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민주주의, '노동자 주먹' 없었다면 불가능!

[7년의 학습 : 세계 노동 운동사]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도합 3권, 1984쪽의 대작. 그것도 <세계 노동 운동사>(후마니타스 펴냄)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니 이 책을 만든 사람의 의지와 결의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책을 쓴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은 지난달 23일 충정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출간이 "엄청난 난산(難産)"이었다고 토로했다.

김금수 이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현장 노동 운동가로 활동했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2000~2003), 노사정위원회 위원장(2003~2006), 한국방송(KBS) 이사장(2006~2008) 등 다양한 공무 현장을 거쳤다. 한국 노동 운동의 50년 이상을 면면을 지켜본 그로서도 2000년대 이후의 상황은 특히나 더 절망적이라고 한다. 자본의 공세는 점점 더 광범위해지는데 노동 세력은 일치된 노선과 전략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또한 손배가압류라는 실질적 노동 3권 억압 기제가 도사리고 있을 정도로 제도적 발걸음도 더디다.


▲ <세계 노동 운동사>(1권, 김금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이러한 절망 속에서 그는 2007년부터 '세계 노동 운동사' 학습방을 꾸렸고, 한 기 십여 명, 2013년까지 도합 오십여 명 되는 멤버들과 함께 학습하고 토론한 결과를 책으로 냈다. 이 책에는 14~15세기 자본주의의 맹아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주요 흐름들이 망라되어 있다. 잘 알려진 선진국의 사례뿐 아니라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일차적으로는 노동 운동가와 노조 활동을 위한 자료집이지만, 자신을 노동자라 자각하지 못하는 수많은 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새로운 역사서이기도 하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에드워드 카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이 책을 통해 "1848년 프랑스 혁명을 공부하면서 촛불 집회를 이야기하고, 러시아 볼셰비키를 지켜보면서 국내 정파 갈등의 돌파구를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거듭 상기시키면서도 "노동 운동사는 사건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실패의 연속이지만 패배하고 또 패배하면서도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이 조금씩 형성되어 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치열한 학습으로 탄생시킨 대작

프레시안 : <세계 노동 운동사>가 나오게 된 과정을 통틀면 10년 정도라 하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 출간까지 오게 되었나.

김금수 : 2000년인가 노동부 산하 한국노동교육원에서 발행하는 <노동 교육>이라는 기관지가 있었다. 거기 기자 한 사람이 세계 노동 운동사의 주역 10명을 골라 그 이야기를 연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봐라, 과연 주역이 있나? 노동자들 하나 하나가 주역인데. 그러면 10대 사건은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런데 사건은 흐름 있게 연결이 안 된단 말이지. 그럼 그냥 세계 노동 운동사를 쓰는 건 어떻겠냐고 하더라.

자신은 없었는데,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국제 노동 운동사-역사와 이론의 제문제>(전 8권)를 활용하면 억지로 좀 쓰겠지 해서 시작했다. 원고를 몇 번 쓰다가 2003년에 내가 노사정위원회 들어가면서 연재가 중단됐다.

그러다 2007년, '세계 노동사 학습방'이라는 걸 꾸려봤다. 민주노총, 전교조, 철도노조의 노동 운동가들이 모여서 한 달에 두 번씩 만났다. 거기서 공부하고 토론한 결과물이다. 세미나 전에 갖고 있었던 초고는 극히 일부였고, 세미나를 통해 거의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나간 셈이다. 양이 차이니까 출간 이야기가 나왔고,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가 <경향신문>에 파리 코뮌에 대해 쓴 글을 보고 내가 연락했다.

프레시안 : 세미나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나.

김금수 : 미리 에이포(A4) 용지 서른 장쯤 되는 자료를 올려놓으면 참가자들이 먼저 그걸 읽는다. 다 읽었다는 전제 하에 순서대로 발제자가 되어 우선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서로들 답변한다. 그리고 토론거리 두세 개 가지고 계속 토론을 나눈다. 7시 반쯤 시작해 10시 반에 끝나고, 뒤풀이까지 하면 12시다. 지금 5기 진행 중인데 원래는 월 2회 모이던 걸 1회로 줄였다.

프레시안 : 집단 저작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러시아어 책 번역을 위해 1500만원을 들였다고 말했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을 것 같다.

