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남겨진 몫

[이슈 인 시네마] <경계도시 2> 지지릴레이 리뷰 (마지막)

※ 2003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무려 37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벌어진 마녀사냥 광풍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 <경계도시 2>가 지난 달 18일 극장에서 개봉해 이제 한 달을 맞았다. 개봉 전부터 사회 각계 인사들이 이 영화에 특별한 응원을 보내며 프레시안에 릴레이 지지 리뷰를 기고해오고 있는 가운데, 영화를 본 뒤의 감동과 아픔을 담아 홍형숙 감독에게 직접 리뷰를 보내온 한 관객의 리뷰로 이 시리즈의 마지막을 맺는다. 자신을 "양평동에서 주부, 예인이 엄마"라고 소개한 이시애 씨는 "근 5년여 시간을 고립된 주부로 살아온 사람이 오랜만에 감동의 여운이 짙은 '영화'다운 영화를 봤다"며, 홍형숙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담아 "작은 힘이라도 되고자 지극히 사적인 영화감상문을 써"서 메일로 보냈다. 이시애 씨와 홍형숙 감독의 동의를 얻어 이 메일을 프레시안에 공개한다. 관객 개인이 보내온 리뷰인 만큼 줄바꿈 등은 원문 표기 그대로 따랐다. - 편집자 주

2003년 9월 그때...., 생각의 시계는 7년 전으로 돌아간다.
재독철학자, 송두율... 그의 37년만의 감격적인 귀향, 그에겐 어떤 감동이었을까?
내 기억의 초침은 빠르게 7년전 그 시간으로 돌아갔지만
실제로 바로 그 때, 송두율, 그가 그토록 고대했던 귀향의 행보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내 기억은 미미했다.
국정원을 오가는 그의 열흘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관객으로서 극적인 그의 귀향에 대한 상투적인 기대가 여지없이 깨지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의 자투리가 스멀스멀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아, 그때 복잡한 일들이 있었지... 간첩이라고 했든가, 아니든가? 구속되었는데...
독일로 돌아간 것으로 아는데...'
그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영화관 허공속을 양심없이 둥둥 떠다닌다.
감독은 무심했던 내 기억의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오롯이 정리해 간다.
그리고 관객인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아, 바로 저 시간, 그때...나는 무엇을 했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7년 전 그 시간 속의 나는 스크 린앞에 다시 '현재'로 서 있다.

다소 무거운 정치적 혹은 사회적 사건인 송두율 교수의 이야기가
가물가물한 기억까지 헤집으며 사건과는 무관했던 나에게까지 뒤늦은 자기반성을 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이 말한 첫 번째 시기가 두 번째 시기로 넘어가는,
조사를 받던 송교수의 국정원 출입이 검찰청 출입으로 바뀌면서
나는 완전히 그 시대의 '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에 나는, 시끄러운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그가 진정 '김철수'인지 아닌지
그 여부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에 대한 약간의 배신감까지 느끼면서 말이다.

▲ <경계도시 2>

그러나 송두율, 그는 경계인이다.
누구의 편도 아니었고 남북한을 넘나드는 경계인...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외형적(?) 한국인이지만
사상적으로는 남북한 어느 쪽도 아닌 경계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김철수이든 아니든 자신의 반쪽짜리 조국이 불렀기 때문에 그는 달려갔을 테고,
김철수로 불리는 것을 알고 갔는지, 모르고 갔는지가 경계인으로서 그에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무책임하다고 지탄받을 수 있다.
적어도 경계인이라면 남북한 동시 방문이 가능할 때까지 균형을 잡았어야 했다고... 그러나 나는 그 역시 대한민국의 산천에서 태어난 감성을 지닌 인간으로 이해하고 싶어졌다. 타향살이에 지치고 고국산천을 그리며 대한민국의 화합을 누구보다 염원하는, 그래서 때론 학자적 이성보다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달려가고, 반가운 감정에 휩쓸릴 수도 있는 분단 대한민국의 똑같은 상처를 지닌 인간 말이다.
뭐 그리 위험한 감성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는 칼날같이 중요한 문제가
이데올로기 대립이 없는 인간에게는 심각하지 않은 문제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그의 귀국을 도운 진보진영의 친구 동지들에게조차 강요받기 시작한다. 그가 노동당 서열 몇 위, '김철수'라고 불리워지는지 알고 갔는지 모르고 갔는지 그 여부를 기억을 파내서라도 정확하게 대답하라고...
그리고 그들은 그가 결코 김철수가 아니며 노동당원에 입적한 사실도 없음을 말하라고 종용한다. 그때의 나에게도, 영화 속 그때 우리에게도 '경계인'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없다. 송두율, 실제로 그가 남북한 누구의 편이었는가만 중요했다.

