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상살이는 점점 더 팍팍해지기만 할까?"

[99%를 위한 기본소득]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87년 체제를 넘어서 2013년 체제로

1987년 당시 필자는 20대 혈기방장한 젊은이로 인천에서 노동현장에 있었다. 용접, 프레스, 주물공장 등 받아주는 현장은 닥치는 대로 흘러들어가면서 노동을 배우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자그마한 써클모임을 하면서 서로 정보도 교류하고 지역가두투쟁도 나가고 했었다. 광주의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과 맞서던 시절이었고, 그때는 정권을 뒤집기위해서는 선거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물리적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가투는 항상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모인 사람들의 눈빛은 긴장 속에서도 살아있었다.

87년 대투쟁은 그런 분위기에서 폭발했고 엄청난 기세로 정권과 기업들을 압박했다. 그 결과 직선제가 쟁취되었고 대중들의 강렬한 에너지는 합법적 선거절차라는 제도에 의해 걸러지고 수렴되었다. 그 이후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에서 암시된 바 그대로다. 엄청난 분출 이후 개혁을 표방한 정권교체가 있었고 노동자들의 97~98년 대투쟁, 2008년 촛불이라는 미진이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사회가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변혁운동에 같이했던 일부 개인들의 출세와 영욕사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전체 국민들,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성장이 있었다. 광범위한 진보적 시민들이 생겨났고 민주노총도 초기 40만에서 80만으로 늘어났으며 87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보적 인프라들이 지역에 깔려있다.

그러나… 87년 때와는 그 눈빛이 다르다. 그때의 살아있는 눈빛들은 찾아볼 수 없다. 사회양극화가 이토록 심하고 노동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는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최근 백낙청 교수가 갈파한대로 87년 체제를 만들었던 동력은 소진되고 이제 새로운 동력이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87년 체제에 대해 복잡한 설명을 하지만 간단히 말해 87년 체제란 독재를 깨고 나온 국민적 힘이 기존 체제와 불안정한 균형을 이루는 체제이다. 노사관계에서 보자면 87년 이후의 역사는 균형이 무너지는 과정이었다. 그것은 보수정권하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개혁정부 하에서도 마찬가지 관철되는 경향이었다. 87년 당시 젊은 투사들이 꾸었던 꿈은 현실 속에서 타협하고 굴절되고 변질되면서 시들어 버렸고, 노동자 민중들은 여전히 질곡의 삶에서 허덕이고 있는 현실이 우리 눈앞에 놓여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목표가 추상적이면 실천도 추상적이고 가다보면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87년 당시 노동자들이 꾸었던 꿈은 임금 인상과 인간다운 삶이었다. 적어도 민주노총 조합원들 중 일정정도는 이 꿈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아니 많이 부족하더라도 87년 이전과는 다른 여유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통상 하는 말로 '배가 부르면 세계관도 바뀌는 법'이니 민주노총의 총파업 동력이 자꾸 떨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배가 부르다고 주위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 것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민주노총의 대안은 혜택을 나누자는 취지에서 산별노조, 정권을 직접 운영하자는 입장에서 정치세력화였다. 그러나 산별노조는 제도적 제약 속에서 발전의 길이 가로막혀있고 정치세력화는 통합운동의 실패 속에서 겉돌고 있다.

나타나는 현상적 문제 속에 놓여있는 공통적 문제는 사실 콘텐츠의 문제다. 87년 젊은 투사들의 꿈은 아름다웠지만 구체적 비전을 담지 못했고 한국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파고들어가 해결할 수 있는 답안을 움켜쥐지 못했다. 기억들 하시는지? 사회구성체 논쟁의 그 허망한 종결을….

87년 대투쟁의 승리감과 그 이후 민주적 정권교체의 거품 속에서 그만 깜박 정신줄놓고 다들 눈앞의 전리품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뒤이어 닥쳐온 IMF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노동자들만 외롭게 남겨졌다. 노무현 정권은 총체적 역부족이었고 그것에 대한 대중의 복수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이었다. 물론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태운 격이긴 하지만….

2012년 정권교체의 호기라는 지금 개혁, 진보진영의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손님 실수로 인한 반사 이익이 더 커보이는 민주통합당만으로는 새로운 희망을 말하기에 허망하다. 2008년 촛불, 나꼼수, 안철수 현상으로 이어지는 대중의 거대한 흐름과 진보진영은 여전히 접속에 실패하고 따로 놀고 있다. 이대로는 정권교체도 만만치 않지만 천신만고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잠시 기분 좋을 뿐 삶의 문제와는 별 상관없었던 경험을 또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감을 지울 수 없다.

희망은 노동자 자신의 힘으로

앙꼬없는 찐빵을 억지로 먹어야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것은 간단하다. 앙꼬를 만들어 넣으면 된다. 물론 그 수고는 감내해야한다는 것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아닌가? 지금 개혁, 진보진영에 없는 앙꼬는? 바로 노동이다.

