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유연성' 외교각서…대통령은 몰랐다

[공개] 국정상황실 점검문서…'자주국방론'의 실체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지난달 19일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전격 합의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2년여의 협상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미 외교각서 교환 사실 등 중대한 정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대통령의 통치권이 제한되고 한미간 신뢰관계에도 위기를 낳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같은 문제점은 〈프레시안〉이 최근 입수한 청와대 국정상황실의 문건 등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정상황실은 지난해 4~5월 한반도 안보환경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정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회의를 수 차례 열고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형식의 보고서들로 작성했던 것.

이 문건들은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이 2일 공개한 'NSC의 해명' 문건과는 작성주체와 성격이 전혀 다른 것으로 그 해명 문건의 내용과 당시 정황 등을 종합 재검토한 것이다.

***청와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아직은 해명 안돼**

이는 청와대가 3일 서둘러 "이 문제에 대한 청와대 내부의 문제제기를 대통령도 알고 있었고, 이 문제가 제기된 초기부터 관여해 방향을 설정했다"고 해명한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즉, 청와대 내부의 문제제기라는 것은 지난해 3월 8일 노 대통령의 공군사관학교 발언이 파문을 낳자 그해 4월 국정상황실이 진행한 점검회의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검의 대상이 되었던 2003년 10월 외교부의 독자적인 각서 교환 사실을 대통령이 알고 있었는지는 여전히 해명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3일 "노 대통령이 2003년 10월 각서 초안 내용을 '시차'를 두고 점검한 바 있다"고 비켜갔다.

***"대통령은 5개월이 아니라 1년5개월 동안 외교각서 교환을 몰랐다"**

그러나 〈프레시안〉이 입수한 국정상황실의 2005년 4월 8일자 보고문건에 따르면 "양국간 외교 각서 문안이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교환"되었으며 "문안 교환 사실 인지 시점이 2004년 3월이라 하더라도 이후 1년이 넘도록 대통령에게 사후 보고되지 않았"던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이 2003년 10월의 외교각서 교환 이후 5개월이 아니라 2005년 3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는 공군사관학교 발언까지 무려 1년 5개월 동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안보와 직결되는 중대 사안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으로 국정상황실은 보았다.

***"NSC는 외교각서 문제를 보고할 의사도 없었다"**

이 보고 문건들은 우리 외교부와 미 국무부가 지난 2003년 10월과 2004년 1월에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내용의 외교각서를 노 대통령의 사전ㆍ사후 재가 없이 교환했다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2일 폭로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2004년 3월 외교부로부터 각서 교환 사실을 보고받기 전까지 몰랐다'는 NSC 측 해명에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을 적시해 보고 누락의 책임이 궁극적으로 NSC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문건들이 나오던 2005년 4~5월의 시점은 청와대가 정동영 당시 NSC 상임위원장 주재로 이종석 당시 NSC 사무차장이 답변하는 형식의 검토 회의를 두 차례 가졌다고 밝혔던 때이다.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2005년 5월 17일 그같은 사실을 확인하면서 "협상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종료한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는 4월 15일자 국정상황실 문건에는 미국에 전달한 외교각서 문안의 진정성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음이 나타나 있고 "NSC는 중요 정보에 대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의사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는 기존의 진술이 되풀이되고 있어 협상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는 김 대변인의 말과 어긋난다.

이같은 사실 관계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국정상황실의 4월 8일자 보고서(〈'전략적 유연성' 제1차 점검회의시 NSC 인정사실에 근거한 문제점 진단 및 평가〉)의 일부를 직접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외교각서 교환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못이라는 NSC의 시인은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 협상이 상당부분 진전됐다고 인식했을 개연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그에 입각한 NSC의 책임을 아래와 같이 적시하고 있다.

