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정론'의 비밀은 '신자유주의 보수연합'

<기고> '지역주의 극복' 연막 걷고 '계속 집권' 속셈 봐야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다. 권력의 일부를 '이양'하는 대신 선거구 제도를 개정해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는 발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양극화 해소, 초미의 관심사인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평화 정착 등을 위해 연정을 제안한다면 그나마 이해가 가겠지만, 선거구 개편을 위해 그것도 대연정을 제안하니 대중들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독일 대연정을 예로 들면서도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연정을 했는지 그 내용을 살펴보지 않으니 제안자들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때 개혁을 모토로 내세웠던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중 한 사람은 연정이 성사되면 국보법안법 개폐 문제를 2-3년 유예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밝혔는데, 대연정 제안과 관련해 그것을 다시 재구성해보면 국보법을 2-3년 연장할테니, 아니 거기에 덧붙여 이른바 사문화되긴 하였지만 '4대 개혁입법'을 없던 것으로 할 테니 연정을 하자고 한나라당에 제안하고픈 것이 진정 이들의 속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작 이렇게 정리해서 말했다면 대중은 이 제안의 의미를 쉽게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여전히 이들은 대중을 현혹시키고 있다. 선거구 개정 문제에 관해서도 그것이 협상의 대상이지 연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지적이 수차례 제기된 바 있건만, 계속 연동하여 제기하니 대중은 왜 그러는지 의아해 할 뿐만 아니라 짜증스러워 하고 있다.

***"연정 제안은 지역주의 극복이 아니라 '계속 집권'의 목적"**

바로 이렇기 때문에 대연정 제안이 지역주의의 극복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제로 최소한 권력을 분점해서라도 계속 집권하겠다는 발상을 노골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잃지 않고 있다. 즉 선거구 개정이 이뤄진다면,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지 이미 확보된 지역에 더하여 주요 경쟁세력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지역에서 일정한 지분을 '서로 나눠가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은 지역정당이라는 딱지를 떼고 '상생의 정치'를 실현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집권 자유주의정치세력이 말하는 '실용주의 정치'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대연정 제안에 대해 다수 대중은 물론 정치권에서조차 '썰렁한 반응'을 보이자 제안자인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의 핵심이 선거구 개정에 있다는 '수정된 의견'을 밝힘으로써 본의 아니게 이러한 해석의 적실성을 뒷받침해 주었다. 하지만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로 인해 대통령이 너무 경솔하게 발언하고 행동한다는 대중의 질책만 높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안에 주목하는 이유는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거기에 중요한 진실 하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번 제안을 통해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그 동안 신주단지 모시듯 한 '민주개혁세력'의 지위를 스스로 내놓으며 보수정치세력으로 전화했음을 공식 천명했다는 점이다. 사실 과거 권위주의 시기 혹은 파시스트지배 시기를 근거로 할 때, '반독재운동'을 했던 이들과 지금 '한나라당으로 상징되는 수구세력'은 '민주세력과 반민주세력,' '독재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상징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스스로를 '정통 민주화운동세력', '개혁세력'으로 규정하면서 대중에게 다가갔고 그 결과 그토록 염원하던 집권의 꿈을 이루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이 집권의 궤적은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집권의 자랑스러움' 이면에 그것을 내리누르는 암울한 그늘이 항상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늘 속에는 이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위상의 적나라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이들의 집권이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해 왔던 수구정치세력들과의 '연대'를 통해 실현되었다는 '태생적 한계'로 집약된다. 바로 3당합당, DJP연합이 그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큰 연정이 어디 있는가. 이미 이들은 내용적으로 '보수대연합'이라는 '연정 아닌 연정'을 해 왔던 것이다.