대표적으로 노동 없는 복지담론의 한계에 대해 많은 지적들이 있었다. 그런데 과연 노동있는 복지란 무엇인가? 기업들이 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다 챙겨간 우수리를 나누는 2차적 분배를 둘러싼 양적 다툼이 지금까지 복지논쟁의 본질이었다면 우리가 제기하는 노동있는 복지란 생산과정에서의 분배를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시절 복지정책은 그전 시기와 비교하여 상대적 진보성이 부정될 수는 없다. '필자가 해봐서 아는데' 의료보험, 고용보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진보적 사회안정망이었다. 문제는 사회적 상황이 너무 빨리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때 만든 안전그물은 지금은 너무 성기고 구멍이 많아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새로 설계를 해야 하는데 이제 부분적 땜방으로는 안 되고 완전히 새로운 프레임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 새로운 프레임이란 것이 무엇인가?'이다.

이런 문제는 워낙 추상화의 위험이 높아서 자칫하면 공허한 결론으로 끝나기 십상이라 구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민주노총은 1-10-100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번에 10개 법안을 100일 안에 통과시키자는 것이다. 10대 입법과제로 제기한 것 중 노동시간 단축 특별법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정부에서도 야심차게 치고 나와서 서서히 쟁점화가 되는 중인데 노동시간 단축의 접근방식을 둘러싸고 매우 중대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쟁점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삭감의 문제이다. 법정 노동시간을 주40시간으로 묶고 휴일노동을 연장노동에 포함시켜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인데 이 경우 대다수 노동자가 임금 삭감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노조가 있거나 조직이 되는 곳은 별도 협상을 통해 임금을 보전 받을 수 있겠지만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대다수 영세중소노동자의 경우는 별도의 소득 보전이 없는 한 임금 삭감이 불가피해진다. 그러면 부족한 임금을 보전하기위해 주말 투 잡(tow job)을 구하는 방향으로 흘러 결국 노동시간 단축의 실효는 없어지게 되고 오히려 부작용만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결국 관건은 노동시간 단축을 하면서도 실제 현 사회에서 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 수준을 보장하는 것이 노동시간 단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로 된다.

그런데 여기서 형성되는 전선과 지금의 논쟁구도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아니 시간을 줄이면 당연히 임금도 좀 양보해야지 하는 논리가 압도하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보전 논리가 마치 '도둑놈 심보'처럼 매도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래서 실제 가능한 임금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노동에 대한 개념 규정이 필요해지는데 이른바 '노동개념의 확대'이다. 지금 노동시간 단축 운동은 '고용노동시간'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다. 바로 이것이 현재 논의의 한계이고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지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시간은 노동자가 직장에서 근로계약에 따른 규정노동시간을 말하는 것이고,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이런 고용노동시간은 사실은 산업사회시대 형성된 개념이다. 산업사회 초기에는 물론 공장에서 고용되어 일하는 시간을 중심으로 논의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식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직장에서 일하는 8시간을 넘어서서 하루 24시간 직장과 관련된 정신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것이 산업사회와 지식정보사회와의 본질적 차이이다. 이 뿐 아니라 한 가장이 직장에서 일하게끔 하게 해주는 가사노동은 또 어떤가? 가사노동은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노동이지만 이것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기업은 없다. 단지 월급에 일정정도 포함하는 의미를 담아서 땡처리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지식정보사회가 굴러가게 하는 노동은 감정노동, 열정노동, 지식노동, 비물질노동 등 수치화할 수 없는 수많은 노동이며 시간으로 측정 가능한 육체노동은 그 중의 극히 일부분일 뿐인 것이다. 오히려 부가가치는 이런 보이지 않는 그림자노동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자본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노동은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로 무시하고 오로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만을 기준해서 돈으로 지급하는 관행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확대된 노동개념을 적용하여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사업에 눈을 돌리지 못함으로 해서 손해 본 액수는 그대로 자본으로 이전되어 자본의 배를 불리고 그것이 다시 노조를 약화시키고 사회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방향전환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 운동도 고용노동시간 단축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총체적 노동시간 단축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고용노동시간 단축 운동에서 총체적 노동시간 단축 운동으로

그런데 난점이 있다. 총체적 노동시간 범주에 포함되는 가사노동, 감정노동, 열정노동, 지식노동, 비물질노동 등을 어떻게 계량화할 것인가? 자본가들이 좋아하는 숫자와 계량화의 신화는 바로 계량화하기 어려운 것이 자본에 유리하다는 점에서 더 강조된다. 계량화 안 되는 것은 곧 측정 불가능한 것이고 그것은 돈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근대주의에 갇혀있는 한국의 지식풍토에서는 계량화 콤플렉스가 있다. 이를테면 논문에서 숫자나 계량치가 들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논문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비슷한 이유로 감정노동을 수치화하기 어려운 것은 곧 협상안의 근거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만큼 투쟁으로 전화시켜 쟁점화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임금협상에서 지식노동 등은 포괄적 월급에 의해 규정되며 일의 성격에 따라 따지기보다는 기업의 지불능력을 중심으로 결정되어왔다. 민주노총의 표준임금 역시 생계비 기준으로 산정되어왔는데 사실상 생산직 중심의 임금체계에서나 필요하지 사무직을 중심으로 하는 임금산정에서는 별로 효용성이 없게 된지 오래이다. 그러나 그것을 대체할만한 임금요구 시스템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는 유력한 대안 중의 하나는?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계산하기 복잡하니 그냥 사회가 생산해 낸 총량을 기준으로 일정부분 수익의 재분배를 통으로 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계량화가 가능하면 그것도 좋지만 안된다하더라도 이렇게 통으로 퉁쳐버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기본소득의 정신이다. 기본소득은 결과에 대한 사후적 분배를 가지고 다투는 것이 아니고 생산과정에서 개입하는 노동개념의 확장을 통해 도출되는 개념이며 그래서 현실운동에서 노동 중심의 복지정책을 관철하자면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다.

