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외국인 근로자' 무방비 (<문화일보> 2002. 9. 28)
"에이즈에 걸린 외국인들이 국내에 체류할 수 있는 것은 제도에 허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YTN TV 2005. 1. 24)
'에이즈 요리사' 호텔서 일해 (SBS 2007. 3. 13)
독자들을 겁주는 기사 제목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확산된 '공포'는 지난 1987년 제정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의 취지에 철저히 복무한다. 그것은 '질병 예방'의 수단으로 '죽음에 이르는 전염성 강한 질병'이라는 '공포'의 확산을 취하는 통제의 전략이다.
"에이즈는 '동성애자 질병'"이라는 오해, 그리고 "이주노동자, 성매매여성들이 에이즈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편견 역시 이런 공포를 통해 재생산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의 피해자는 오히려 에이즈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곤 하는 소수자들이다. 안전하지 못한 성관계에 구조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이런 소수자들은 존재 자체를 에이즈와 연결시키는 편견과 차별에 노출돼 있다.
그뿐 아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정책은 이들을 에이즈라는 질병의 사회적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가족 동반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 조항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에이즈 걸린 외국인은 한국에서 농구선수도 못 한다
여기서 잠시 우리 보건당국이 취해 온 태도를 돌아보자. 초기의 예방 정책은 AIDS가 외국인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이라는 인식에 바탕한 것이었다. 그래서 AIDS에 감염된 외국인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배제하는 제도와 관행이 확립됐다.
법무부 출입국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04년 7월말 현재까지 총 361명의 감염자를 통보 받았으며, 그 중 사망 17명, 국내체류중인 자(국민의 배우자, 화교, 난민인정자 등 포함)가 29명이며, 나머지 315명을 강제퇴거 등 출국 조치했다.
'편견', 그에 기초한 '배제'와 '차별'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가장 강한 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에이즈에 감염된 외국인은 요리사는 물론이고 농구선수, 축구선수도 할 수 없다는 편견은 앞서 인용한 언론 보도에 거침없이 드러난다.
그리고 언론의 이런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것은 외국인 감염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강제퇴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출입국관리법의 규정 때문이다.
사실 이런 규정은 질병에 대한 편견이 인종적 편견과 만나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사형선고'를 법적으로 정당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은폐된 제도적 폭력성, 그 '합법적 폭력'의 공간에서 언론, 그리고 우리 사회가 보여준 오만함은 과연 떳떳한 것인가?
내국인은 강제격리하지 않으면서 외국인은 내쫒아
사실 AIDS에 감염된 '외국인'을 감염 사실만으로 '추방'(강제퇴거)할 수 있다는 규정이 정당화되는 것은 감염된 '내국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할 수도 있다는 인식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난 1999년,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국민을 강제격리하도록 규정한 조항이 삭제됐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에 대해서는 강제퇴거 조항을 유지하고 있는 법은 우리의 인식 속에 격리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강제격리와 강제퇴거는 인식의 뿌리를 같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국인' 감염인에 대한 '강제격리'가 부당한 것이라면, '외국인' 감염인에 대한 강제퇴거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폐지되어야 한다.
지난 2004년 유엔에이즈(UNAIDS)와 국제이주기구(IOM)는 HIV/AIDS 감염인의 국가 간 여행 규제에 관한 권고안 (UNAIDS/IOM Statement on HIV/AIDS-Related Travel Restrictions)을 발표하여 각 국가가 효과적인 이주민 에이즈 정책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선진국, 강제퇴거 규정 없어
한국과 유사한 형태로 출입국관리법을 규정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에이즈 감염을 입국금지 및 강제퇴거 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은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이 '그 나라의 국민과 평등하게 처우 받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생명의 유지와 회복하기 어려운 건강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긴급하게 필요한 의료를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또 감염 사실만을 기준으로 행해지는 외국인에 대한 강제퇴거는 헌법 및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금지하는 자의적인 차별로서 부당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 외국인 감염인은 내국인과 동일한 권리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일찍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에이즈를 '사회적 질병'으로 규정하고 예방정책의 기본 관점을 '감염인 인권 보장'으로 확립했다. 이런 사회에서 진행되는 에이즈 감염 외국인에 대한 논쟁을 한국사회의 그것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논쟁의 단계가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에이즈 감염인 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유럽, 미국 등에서는 마약 밀매자라는 이유로 강제퇴거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보다 에이즈 감염인인 경우가 논란이 된다. 본국으로 강제퇴거될 경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대해 법원이 인권의 관점에 서서 전향적인 판결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06년 11월 질병관리본부는 국내 체류 외국인을 위한 '외국인 에이즈예방 지원센터'를 개소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에서 감염 사실이 확인된 외국인은 예외 없이 출입국관리국으로 통보되고, 그 결과 강제퇴거 절차가 진행된다.
우리가 정작 '공포'를 느껴야 하는 것은 이런 제도 뒤에 도사리고 있는 노골적인 모순들이다. 이러한 편견과 모순, 허위의 공간에서 에이즈와 같은 사회적 질병이 매개로 자라난다.
에이즈는 알려진 전염병 중에서 전염력이 매우 낮은 유형에 속한다. 이제 한국사회도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다른 논쟁선을 그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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