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에버랜드 사육사의 죽음, 산 자의 예의는 '진실' 규명"

그린피스와 스위스 NGO 베른 선언이 주관하는 '공공의 눈 시상식(Public Eye Awards)'이라는 행사가 있다. 매년 '수익성'만을 목표로 부도덕한 경영을 해온 기업 및 기업인들을 분야 별로 선정해 '공공의 눈 상'을 수여한다. 이번 '공공의 눈 시상식'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 도쿄전력(TEPCO)을 포함한 6개 기업이 누리꾼 선정 최종후보로 올라 와 있다. 누리꾼들의 투표는 오는 26일까지 진행된다. (☞바로 가기 : 공공의 눈 시상식)

한국 기업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은 반도체 공장에서 발생한 직업병 문제를 외면하고 무노조 경영을 위해 노동3권을 부정해 왔을 뿐 아니라 회장 일가의 탈법 세습, 태안 주민들에 대한 보상외면 등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여 왔다.

이런 가운데, 반올림과 국제민주연대 등이 기고를 해왔다. 공공의 눈 시상식을 통해, 일류의 옷을 입고 반인권과 반노동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삼성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것. <프레시안>은 4회에 걸쳐 이들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공공의 눈'과 삼성
"삼성이 기네스북에 오른 '무재해 사업장?"

25살, 그에겐 오래전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동물을 너무나 좋아했던 그는 동물사육사가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부푼 꿈을 안고 지원했고, 2011년 2월 삼성에버랜드 리조트 동물원 동물연출부서의 F-CAST(장기 아르바이트생)로 합격했다. 동물과 가까이서 함께할 수 있어 하루하루 행복하다고 했다. 말(馬)의 특성을 배우고 말과 눈으로 교감하는 순간은 그를 들뜨게 했다.

마장에서 말똥 청소를 해도, 한 여름 태양 아래서 말타기 연출을 해도, 발을 보호하는 가죽신 때문에 발바닥에 500원짜리 만한 굳은살이 생겨도 상처투성이 손이 되어도 행복했다.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25살 동물사육사 K양은 2012년 1월 6일, 사경을 헤맨 지 23일 만에 딸의 회복을 애타게 기원하며 뜬눈으로 밤을 지세우던 가족에게 작별의 인사도 남길 틈도 없이 너무도 허망하게 떠났다.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바로 가기 : 삼성 에버랜드 25살 사육사는 왜 갑자기 죽었을까?)

사인은 세균감염에 의한 패혈증. 패혈증이란 감염으로 인한 세균이 혈액 속으로 들어가 온몸에 번져 염증을 일으키는 병인데, 건강한 성인에게는 거의 발병하지 않으며 면역력이 극도로 악해진 상태의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하던 25살 여성이 에버랜드 동물사육사로 일한지 10개월쯤 되었을 때 갑작스런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은 많은 의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안타까운 죽음으로 묻힐 뻔한 K양의 사연은 그의 장례식 날 자신의 스마트폰에 친구와 주고받은 대화내용을 유족이 발견하면서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 K양 빈소 ⓒ프레시안(김윤나영)

부모님이 평소 알던 딸의 모습과는 다른 이야기하는 직장상사

2011년 12월 14일 오후 6시경 몸에 열이 심하게 나고 온몸에 통증이 있어서 K양은 에버랜드 근처 병원에 갔다. 12월초부터 몸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문진 후 의사의 처방에 따라 링거를 맞고 안정을 취한 뒤 기숙사로 돌아갔다.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그런데 12월 15일 새벽에 통증이 너무 심해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어 검사를 하니 복부 출혈이 의심되어 아주대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상태는 더욱 나빠져만 갔고 결국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광주에서 부모님이 올라오셨고 그날부터 중환자실 근처를 부모님이 지키게 되었다. 그리고 특이했던 건 거의 처음부터 에버랜드 강**책임이 중환자실 앞에서 부모님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 부모님은 처음엔 '삼성은 사원이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하니 가까이서 신경을 많이 써주는구나' 싶어 고마워 하셨다. 매일 중환자실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강**책임은 간간히 부모님에게 딸의 에버랜드 동물원 생활을 얘기했다.

그런데 이상한 얘기를 하곤 했다. 하루는 "K양이 동료들과 술을 먹고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또 어느 날은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자주 먹었고 얼굴에 생긴 상처도 그 때 생긴 것으로 안다", "일하면서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남자친구가 별도 안 좋은 친구라고 한다" 등 부모님께는 언제나 성실하고 예쁜 딸이기만 한데 직장 상사를 통해 듣는 딸의 생활은 부모님이 알고 있는 딸의 모습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그럴 수도 있겠지 직장 상사가 말하니 없는 얘기는 안 하겠지' 싶어서 속상했지만 달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다. K양은 처음에 의식이 거의 없었고 다른 합병증이 오는 등 상태가 안 좋다가 상태가 호전되어 의식도 차리고 미음도 먹으면서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 가는 듯 했다.

기뻤던 것도 잠시,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 입원 23일째, 2012년 1월 6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슬픔에 잠겨 장례를 치루던 1월 7일, 부모님은 우연히 K양의 스마트폰을 켜서 딸이 남긴 모습을 보려했다. 딸의 지난 일상을 살펴보던 중 가족 모두를 놀라게 한 메시지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얼굴 상처, "술 먹고 넘어져 다쳤다"…과연?

친구들과 주고받은 싸이월드 메시지와 카카오톡에서 "동물사 철창문에 부딪혀서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이었다. 중환자실을 지키던 직장상사는 분명 '술 먹고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다고 했는데 주인 잃은 핸드폰에 적혀있는 내용은 달랐다. 부모님은 장례식장에 와 있는 직장 상사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황급히 바깥에 다녀온 그 상사는 '자신은 술을 먹고 다쳤다고 들었고 동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진실공방이 시작되었다.