〈박스 시작〉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기망(欺罔) 행위"**

1. 교환각서 문안 교환 인지 시점 이전의 책임

㉮ 협상 대책회의를 NSC가 주도 ㉯ 2003년 8월부터 외교각서 교환 방침을 NSC가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주도적으로 수립 ㉰ 2003년 35차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양국간 문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발언록 공유 ㉱ 각서 교환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위성락 당시 외교부 북미국장이 2004년 1월부터 동 건 담당 NSC 조정관으로 근무했음을 감안할 때

-〉 NSC가 외교부의 보고 유무를 떠나 외교부가 외교각서를 준비할 것이라는 정황이 분명했는 바, 필수 조치조차 방기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안보 주권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NSC의 지극히 부실한 업무 행태를 보여 준 것이라고 판단됨

2. 교환각서 문안 교환 인지 시점 이후의 책임

(1) 대통령이 국정상황실 보고(4. 7)를 받은 후 "상세한 교섭 경위"와 "동 건이 보고되지 않은 경위"에 대해 의아해 하는 상황에서조차 NSC 사무차장이 보고 여부를 자신이 판단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고

(2) 국가 안보 주권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을 2003년 3월 이래 NSC 상임위 결과 보고 형식의 일상적인 보고와 일일정책보고 첨부문서로 보고한 것을 충분히 보고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사실은

-〉 대통령의 외교안보 보좌 업무를 담당하는 NSC의 심각한 상황인식과 보고 기준에 대한 문제점을 노정한 것임

(3) 2004년 3월 외교각서 문안 교환 인지 시점부터라도 지체없이 종합 보고를 했어야 하나 일체의 보고가 없었으며 특히 대통령이 2004년 6월부터 대외 언급이나 지침을 주기 시작했음에도 NSC는 중요 정보(외교각서 문안 교환)에 대해 보고할 의사도 없었던 바

-〉 이는 외교안보 정책의 토대가 되는 중대 정보를 누락시킨 것으로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기망(欺罔)'으로 판단되며,

-〉 중차대한 외교안보 사안에 대한 고의적인 보고 누락 행위에 대해 表見的으로는 사실상의 면죄부를 NSC 사무차장이 기존 외교안보라인에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심각한 공직 기강 훼손과 외교 난맥상이 심화된 것으로 보임

(4) 또 보고 누락의 핵심 책임자였던 위성락 NSC 조정관을 주미 한국 대사관에서 전략적 유연성 총괄 실무를 담당하는 주미공사로 영전시킨 것은

-〉 NSC 사무차장의 현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인식과 외교안보팀 전체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

3. 대미 관계에 있어 한국의 신뢰도 저하 초래

NSC 사무차장은 2004년 3월 8차 FOTA회의시 논의를 2005년으로 연기할 것을 미측에 통보하였다고 설명하였는 바,

(1) NSC는 여전히 외교각서 문안 교환의 중차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상세 경위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대통령에게 상세 보고도 없이 미국에 대해 협상을 일방적으로 2005년으로 연기한 것은 양국간 신뢰를 심각히 저해하는 외교 행태로

-〉 미국이 가장 중시하는 외교 현안의 처리를 합리적이고 분명한 설명 없이 연기하려는 불분명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외교 신뢰의 심각한 저해

(2) NSC는 미국이 2003년 전략전 유연성 협상이 사실상 합의 직전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공개석상에서 전략적 유연성이 합의되었다는 입장을 언급한 것을 동인의 오류라고 치부하고 있는 NSC의 입장과는 정반대로 이 언급은 미국 수석대표가 기본적으로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양국간 그간의 협의 결과에 대한 기본 인식을 표시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 특히 한미간 안보문제를 협의하는 최고의 협의체인 SCM에서 미 국방성 장관이 전략적 유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국 외교부(국무성) 간 문서가 준비되고 있다는 언급은 명백히 미측의 인식 수준을 드러내는 것으로,

-〉 NSC의 시각은 NSC의 안일한 대미인식과 명백한 정황 증거에도 불구,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외교안보 사령탑으로서 NSC의 신뢰를 현격히 저하