▲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김금수 :
세미나의 토대가 된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국제 노동 운동사>가 전부 여덟 권짜리인데 일본어·영어 번역판은 6권까지밖에 안 나왔다. 6권 내용이 1945년부터 1980년까지의 선진국 노동 운동사다. 제3세계 것이 없잖나. 그래서 특파원에게 부탁해 제본을 떠봤다. 러시아어 강사 네 명에게 원고지 한 장당 4000원에 부탁했는데 총 4000매라 1600만 원 가까이 나온 거다.

그런데 번역해 놓고 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달랐다. 아시아·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 각 나라들의 시대별 상황이 있어야 하는데 뭔가 툭툭 끊기더라. 돈 들인 데 비해 활용 가치가 크지 않았다.

김금수 : 그래서 <세계 노동 운동사>가 1945년에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건가. 혹시 그 이후의 역사가 후속으로 나올 가능성은 없나.

김금수 : 그 이후의 역사는 지금 세미나로 진행 중이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또 한 번 뒤집어진다. 영국에선 노동당이 집권하고, 프랑스에서도 사회당이 집권 연합에 참여했다. 1948년까지 각 식민지들이 해방됐다. 그러다 1948~49년 냉전 체제가 정비되면서 세상이 또 한 번 바뀐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고 베트남 무장 투쟁이 전개된다.

이런 중요한 흐름들이 있고, 냉전이란 것도 큰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부가 필요하다. 2차 대전에서 끝나니 아무래도 밋밋한 감도 있고. 애초의 계획은 1980년까지 다루자고 잡았는데 자료가 뒷받침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1970년까지 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노동-민주주의' 불가분의 관계

프레시안 : 노동 운동의 역사는 곧 자본주의의 역사, 정확하게는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300백 년에 걸친 노동 운동을 통해 우리가 이룬 것,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김금수 : 노동 운동의 지향점은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 개혁, 때론 혁명일 텐데 그 결과만 놓고 보면 마치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한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와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한 이후부터는 특히나 더 그렇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나 복지가 가능했을까? 노동·생활 조건의 향상, 기본 권리 확보 등의 진전은 모두 노동 운동의 성과다.

그러나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것이 많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게 그다지 거창하지 않다. 인간의 조건, 인간다운 삶이다. 결국 이것을 계속 추구하고 있는 거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몇몇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그런 삶이 지켜진다고도, 복지 수준이 높다고도 할 수 없다. 현재 시점에서는 성과보다 한계가 많지만, 그렇기에 끊임없는 개혁과 극복이 필요한 때다.

프레시안 :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노동이 배제된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세계 노동 운동사를 통해 보았을 때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김금수 :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부터 심지어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이르기까지, 부르주아 혁명의 실체적 세력은 결국 노동자였다. 파리 코뮌으로 박사학위 받은 분이 작성한 파리 코뮌 평의회 82명의 명단을 보니까 지금 기준으로는 7~80퍼센트가 노동자더라. 그때는 변호사나 기자 같은 사람들을 노동자로 안 쳤고, 노동자란 이름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영국 노동당이 없었다면 영국에 현재 같은 민주주의가 성숙될 수 있었겠는가? 프랑스 인민전선도 사회당·공산당이 주축을 이뤘지만 그걸 뒷받침하는 실질 세력은 노동 세력이었다. 그래서 두 나라는 독일과 다르게 파쇼로 넘어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또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몇 번 보수당에게 넘겨주기는 했지만) 5~60년간 집권할 수 있는 것도 노동 세력이 뒷받침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세력의 세력화가 덜 진행되었고 투쟁이 미성숙한 나라들에서는 어려운 얘기다.

ⓒ프레시안(최형락)


방향 잃은 노동 운동

프레시안 : 책 서문에서 전 세계적으로 노동 운동의 침체기라고 했다. 국제적 전선도 과거보다 그 힘이 희미한데다가 각국 내부의 상황도 다 어렵다. 한국 노동 운동의 경우 1987년 이후 약 10년간은 외국에서도 주목할 정도로 힘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의 한국 노동 운동은 어떻게 보는가.

김금수 : 비관적으로 본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땅에 떨어진 줄 알았더니 땅 속으로 들어갔더라"라고 표현하더라. 그 원인은 외부에도 있겠지만 우선은 내부적인 조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니까 자본의 공세는 어떤 식으로든 있기 마련인데,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하느냐는 내부적 힘의 문제이니 말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먼저 현재 한국 노동 운동에는 전략 목표가 없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지향하는 사회는 대체 어떤 사회인가? 그 부분이 없다. 또 하나는 민주노총의 경우 지금 형식상으로는 산별 가입으로 바꾸기는 했는데 아직 내실이 부족하다. 명실상부한 산별 체제가 안 되고 있단 얘기다. 또 하나, 투쟁 노선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거기다 정치 세력화 문제가 있다. 말로는 노동자 중심의 정당을 만들자고 하면서 '어떻게'에 대해서는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에게 뭔가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자존심도 다 잃어버렸다.

