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판 87년 항쟁'에 전 세계 주목

[분석]"트위터가 사회악" vs "불통 리더십 끝낼 때"

최근 터키에서 마치 '87년 항쟁' 같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어 전세계가 '터키판 아랍의 봄'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터키는 형식적으로 민주주적인 의원내각제이지만, 지난 10년간 이슬람 성향의 정의개발당(AKP)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강력한 철권통치가 이뤄져왔으며, 이때문에 세속주의 성향의 많은 시민들이 불만이 쌓여왔다.

이번 사태는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 탁심광장에 그나마 남아있던 녹색공간인 게지공원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쇼핑몰을 짓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항의하면서 일부 시민들이 항의하면서 시작됐다.

▲ 2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위 1주일째, 전국적 시위로 확대

지난달 27일 소규모로 시작된 시위가 점점 규모가 커지자 터키 정부는 지난달 31일 돌연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사태가 급격히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3일 <가디언>에 따르면, 시위 1주일만에 터키의 81개 주의 거의 절반에 걸쳐 67개 도시로 시위가 확산됐다.

이스탄불에서는 탁심광장에 1만 여명의 시위대가 몰리는 등 전국적으로 시위 규모가 수십만 명에 달하고,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1700명이 체포됐다.

터키 의사협회에 따르면, 이스탄불에서만 1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고, 수도 앙카라에서도 700명 정도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물에는 한 시위자가 물대포에 정면으로 맞아 공중으로 날아가는 장면이 포착됐으며, 이 시위자는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무분별게 몰아부치는 개발사업에 대한 시민의 항의로 비쳐지는 이번 사태의 배경은 복잡하다. <뉴욕타임스>는 "근대 터키공화국의 건설자이자 세속주의 정권을 세운 케말 파샤 시대의 엘리티시즘과 이슬람주의 성향의 현 정권의 충돌"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터키의 사태는 일종의 '문화충돌'"이라고 규정했다.

총리, 트위터 콕 집어 "사회의 최대 위협"

단순한 정책 갈등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위대와 정부의 인식은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과 극이다.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이번 시위는 일부 극렬분자들의 소행이며, 야당이 부추기고 있으며, 트위터로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트위터를 명시적으로 거론하면서 "소셜 미디어가 사회에 대한 최악의 위협"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현재 터키의 소셜미디어 통로는 차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년간 터키에서 '철권통치'를 펼쳐온 에르도안 총리에게 이번 시위는 가장 규모가 크고 격렬한 반정부 시위다. 자신에 대한 퇴진까지 요구하는 시위대에 강경대응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터키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근본적인 시험대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에르도안은 집권당의 명칭이 보여주듯 '정의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기가 추진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모조리 반국가적인 것으로 몰아부쳐왔으며, 언론도 철저하게 통제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터키는 중국과 이란보다도 많은 언론인들은 감옥에 수감돼 있을 정도다.

"터키 TV, 시위 소식 대신 요리 프로그램 내보내"

이스탄불 소재 보스포러스대의 정치분석가 코라이 칼리스칸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에르도안은 자기 당 내의 말도 듣지 않고 있다"면서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주주의 국가의 총리로서 자기 멋대로 계속 통치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이번 사태로 터키의 주류 언론이 현정부와 공모관계이며, 거의 완벽하게 정부 통제를 받고 있다는 점도 보여줬다"면서 "터키의 주류언론은 시위 자체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리스칸은 "터키의 주류 언론도 스스로 당혹스러울 것"이라면서 "전세계가 탁심광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도하고 있는데, 터키의 TV는 요리 프로그램이나 보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10년간 통치를 해온 에르도한은 터키 최초의 직접선거를 통한 대통령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이에 대해 칼리스탄은 "이번 사태로 에르도한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은 물건너 갔다"면서 "절대권력의 신화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총리도 내심 이번 사태가 위기라는 점은 느끼고 있다. 실권은 없는 터키의 대통령 압둘라 귈이 "더 큰 사태가 되기 전에 축적된 '부정적 에너지'가 분출될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설득에 나서자 1일 폭동 진압 경찰을 일단 탁심 광장에서 철수시킨 것이다.

주말 시위에 참가한 비즈니스 컨설턴트 에르한은 "이번 일로 총리가 퇴진하지도 않을 것이고, 공원에 쇼핑몰을 짓고 말지 모른다"면서 "하지만 시민들이 광장에 나가 뭔가를 변화시키고, 의사표현을 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그것이 우리가 성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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