〈박스 끝〉

***무엇을 보고하지 않았나**

국정상황실이 4월 1일자 첫 보고서에서 NSC가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꼽은 것은 ▲ 주한미군 병력의 전입(flow-in)과 전출(flow-out)의 유연성 ▲ 기지(시설과 구역) 사용의 유연성 ▲ 장비 사용의 유연성 등으로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국정상황실 문건은 특히 병력의 전입과 관련해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공세적인 군사계획인 작계 5029의 작성 배경과도 긴밀히 연계된 사안이나 이러한 전략적 의미를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문건은 '기지 사용의 유연성'과 관련해서도 "우리나라가 미국의 동북아 패권 유지를 위한 군사기지를 제공한다는 논란을 초래하는 한편 한미상호방위조약, 소파협정 등의 전면적 개정 여론이 비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건은 "(NSC가) 용산기지 이전은 주한미군기지 재배치(GPR) 차원에서 사실상 전략적 유연성과 직접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미국의 설명을 통해 잘 알았다"면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공론화할 경우 기지이전 협상에 미칠 국내여론의 부정적인 영향 등을 고려해 GPR과의 연계성을 현 시점(2005년 4월)에서도 부인하고 있는 한편 (외교) 각서 교환 시기를 용산기지이전 합의서의 국회 통과 이후로 설정하는 내부 계획을 수립하면서도 정작 대통령에게는 이 사실에 대한 보고를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용산기지 이전'이 '전략적 유연성'의 하부 개념이라는 사실, 전략적 유연성이 합의될 경우 한국도 분쟁 당사자가 된다는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비판 등을 국정상황실 역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용산기지 이전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전략적 유연성과 직접 연계됐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져, 한국이 일방적으로 기지 이전을 요구해 이전비용 역시 한국이 거의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정부의 설명은 거짓임이 증명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SC는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합의 후 진행시켜야 마땅한 기지이전 협상의 합의서를 오히려 먼저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내부 계획까지 짜는 주도면밀함을 보였고 결국 관철시킨 것이다.

***남는 문제들**

국정상황실의 보고서에서 거듭 강조하듯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차대한 사안'을 NSC의 보고 누락으로 대통령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도 여전히 많은 문제들의 안개 속에 묻혀 있다.

우선 노 대통령은 과연 언제 외교각서의 교환 사실을 알았느냐는 문제. 노 대통령이 2005년 3월 8일 '공사 발언'까지 그같은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 후 어느 시점에서 전략적 유연성의 합의가 거의 무르익었다는 것을 알았고 지난 1월 합의를 수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최종합의된 문안도 대통령이 직접 검토한 것"이라는 청와대의 3일자 해명은 그같은 의문을 풀어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다음으로 2005년 4월 15일의 국정상황실 문건은 여전히 많은 의혹들이 남아 있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협상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그해 5월 17일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의 결론은 과연 어떻게 내려졌는지도 알 수 없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정동영 당시 NSC 상임위원장(통일부 장관)이 2차례의 회의를 거쳐 그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정 장관이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됐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다.

셋째, 외교각서가 대통령까지 모르게 '철통 보안' 속에서 교환된 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협상 과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각서 교환 사실을 알리고 대통령의 지침과 여론의 힘이 적절히 배합될 때 협상에 힘이 붙으리라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NSC가 이처럼 부적절한 태도를 취한 것은 협상에 악영향을 미쳤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넷째, 외교각서 교환과 용산기지이전 협상은 과연 어떤 함수 관계를 가졌느냐는 것. 앞서 밝혔듯이 국정상황실은 NSC가 전략적 유연성 협상에 앞서 용산기지이전 협정서를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내부 계획을 세웠고 이를 관철시켰다고 밝혔다. NSC는 왜 그같은 전도된 협상 경로를 택했는가.

외교각서 교환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도 않고 특별한 이유 없이 1년 이상 전략적 유연성 협상을 미루며 그 사이 용산기지 이전 협상부터 마무리지었던 이 거대한 도착(倒錯) 현상은 과연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지 규명될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의 '자주외교' '자주국방' 레토릭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전략적 유연성은 참여정부의 2005년 외교안보정책의 최대 성과로 선전됐던 지난해 9.19공동성명의 환호 속에 조용히 논의되다가 올해 1월 19일 밤 '아닌 밤중의 홍두깨'로 느닷없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9.19공동성명은 위조 달러 문제를 위시로 한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묻혀 빛을 바래고, 한국은 미국 주도의 확산방지구상(PSI)에 일부 발을 들여놓기로 하는 등 이미 미국의 국제 전략 속으로 깊숙이 포섭되어 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미국에 사뭇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던 노 대통령의 지난달 25일 연두 기자회견은 노 대통령이 이 상황 자체를 여전히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게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 대통령의 현란한 '자주외교ㆍ자주국방 레토릭' 뒤에서는 대통령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외교각서의 문안들이 오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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