그 시절의 대중으로, 혹은 양분된 여론의 한 축으로 살았던 내가 그 시간을 빠져나와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 객관적 시선을 서서히 찾게 된 시점은 원탁회의 씬이었다.
송교수가 구속되기 직전, 검찰청을 오가던 제 2시기 끄트머리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거침없이 진보집단의 이익을 송교수에게 강권하던,
솔직을 넘어서 노골적이까지 했던 그 남자, 화면 속 맨발의 액션 배우(물론 실존인물이다) 덕분이었다. 맨발의 액션 배우가 그나마 우아함을 지키며 '진보'라는 이름으로
아슬하게 포장되어 있던 나의 집단적 이기심을 확 깨고 말았다.

개인적으론 구속의 위기를 모면하고, 송두율 한 사람의 문제가 전 진보진영, 그리고 정권을 잡고 있던 노무현 정권의 치명적 약점이 되는 상황을 극적으로 탈출하기 위해 소집된 숙소 회의... 그리고 그 테이블에서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다. 37년을 사상가로서 학자로서 '경계인'이기를 고집했던 개인의 삶과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가장 인간다운 삶,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30여 년을 이 땅에서 고군분투했던 진보집단의 미래가 충돌한다.
그리고 마침내, 37년 학자로서, 사상가로서 살아온 '경계인'으로서 그의 삶은
깊은 성찰과 이해를 거부당한 채 무릎 꿇고야 만다.
노동당 탈당, 독일국적 포기, 대한민국 헌법 준수의 각서 등등 서너 가지 서약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표된다. '실제로, 그는 노동당원이었는가 아닌가' 사실 여부를 떠나 그는 남한 대중들이 믿고 있는 그에 대한 허상적 진실에 대해 깊은 자기반성과 후회를 하며 북한이 아닌, 남한 정부만이 그의 조국이며 그가 바라는 정의임을 자백하고, 사상가로서 철학자로서 살아온 그의 37년을 추락시킨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나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진 그는,
국가보안법상 공고사실에 무죄를 선고받는다.
훗날 독일국적 취득 후 방북사실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그는
그토록 그리던 고향 마을방문이라는 소원을
석방 후 단 이틀만에 이루고 대한민국을 떠났다.

▲ <경계도시 2>

'오랜 외국생활에 시달리는 제 영혼의 외로움을, 멀리서 달래주었던
고향 제주도의 검푸른 바다와 광주의 뜨거운 대지와의 재회를 간절히 바랍니다.
- 항소심 최후진술 中, 송두율 -


국어사전의 진보는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진보'를 진리를 품은 가치로 착각하며 산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만약 내가 생각한 대로 진보가 진정한 정의를 품은 가치였다면,
그때의 나는, 우리는... 철학자로서 송두율 개인이 가진 사상적 자유를
집단의 이기심으로 그토록 짓밟을 수 있었을까?
'진보'가 그저 사전적 의미만을 겨우 지닌다면, 정도나 수준이 높아지기 위해
개인의 영혼을 또 다시 짓밟을 수 있는 집단적 이기심일 뿐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고착될 때 '보수'와 어떻게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구치소로 송치되기 위해 차에 오르던 송교수의 인터뷰가
마음에 슬픈 잔영으로 남는다.
"한국에 오신 것을 후회하십니까?" 라는 기자의 질문에 "네, 후회합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간단히 한마디만 하십시오............. "
송두율의 37년을 무너뜨리고 급기야 무릎꿇게 만든 언론은 비로소 그에게
광적인 풍파 속에서도 고국방문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학자적 꿋꿋함, 강단을
요구한다.

제작기간, 7년 동안을 거듭... 사건과 거리두기 위해 싸웠다는 홍형숙 감독의
지난했지만 값진 번뇌를 아무런 노력없이 104분 동안 단숨에 갖게 해준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관객 중 혹자는 갑갑함을 호소하고, 뒤늦게 송교수에 대한 배신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경계도시 2>가 누구에게나 대한민국의 그때 그 시간, 그 사건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시간이었다면, 다큐멘터리로서 의무를 다한 것은 아닐까?
어떻게 결론짓고,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지는 관객, 즉 현재를 사는 대한민국, 우리의 몫이다.

<경계도시 2> 지지 릴레이리뷰 이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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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게인 경계인 : 경계에 갇힌 우리의 초상 - 하라 인권영화제 활동가
<6> 불가능했던 한 민족주의자의 귀환 - 이택광 문화평론가 · 경희대학교 교수
<5> 우리 안의 송두율, 망각과 기억 사이 -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4> 2003년 그리고 2010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질문 - 김이환 소설가
<3> 사라진 경계도시를 기억하기 : <경계도시 2>를 감상하는 두 가지 시선 - 이희영 대구대학교 교수
<2>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추민주 명랑씨어터 '수박' 대표
<1> 채플린과 007, 그리고 <경계도시2> - 서복경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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