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답답증', 그 원인과 결과

[해설] 국정상황실 문건은 무엇을 말하는가

〈프레시안〉이 최근 입수하고 3일 그 일부를 공개한 국정상황실의 전략적 유연성 관련 문건들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위시한 이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어떻게 대통령의 눈을 가리고, 국가안보에 중차대한 결정을 독단적으로 내렸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중 한 문건에서 보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답답증'은 바로 이런 사실에 기인한다. 노 대통령은 "정부와 청와대 내 참모들로부터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로부터 시대의 변화에 상응하는 진취적인 비전이나 전술에 대해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다"고 했다. "NSC가 여러 자료를 만들어주고 있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전략적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노 대통령이 2005년 3월 8일 공사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 이른바 '공사 발언'은 이처럼 외교안보 라인의 제대로 된 보고가 없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무엇인가를 의식해 내 놓은 발언으로 보인다.

당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그간의 논의와는 다른 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미국은 즉각 반발했다.

NSC 해명 문서(4월 5일)에도 나타나듯 노 대통령이 공사 발언을 한 당일 크리스토퍼 힐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안보 사안과 관련해 양국 간 긴장이 있다는 인상을 풍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국정상황실의 4월 1일자 문건에는 "(공사 발언을)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지금까지의 협상 결과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해석함에 따라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입장 변경의 배경에 대해 의아해 하는 분위기"라고 씌어있다.

2004년 3월부터 본격화한 국정상황실의 조사, 4월 6일과 15일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을 팀장으로 한 5인위원회의 2차례 검토회의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정보보고의 정직성과 정확성의 문제…향후 통치의 핵심**

국정상황실은 〈프레시안〉이 3일 공개한 4월 8일자 문서대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지지 입장을 담은 2003년 10월과 2004년 1월의 외교각서를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았고 ▲각서교환 사실을 인지한 2004년 3월(28일) 이후에도 1년이 넘도록 보고하지 않았다는 등 NSC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 대통령의 공사 발언은 NSC의 보고가 없는 상황에서 나온 '돌출 발언'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외교안보 라인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통령 몰래 외교각서를 교환했다는 사실 자체만을 놓고 보면 아래와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NSC가 외교각서의 교환을 몰랐을 리 없었다는 것이다. NSC는 각서교환 사실을 외교부로부터 뒤늦게 보고받았다고 책임을 돌리고 있으나, 국정상황실이 지적하듯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모든 협상을 주도한 것은 NSC였다. 또 각서교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위성락 당시 외교부 북미국장이 2004년 1월부터 전략적 유연성을 담당하는 NSC 조정관으로 근무했다는 점에서도 NSC가 각서교환 사실을 상당히 일찍 알 수 있었다고 볼 정황은 충분하다.

둘째, 실무협상 과정에서 각서라는 형식으로 결정적인 의사 표현을 한 것도 문제다. 국정상황실은 "양국 간 합의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헌법조항(60조) 위배 여부 등 최소한의 법리검토를 해야 하는데 대통령에게 이런 전후상황의 설명 없이 '외교각서' 형식으로 교섭을 해 왔고 지금까지도 이 내용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NSC도 "주위로부터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사실"이라며 "2003년 미국과 합의각서 문안을 협상해 온 것은 실무진의 아이디어 차원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시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외교각서 형식을 택한 것은 과연 무슨 연유에서였나? 국정상황실은 "2003년의 협상 과정을 보면 한미상호조약의 개정이 필요없다는 미국의 주장을 너무나 쉽게 용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셋째, NSC와 외교부의 해명대로 교환한 각서가 '아이디어 수준'이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아이디어' 자체가 전략적 유연성라는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중대한 각서 안을 대통령의 승인 없이 주고받는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국정상황실은 "외교부의 고위 간부들에게 들은 비공식 증언에 의하면 일반적인 외교협상에 있어 승인 없이 각서 안을 주고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그것을 관행이라 주장하거나 그렇게 치부되면서 이루어져 온 잘못된 협상태도 때문에 대통령의 통치권이 흔들리고 국익이 손상될 수 있다"고 비난했다.

이상의 문제들은 대다수의 언론들이 말하는 '자주'냐 '동맹'이냐는 노선 때문에 불거진 것이 아니었다. 보기에 따라선 소위 '자주파'가 주도하는 NSC와 '동맹파'라는 외교부가 핵심 사안에서 사실상 손을 잡은 셈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외교안보 관련 정보 보고 체계의 정직성과 정확성,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외교각서 교환 당시는 물론이고 교환 사실을 알고도 1년이 넘게 부실한 보고를 일삼은 것은 최고 통치권자에 대한 중대한 정보 왜곡이다. 문건의 공개로 이같은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정확한 진상이 규명돼지 않는다면 향후 NSC,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정원 등에서 올라오는 안보 관련 정보와 보고 체계는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허위 보고를 끝까지 추적하는 미국의 경우라면 최악의 과실로 엄히 조치될 사안이다.

