이런 다툼은 일상다반사였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장식용에 불과한 안전띠

밀폐된 공간 내에서 혼재작업을 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조선소에서는 이것이 당연하게 진행됐다. 열심히 드릴질을 하고 있는데 머리 위로 용접 불똥이 비처럼 내리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가끔 망치나 드릴 같은 것도 떨어졌다. 한 번은 안전모를 쓴 머리로 뭔가가 쿵 하고 떨어져 보니 빈 페인트 통이었다. 그나마 빈 페인트 통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기자 역시도 드릴을 떨어뜨려 족장 밑에서 일하던 사람의 머리를 뚫을 뻔 하기도 했다. 나사못이나 볼트를 떨어뜨리는 건 예사였다. 그런 게 아래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눈에 맞으면 실명까지도 이어질 수도 있다. 선임자는 얼마 전에 위에서 떨어진 불똥이 등으로 들어가 오싹했다고 한다.

아래층에서 일을 할 경우, 위에서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서로 다른 하청 업체에서 들어와 각자 맡은 일을 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청은 현장에서 이를 감독하거나 관리하지 않는다. 잘못 관리하다간, 오히려 불법파견이라는 점이 문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청 노동자들이 이를 조율하긴 불가능하다. 원청에서 주어진 시간 내에 공정을 끝마쳐야 하는데, 누가 먼저 일하고 나중에 일하겠다고 하겠나. 그렇다보니 늘상 싸울 수밖에 없다.

싸움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불상사도 일어난다. 얼마 전에는 노동자 중 한 명이 위에서 떨어진 용접 불똥이 눈에 들어가 수술을 받는 사고도 발생했다. 하지만 케이싱 내부는 여전히 안전을 위한 장치도, 감독도 없는 게 현실이었다.

족장을 풀어놔 6m 아래로 추락하기도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족장도 문제였다. 한 사람만 오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서로 왔다갔다 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위험하기 그지없다. 한 번은 지나가는 노동자에게 길을 비켜주다 발이 족장과 족장 사이에 끼어서 넘어지기도 했다. 넘어진 자리가 안전한 곳이어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아찔했다.

2월에는 누군가 족장을 연결해놓은 철사를 풀어 40대 여성이 6m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다. 원래 족장에 묶인 철사나 나사를 푸는 건 안전요원이 금지하지만 작업할 때 방해가 돼, 잠시 풀렀다 다시 묶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작업자가 깜박 잊고 다시 묶어놓지 않아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6m 아래로 추락한 여성은 반신불수가 됐다. 하지만 누가 족장을 풀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원청회사에서는 안전띠를 매고 일하라고 하지만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일해야 하는데,어느 세월에 안전띠를 매고 해체하고 또 매고를 반복할 수 있느냐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안전띠는 장식용에 불과했다.

그렇다보니 일할 때면 늘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스스로의 안전도 지켜야 했고,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캐이싱 안에서 일할 때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몸이 움찔거렸다. 신경을 너무 쓴 탓일까. 일을 시작한 지 며칠만에 몸살에 걸렸다. 혼자 숙소에 들어와 이불에 몸을 뉘일 때면, 평생 이렇게 일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자문하며 잠들곤 했다.

○ 위험의 양극화, 산재는 왜 비정규직에 몰리나
연재를 시작하며:<프레시안> 기자는 왜 조선소 하청으로 취업했나

- 기자가 체험한 조선소 하청 노동
<1> 취업 면접 때 묻는 건 딱 하나, "버틸 수 있겠나?"
<2> "목숨 갉아먹는 유리 먼지, 여기가 지옥이다"
<3> 점심시간 1분만 어겨도 욕설에 삿대질, 경고까지
<4> "6미터 추락 반신불수, 책임자는 알 수 없어"

- 조선소, 한국사회의 축소판
<1> 발 헛디뎌 죽은 다음날, 회사가 한 말은?
<2> 노동자도 아닌, 사장도 아닌, 넌 누구냐?
<3> 저녁 먹자던 아버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4> "5년동안 몰랐는데 내가 바로 불법파견이더라"

- 위험의 양극화, 대책은?
<1> 폐암 진단, 길고 긴 소송, 얻어낸 건 장례비
<2> "냉동고에서 질식사한 노동자, 그러나 회사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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