프레시안 : 전략 목표가 없고 노선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김금수 : 의지의 문제다. 2000년 민주노총 단병호 집행부 시절 1년간 학자들을 동원해 운동 이념이나 노선을 닦는 작업을 했다. 그래서 나온 게 사회 변혁적 노동조합주의다. 그런데 정파 간 갈등 때문에 대의원회에서 보고도 못했다. 그때 작업하면서 나온 상당한 자료가 있어서 이제 임기가 다 된 김영훈 집행부에서도 해보려고 애썼는데 실제로 하지는 못 했다. 여전히 내부 의견이 분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의 중요성 자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일상적 활동에 매몰되어서 중요한 일을 유예해버린다.

프레시안 : 김 이사장의 문제 제기 중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왜 힘을 합치지 못할까?'라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왜 그런가? 직접 몸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런 문제의식이 없나.

김금수 :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만나보니 다 비슷하더라'고 한다. 민주노총이 혁명하자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그에 대한 내 답변이 뭐였냐면, '양대 진영 간부들이 노래방에 가면 가사랑 번호가 다 다를 거다'라고 했다. (웃음)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비(非) 자율성을 비판하면서 나온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극복하겠다고 하면서도 점차 닮은꼴이 되어가는 것 같다. 실제 지향하는 바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나쁜 쪽으로) 비슷해지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진보 정치, 노동 정치를 하겠다는 세력들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김금수 : 사실 선거 과정에서 진보 정당들이 자기 목소리 낸 게 없잖나. 시끄럽기만 했지 역할을 한 게 없다. 그만큼 세가 약하단 이야기일 거고, 방금 말했듯이 정치 세력화에 대한 노선이나 기본 방침이 세워져 있지 않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민주노총 위원장 하던 사람이 보수 정당으로 가고, 민주노총 산별 간부였던 이들이 안철수 캠프로도 가는 사태가 벌어진 거다. 입으로는 '노동자 중심의 독자적인 대중 정당'을 말하면서 행동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민주노동당 만들 때보다 앞으로 진보 정당 만들기가 더 괴로울 것이다. 거기다 대중적 신뢰마저 얻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새롭게 노동 운동의 정치 세력화를 하려면 상당한 토대와 이론적인 근거가 필요한데, 과연 그런 작업을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은 독자적으로 지방에서부터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또한 현실성 약한 이야기다. 새 집행부가 들어서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정치 노선에 대한 논의를 하고, 그 노선에 따라 실행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동자 막는 '힘 불균형',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프레시안 : 최근 몇 년간의 가장 큰 노동 현안은 쌍용자동차나 한진중공업 등의 집단 정리 해고 사태일 것이다. 노동 현안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들의 투쟁은 '희망 버스'라는 범사회적인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필연적이라며 무작정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신에 해고자들을 보듬을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프레시안(최형락)
김금수 :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절대적으로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고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임금 격차로 인해 자본이 도피할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말한 대로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너무도 취약하다.

또한 정리해고에 요건이 분명히 있는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 요건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예컨대 '경영상 긴박한 필요가 있어서'라는 이유는 명분이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용자 임의대로 손쉽게 하는 경우다. 결국 문제는 힘의 관계인데, 여기에 근본적인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탄탄한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정리해고가) 남발되기 마련이다. 허술한 법률 몇 개만 가지고는 막을 수가 없는 거다. 노동 시간 단축이나 직업 재훈련 같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하지 않겠나.

프레시안 : 또 현재 중요한 노동 현안 중 하나로 비정규직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비정규직이 절반인 시대고,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김금수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장이 된 게 2000년이었는데, 그때도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 10~15년 사이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과 규모가 아주 심하게 확대됐다. 과거 기업 내 문제만으로 그쳤던 게 점차 사회 문제화되고 심지어 정치적 저항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부나 사용자가 사용상의 편의성 같은 이점이나 기업 간 이해관계처럼 단순하게 볼 게 아니라, 이제 이것이 정치, 경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단기적 이득을 협박할 위험으로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은 공공 부문부터 선도하는 게 답이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게 그거다.

이런 인식 하에 제도 개선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차별 금지에 대해서는 지금 법에도 규정되어 있다. 실제 현장에서 안 지켜질 뿐이지. 결국 법률이나 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특정한 경우에만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사용 제한을 두는 부분이다.

