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사실은 〈프레시안〉이 최근 입수해 3일 그 일부를 공개한 국정상황실의 문건들에 의해 새로이 밝혀진 것으로서 국가 정보 유통의 정직성 문제와 관련해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어떻게 다른가**
국정상황실이 2005년의 조사 과정에서 그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은 외교부 북미국과 주미 한국대사관이 2004년 1월 14일 주고받은 비밀전문을 통해서다. 당시 국정상황실은 '업무연락 전문으로 독후(讀後) 파기를 지시'한 이 비밀전문의 원문을 입수했다. 여기서 문제가 된 부분은 제3국 분쟁 개입과 관련해 '한국의 안전 고려'를 나타내는 대목.
이 비밀전문에 따르면, "한국의 안보를 불안하게 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방식으로(…in such a manner as to compromise or jeopardize the security of the Republic of Korea)"라는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 2003년 10월 한국이 미국 측에 전달한 각서에 담겨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NSC의 서주석 당시 전략기획실장이 2005년 3월 26일 천호선 국정상황실장과의 면담에서 '외교부가 미국에 전달한 각서'라며 제시한 문안과는 다른 것이었다.
서주석 실장이 제시한 문안에는 "한국정부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분쟁에 개입되어 우리의 취약성이 증가되어서는 안 된다(…in such a manner as not to increase the vulnerability of the Republic of Korea to the conflict situation in which the Republic of Korea is not directly involved)"는 꽤나 구체적인 표현이 실려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NSC는 4월 5일자 서면 해명(최재천 의원 공개 문서)에서 "외교부(북미3과 박용민)에서 실무검토중이던 초안의 버전 중 다른 것이 (비밀전문에) 수록됐다"고 외교부가 2005년 4월 4일 해명했다고 밝히고 "두 초안의 표현은 다르지만 3가지 핵심사안은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실수로 다른 버전이 비밀전문에 수록됐을 뿐, 2003년 10월 실제로 미국에 전달한 각서는 서 실장이 제시한 문안대로라는 것이다. NSC의 이 서면 해명은 4월 7일 국정상황실 1차 회의에 제출됐고 이종석 당시 NSC 사무차장은 회의 후에도 2가지 각서 문안을 비교했을 때 실제 내용의 차이는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의중을 5개월 전에 알았다?**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정상황실이 주목한 것은 외교부가 각서 문안이라며 제시했다는 '제3국 분쟁 개입 조항'("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분쟁")이 만들어진 것은 우리측 외교각서 전달 시점에서 무려 5개월 후인 2004년 3월 경 노 대통령의 우려 표명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의 우려 표명이 있기도 전에 그와 똑같은 문구를 외교각서에 포함시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국정상황실은 나아가 2005년 4월 1일 문건에서 노 대통령이 '최근' 그같은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지시했다고 밝히고 있어 '제3국 분쟁 개입 조항'은 우리측 외교각서 전달 시점으로부터 한참 뒤에 나온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3월 8일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공군사관학교 발언'을 통해 제3국 분쟁 개입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이를 전략적 유연성 협상에 포함시킬 것을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제3국 분쟁 개입 조항' 포함 시점의 문제와 함께 국정상황실이 의아해하는 점은 미국과 우리 협상팀의 태도다.
국정상황실은 "NSC(외교부)의 주장대로 제3국 분쟁 개입 조항이 포함된 각서 문안을 (미국에) 전달했다면 미국이 왜 2005년 대통령의 발언('공사발언'으로 추정)을 불쾌(disturbing)하게 받아들였는지 이해 곤란하다"고 봤다. 한국의 뜻을 1년 5개월 전에 이미 알았다면 대통령의 발언을 특별히 불쾌히 여길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외교부 등 우리 협상팀의 태도에 대해서도 국정상황실은 "협상팀 입장에서 '제3국 분쟁 개입 조항'이 포함된 문안이 실제 미국에 전달됐다면 대통령의 의중을 미리 알고 반영했다는 공(功)이 있는데 왜 이를 당당히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숨겨 왔는지 의혹이 크다"며 "추가적으로 해명되어야" 한다고 4월 15일 문건에서 지적하고 있다. 4월 18일자 문건에서도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다.
***국정상황실, 문제 덮어지자 반발한 듯**
국정상황실은 이같은 '문안 바꿔치기' 의혹을 담은 "문서의 진정성에 대한 의혹"을 2005년 4월 3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략적 유연성 협상 과정과 관련해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통일부 장관)이 주재한 4월 6일과 15일의 '5인위원회' 검토 회의는 "협상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종료"했다.
그러나 '5인위원회'가 그처럼 문제를 덮어버리는 결정을 내리자 국정상황실은 4월 18일 '전략적 유연성 현안에 대한 국정상황실 의견'이라는 문서를 다시 만들어 "외교부의 주장은 매우 의심스럽다"고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문건의 서두에서 국정상황실은 "꼭 읽어봐 주시고 판단해 참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간곡히 '읍소'하고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이 당시 무슨 연유에선지 이 문제를 덮으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냐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국정상황실의 이 문건은 '5인위원회'의 4월 15일 결정에 대한 반발이자 여진(餘震)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외교각서 교환 사실의 보고 시점 문제, 보고의 충실성 문제, 나아가 각서 문안의 '바꿔치기' 의혹이라는 엄청난 문제를 뒤로 한 채 우리 안보환경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2003년 10월 외교부 측이 자의적으로 미국 측에 전달했던 문안대로 진행되어 2006년 1월 미국 측의 의지대로 최종합의에 이르렀다.
***"이종석 차장 당시 태도와 협상 결과는 구분해서 평가해야"**
이 과정에서 설령 외교부가 NSC에도 알리지 않고 전략적 유연성을 사실상 합의하는 외교각서를 주고받았다 하더라도, 협상을 총괄했던 NSC가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대통령에게 허술한 보고를 하는 등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인 것은 중대한 과실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국가의 안위와 관련한 중요한 정보를 누락 또는 왜곡했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적 유연성 협상의 전말을 잘 아는 한 인사는 NSC, 특히 이종석 사무차장이 외교각서 교환 사실을 알고 나서 취했던 태도에 대해 무조건 잘못된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인사는 "2004년 3월 외교부를 비롯한 협상팀들은 각서교환 사실을 뒤늦게 알림으로써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를 기정사실화 하려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그러나 이종석 차장은 그 각서를 실무 수준의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협상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태도를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같은 이종석 차장의 당시 태도를 '실용주의'로 해석하며 "이는 미국 및 외교부ㆍ국방부 내의 소위 '동맹파'들과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그들 뜻대로만 흘러가는 것을 막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 이후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 및 결과에 있어서 이 차장의 '중대한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인사의 시각이다. 그는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결국 미국과 동맹파들의 의도대로 귀결되면서 이 차장의 실용주의는 완전히 빛을 잃고 말았다"면서 "나아가 전략적 유연성이 합의되더라도 설마 몇 년 안에, 특히 노 대통령의 나머지 임기 중에 무슨 중대한 상황이 발생하겠느냐는 외교부나 국방부 측의 관료적 편의주의에 이 차장 역시 몸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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