스마트폰에는 대화내용뿐만 아니라 얼굴의 상처가 잘 보일 수 있도록 본인이 스스로 찍은 사진이 여러 장 남겨져있었다. 왼쪽 얼굴 광대뼈 부근에 지름 4cm이상 원모양 짙은 색의 멍이 올라와있고 세로로 3줄 정도 스크래치가 난 곳에 노란색 고름이 차 있는 상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었다. 갑작스런 친구의 부음소식에 연신 눈물을 흘리던 고등학교 단짝 친구는 당시 주고받은 내용을 기억했다.

2011년 12월 12일 K양이 상처 난 얼굴 사진과 함께 "동물사 철장문에 부딪혀서 다쳤다"는 글 올린 것을 12월 14일에 보고 "얼굴 누가 그랬느냐 혼내주겠다"고 했더니 "투칸이란 새가 있는 철장에 부딪혀서 그랬다"는 댓글을 주고받은 뒤 다시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이어서 하면서 어떻게 하다 다친 건지 재차 물으니 "들어오고 나오는데 후배랑 엉켜서 동물사문에 박았다"고 명확히 말했다.

K양은 이제 더 이상 말할 수 없는데 회사에서는 술을 먹고 넘어져서 다쳤다 하고, 12월 14일의 카카오톡의 K양은 동물사문에 부딪혀서 다친거라고 한다. 이제 'K양은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는데 패혈증의 원인은 상처 감염으로 추정되고 얼굴의 큰 상처는 동물사철장문에 동료와 엉켜서 넘어지면서 다친 것'까지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일하다 다친 것이 어느 정도 밝혀진 이상 업무상 재해 즉 산재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 망자는 엉켜서 넘어진 후배가 있다고 하지만 그 후배는 나타나지 않고 회사는 술 먹고 넘어졌다는 기존 진술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진실공방 가운데서 가장 큰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은 유족이다. 조작될 수 없는 증거가 나왔는데 삼성 에버랜드는 "술 먹고 다쳤다"고 말했는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유족은 무슨 이유로 사실과 다르게 망자를 욕되게 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싶었다. 부모님들은 중환자실에 처음 왔을 때부터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의문점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딸이 일하던 에버랜드 동물원은 커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일 했을 텐데 평소 동료들과 잘 어울려서 지냈다고 알고 있었는데 중환자실에 문병 오는 동료들이 없었다.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친구들의 증언과 K양의 유품을 통해 다른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패혈증은 상처로 인한 감염과 함께 과로로 신체의 면역력이 약화되었을 경우 그 확률이 높아진다. 10개월간 바쁜 일정 때문에 광주 집에는 2번 다녀갔고, 아침 8시전에 출근하고 저녁에는 8시정도까지 야근을 자주 했다는 것이 친한 친구들의 증언이다.

자주보고 연락하던 친구들은 K양이 에버랜드 입사 후론 그와 전화통화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일이 끝난 후에는 몸이 피곤하고 다음날 일찍 출근해야 해서 밤에도 전화통화를 자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K양은 고등학교 때부터 다이어리를 꼼꼼하게 즐겨 쓰던 습관이 있었는데 그 좋아하던 다이어리도 제대로 쓸 시간이 없었다고 하고 실제로 그의 다이어리는 빈공간이 많았다.

K양은 에버랜드 입사 전 키 167cm이고 몸무게가 80kg 가까이 나가던 여성으로 상당히 큰 체격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12월 병원 의무기록지에 K양의 몸무게는 68kg으로 적혀있다. 가족과 친구는 에버랜드 입사 후 갑자기 살이 빠진 모습을 보고 놀랐었다고 한다. 성수기인 5월부터 9월까지 에버랜드에는 많은 사람이 가는데 K양의 임금명세서상 임금은 성수기에 처음 임금의 2배 가까이 되었다. 늘어난 연장근무수당은 그의 근무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회사는 업무환경이나 근로시간의 문제가 없었다는 해명만 신문기사를 통해 했을 뿐이다.

진실을 말하는 게 산자의 예의

이젠 에버랜드 동물사육사의 산재신청사건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위한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에버랜드와 망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들 간의 진실규명의 문제가 되었다. 산업재해는 일하는 과정에서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하여 마련한 공적 보험제도이다. 일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사업주의 과실이든 재해자 본인의 실수이든 과실이든 상관없이 재해가 일하는 과정에서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것이면 그것이 산업재해인 것이다.

사업주는 산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산재보험에도 가입하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해 작업환경을 개선할 의무가 있다. 사업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의의 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면 이에 대처하는 회사의 방식이다.

업무상 사고가 났으면 그 사고과정과 내용을 거짓 없이 밝혀서 재해자 또는 유족에게 사실을 알리고 회사의 과실 있는 부분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산재 신청시 적극적인 협조를 하여야 한다. 회사가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하여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에버랜드에서 같이 웃고 생활하던 동료들은 입을 다물고 있고, 회사는 K양 죽음의 결정적 계기가 된 얼굴 상처가 '개인적으로 술 먹고 다친 상처이고 일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젠 말할 수 없는 K양은 2011년 12월 14일 카카오톡에 "동료 후배와 엉켜서 넘어지면서 동물사 철장에 부딪혀서 다쳤다"고 말하고 사진도 찍어두었다. 회사가 K양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사실들을 숨기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회사는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회사는 K양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였다고 인정하는 것, 산재를 인정하면 망하는가. 죽음 앞에서 어떠한 이윤도 명예도 다 내려놓고 진실만을 말하는 것이 산자의 예의이다. 삼성 에버랜드는 더 늦기 전에 예의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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