그러나 그토록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 데에다 'NSC가 한동안 외교각서 교환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등의 의혹이 추가로 해명돼야 한다'는 국정상황실의 거듭된 문제제기가 있었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NSC 위원장이 같은 시기에 주재한 검토회의에서는 "협상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종료"했다. (2005년 5월 17일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는 왜 문제를 덮었을까?**

왜 그랬을까? 다른 문서에 나오는 미국 측 협상 대표들의 말을 보면 노 대통령의 공사 발언 이후 미국이 가해 온 압박이 만만찮았음이 드러난다.

2003년에 전략적 유연성을 처음 제기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 미국측 대표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4월 28일 "미 국무부 및 의회 등 워싱턴에서는 한미동맹의 현황에 대해 매우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측'은 "앞으로 2~4개월 내에 이런 국면을 전환시키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급격히 하강하게 될 것이라고, 심각성에 대해 경고했다"고 돼 있어, 청와대가 이 문제를 덮을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유추된다.

국정상황실 문건에도 "외교부 업무 담당관은 우리 대통령의 (공사) 발언은 미측에게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나와 있어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느꼈음을 보여준다.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외교부는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표현을 협상 문안에 포함시켜 양측이 각기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아전인수식의 해석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아이디어를 냈던 것으로 보인다. 한 국정상황실 문건에는 김숙 북미국장이 NSC 실무조정회의 석상에서도 이같은 취지로 설명했다고 나와 있다.

예컨대, 지난 1월 19일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 합의한 공동성명 가운데 다음과 같은 전략적 유연성 관련 대목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 문구로 보인다. "미국은 '그것(it)'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정부는 'it'을 '한국'으로 번역하며 대단한 성과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사실 한국군이 개입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it'을 '주한미군' 혹은 '미국' 등으로 해석하거나 이 부분의 빼고 해석하고 있다.

***문제를 덮기로 한 주역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이같은 우리 정부의 난감한 처지와 고민, 나아가 사태를 덮기로 결정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대통령에게 '무작위(無作爲)에 의한 기망(欺罔)'이라는 엄청난 직무유기를 저지른 것으로 평가받던 외교안보라인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자리를 유지했고, 나아가 더욱 책임있는 자리로 옮아갔던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줄곧 NSC에 머물며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 조정했던 이종석 전 사무차장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고,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NSC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겸임할 예정이다.

심각한 문제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단 2차례의 회의 만에 문제를 덮어버린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집권당 의장으로의 복귀 수순을 밟고 있다.

외교각서 교환의 핵심 역할을 했고 2004년부터 NSC로 들어갔던 위성락 씨는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전략적 유연성 업무를 총괄하는 주미공사(1급)로 옮겨갔다. 이를 두고 국무조정실은 "중차대한 사실에 대한 보고 누락 또는 무작위에 의한 기망 행위에도 무방하며 오히려 출세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외교안보 라인의 기강 훼손 및 난맥상을 조장했다"고 우려했다.

오랜 조사 끝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던 국정상황실이 2005년 4월 최종적으로 문제를 덮기로 하는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으며, 만약 당초의 입장을 포기했다면 그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문제 은폐의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앞으로 새로이 규명되어야 할 대목이다.

***왜 심각한 문제인가?**

외교각서를 몰래 교환하고 심각한 문제를 덮어버리면서 전격 합의해버린 '전략적 유연성'으로 한국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그대로 편입돼버렸다. 국정상황실이 인정하듯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이 해외 군사전략을 변경하며 내놓은 해외미군 재배치(GPR)의 핵심 개념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GPR에 따라 진행되는 용산기지 이전도 전적으로 미국의 필요에 따른 것이었으나 '우리가 요청했다'는 정부의 거짓 명분으로 7조 원이 넘는 우리의 돈을 들여야 한다. 북한을 겨냥하고 있는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조금씩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북핵 6자회담은 미국 강경파들이 제기하는 위조화폐 문제로 진전이 난망하고, 따라서 정부가 그토록 큰 성과로 치부해 마지 않던 9.19 공동성명은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밖에도 위조 담배, 마약 거래 등 미국이 북한을 향해 준비해 놓은 강공책들이 줄줄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이 미국의 전략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고, 참여정부의 '자주외교' '자주국방'은 씁쓸한 '말의 성찬' 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 2005년 3,4월 전략적 유연성 협상 국면에 답답증을 토로했다가 그 뒤 무슨 이유에선가 이 문제를 덮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2월 현재 그 당시보다 더 답답할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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