***정몽준과의 단일화 파기 때 '독자 집권'의 한계 이미 드러나**

국민통합21과 후보단일화 합의까지 갔다가 뜻하지 않게 독자집권에 성공한 노무현정권 또한 이런 맥락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오히려 후보단일화 합의의 파기라는 돌발 상황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자립'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반증해 주었다. 즉 국민통합21 측의 후보단일화 합의의 파기로 인한 독자집권은 일견 행운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수구세력들과의 '연정'에 근거한 안정적 지지기반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이 다른 정권들과 달리 집권 초기부터 한총련 소속 학생들의 미군부대 진입시위에 대한 책임으로 행자부장관이 해임이라는 쓴맛을 본 이래 작년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한나라당의 공세로 '곤욕'을 치러야 했던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이러한 취약한 지지기반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의 부재다. 진정한 위기는 위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소, 극복할 수 있는 위기관리능력이, 그것을 추구할 헤게모니가 없다는 사실에 있다. 바로 여기에 이들의 딜레마가 있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이들이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진보세력'과 '연대'를 하든지, 아니면 다시 자신들의 집권을 엄호해주었던, 그러나 지난 선거에서 뜻하지 않게 헤어졌던 '수구세력'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시 그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물론 '더 많은 민주주의'를 바라는 많은 대중들은 전자의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하면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 이들이 직면한 '탄핵위기'마저 돌파해 주었지만, 항상 그랬듯이 그 희망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정치적 행보를 추동하는 힘은 과거 이들의 '민주화 전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들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다. 비록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박정희'로 상징되는 과거사 문제의 청산을 제기하며 이른바 수구정치세력과 소동을 벌이곤 하지만, 그들은 허울만 가지고 싸울 뿐, 오히려 박정희정권이 추구했던 자본지상주의, 성장제일주의, 국가주의 등의 발상과 행태를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다.

***박정희를 청산한다며 그 후계자들과 손 잡는 행태…**

이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한나라당과 함께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적 동맹자'로 기능하고 있다. 권력의 중심은 시장에, 자본에 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신자유주의에 규정된 대중의 고통된 삶을 해소시켜 줄 정책을 가지고 수구정치세력과 치열하게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런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적 차이가 크지 않다고 발언한 것은 이러한 관계를 정확히 뒷받침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들이 과거 자본의 착취와 파시스트 권력의 억압 속에서도 자신들을 지지하며 함께 했던, 그럼에도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다수 국민대중의 희망과 요구를 안중에 둘 리 없다.

바로 그렇기에 과거사를 둘러싼 다툼은 '민주세력이었다는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 현재 자신들의 반민주성, 반민중성을 감추고자 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권력경쟁의 수단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보수연합'의 공식화가 연정론의 비밀**

따라서 이들이 정치의 수단인 연정론에 집착하며 그렇게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목적은 글로벌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신자유주의 보수연합'을 정치적, 법제도적인 수준에서 공식화시키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로 이것이 연정을 통한 지역주의의 극복이니, '비정상적 정치'의 해소니 하는 수사 속에 감추어진 대연정의 진정한 비밀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리 우회적으로 가르쳐도 그 공동의 목표를 알지 못하고 단기적 집권에만 눈멀어 있는 한나라당에 대해 답답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더 많은 민주주의'와 진보를 바라는 세력들, 대중들이 연정론의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그것의 이러한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성격에 주목하며 비판하는 근본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정작 '고마운 것'은 이번 대연정 제안을 통해 자신들이 더 이상 개혁민주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함으로써, 본의는 아니겠지만 대중들이 그들의 성격과 위상을 정확히 볼 수 있는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정치적 행보는 이미 97년 IMF사태를 계기로 이들이 신자유주의로 귀의하면서 구조화된 것이지만, 그래도 국민 대중들은 이들의 과거 민주화운동 전력에 기대어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그 주의설적인 희망은 객관화되면서 냉정함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대중은 이들이 무슨 제안을 하든지 그것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그나마 허울뿐인 개혁민주주의 세력으로서의 위상을 포기한 지금, 이들이 신자유주의를 매개로 강제되고 있는 비대칭적이고 억압적인 사회관계들을 치유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강제하고 있는 장애들은 얼마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할지 알 수 없으나 자본과 융합된 제도화된 권력, 정치세력들이 아니라 그로부터 고통받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는 대중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넘어야 할 몫으로 남겨져 있다.

바로 그렇기에 대연정 제안을 통해 이제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마감하며 보수세력임을 선언한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말해주어야 한다. '개혁자유주의 정치세력이여 안녕!'이라고.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