프레시안 : 기업별 노조가 제대로 된 노동 운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여러 노조들이 산별 노조로의 전환을 도모해 왔다. 현재 산별 노조 체제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건가?

김금수 : 외국에서는 노동조합이 생겨날 때부터 기업 바깥쪽에서 생겼다. 봉제공은 봉제공끼리 모이고 기사들은 기사끼리 모였다. 즉 직종별인 셈이었다. 그러다가 산업화·자동화되면서 직종별로는 안 되겠다 해서 산업별로 넘어간 거다. 그런데 우리 경우는 '기업별'에서 산업별로 넘어가야 하니까 어려운 거다. 일본은 우리 못지않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산별 전환에 실패했는데 그래도 우리는 형식이나마 산업별로 바뀌었다.

중요한 건 그 형식이 아니라 '교섭'이 산업별로 이뤄져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사용자 측에서 응하질 않는다고 하더라. 또 내부적으로도 산별 노조에 걸맞은 통일성, 집중력을 키우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기업별 노조의 의식이나 관행이 남아있으니까 힘이 취약하다. 또 정부도 자질구레한 법률 조항을 갖고 인정을 하네, 안 하네 이러고 있으니….

프레시안 : 김영삼 정부 당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남재희 전 장관은 노동 문제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정부가 하기에 따라 노사관계 발전은 물론 노동 운동의 시야나 수준 상승이 담보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 운동에 대한 정부의 역할, 어떻게 보는가?

김금수 : 노사관계에 있어 노·사 당사자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둘 간의 힘의 균형이 그나마 이루어지면 사실 정부는 할 일이 별로 없다. 조정 역할만 하면 된다. 그런데 손배가압류로 파업권을 묶어 놓은 현 상황 같은 경우, 정부 역할은 노사관계를 발전시킬 가능성보다는 왜곡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법률상으로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해주고 힘을 대등하게 만들어주고 난 뒤 정부는 오히려 빠져야 한다.

박 당선인, 저항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프레시안 : 지난 대선 이후 노동자 네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곧 들어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란 관측이 컸다. 박근혜 정부가 펼칠 노동 정책, 과연 어떨까?

김금수 : 박근혜 당선인이 유신의 '후예'인 건 부정 못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를 답습할 것인가 하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오늘의 국민이 박정희 시대의 국민이 아니니까, 유신 시대처럼 노동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게 되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거다.

그러나 낙관은 어려운 것이, 이명박 정부의 과(過)를 포함하여 박근혜 정부가 해결해야 할 노동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당선인 본인이나 그 정권을 에워싼 세력이 완강한 보수·지배 세력이니까 과연 합리적 노동 정책을 펼 수 있을까 의문이다. '합리적'이란 건 다른 선진국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도출한 보편적인 정책을 말한다. 박 당선인이 아무리 지지자들을 의식한다 하더라도, 이런 합리적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을 때 오는 저항은 엄청나게 클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만약 다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노동 세력 스스로가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어서 인식하고, 내부의 힘을 추스르지 않으면 앞으로의 상황에 대처하기 상당히 어려울 거다. 이번에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 위원장이나 수뇌부가 누구건 간에 일대 쇄신, 권위 회복, 활동에 대한 총체적인 재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노동 운동은 앞으로 안 나가면 뒤로 가기 마련이다. 새 집행부가 노동 운동의 고양기를 마련할 계기를 찾기를 바란다. 노동 세력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진보 정당 쇄신도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프레시안 :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주로 절망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어디에서인가?

김금수 : 세계 노동 운동사를 함께 공부한 걸 생각해 보면 그래도 희망적이다. 무려 7년간 한 달에 두 번씩 열띤 토론을 나누었으니까. 이런 작업이 여기에서만 일어난 건 아닐 터다. 각 정파 조직에서도,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일어났을 거라고 본다. 이런 노력이 공식적인 계기를 맞아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노동 운동가들, 공부 참 안 한다. 대단한 듯해도 기껏해야 월 2회, A4 30장짜리 발제문이었다. 공부 좀 하자.

프레시안 : <세계 노동 운동사>는 기본적으로 노동 운동가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겠지만, 일반인이나 노조 활동을 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거라고 보나.

김금수 : 역사를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지지 않겠나 싶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 역사는 주로 왕조의 역사, 지배 양식의 변화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 노동 계급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투쟁했는지가 생생한 사례를 통해 나와 있으니까 역사의 실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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