고용노동시간 단축 운동을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을 결합한 운동으로 발전시켜 내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 운동의 주체를 형성해내는 데서도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모든 투쟁에서 동력 문제는 기본이다. 민주노총 10대 요구안 중에서 거의 다 해당 주체들이 존재하지만 좀 애매한 것이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보험이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은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에 더 중요하게 동력 문제를 고려해야한다. 영세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주요하게 결합해서 자기들의 문제로 만들려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소득보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것을 민주노총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특별법을 만들어 소득보전 기금 설치 및 세제와 재정지원방안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90%에 달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혜택을 받으면서 임금도 보전받는다면 분명히 이해관계가 걸리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투쟁에 함께할 조건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 조건은 아직 가능성일 뿐이다. 이것을 현실화시키는 일을 누가 할 것인가? 바로 민주노총 가맹조직들과 지역본부에서 해야 한다. 총파업을 준비하면서 지역본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렇게 민주노총 10대 요구안을 전 국민에게 해설하고 이해관계를 연결시키고 조직해서 같이 행동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것이다. 임금보전을 하는 방식에서 가장 간단한 것은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현실화되기 어렵다면 단계적인 정책수단을 만들면 된다. 고용보험이나 기타 세제지원, 공제기금 등을 조성하고 전반적인 세제개혁을 통해 그런 재원을 만들어 가면 된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은 단지 임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노동자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쟁취는 곧 자유시간의 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늘어난 자유시간이 개인의 성장에 기여하기 보다는 소모적 소비문화의 영역에 포섭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래서 전교조의 교육개혁운동, 생활공동체 운동 등이 자체로 더 심화되고 동시에 대중의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노총 각 산별연맹들이 하고 있고 또 개척해 나가야할 노동정치의 영역이다. 요약하자면 현재 고용노동시간 단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프레임을 깨고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그리고 자유시간의 대안적 사용시스템을 구성하는 운동을 결합시킨 총체적 노동시간 단축 운동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노동운동에서 요구된다.

이러한 운동의 이념적 철학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체계적 교육과 논의를 통해 대중운동의 폭과 깊이가 확장되는 것은 바로 촛불과 노동의 만남! 그리고 노동과 복지의 만남을 의미하고 그것이 하나의 실체화된 주체로 등장할 때 2013년 체제는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잉여사회인가 공존의 사회인가?

솔직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낙관적이진 않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이 워낙 커져서 이제 개혁진보진영이 웬만큼만 하면 정권교체 자체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여전히 남는 문제는 정권교체 이후에 대한 그림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정치의 구체적인 활동이 취약하고 축적된 것이 약해 지금의 진보정당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도 약하다. 노동정치의 대한 문제의식이나 실천역량에 비해 권력 의지가 더 부각되는 것은 좀 위험해 보인다. 물론 총선이나 대선은 전쟁이며, 전쟁에서는 고상한 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총알과 식량이 중요하다. 그러나 나라를 운영하는 것에서 식량과 군사와 믿음 중 제일 중요한 것 하나를 챙기라면 믿음을 챙겨야한다고 누군가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지금 진보진영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 결과는 정확히 지지율로 판단하면 된다. 지지율은 과거의 행적, 현재 모습, 그리고 미래 기대치의 종합이다. 지지율 5%는, 과거는 회한 속에 흘러갔고 현재는 분열되어 있으며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판단의 산물이다. 진보진영은 그나마 미래기대치를 최대화해야하는데 그것이 난망한 셈이다.

목표가 다르면 각자 분열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 진보진영의 통합운동이 실패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목표가 불분명하고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합하자고 난리를 피우기보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길을 열심히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다보면 어느 순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 구호로서의 목표가 아니라 좀 더 과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뭐든지 그것을 풀면 다른 것도 풀리는 핵심 고리가 있는 법이고 한국사회에서 핵심 고리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통합에서도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시간 단축 운동과 결합된 기본소득 운동은 현재 분열되어있는 진보개혁진영을 횡적으로 가로지르면서 담론을 확장시켜나갈 잠재력을 갖고 있다.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볼 때 현실적인 노동의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매우 유용한 이념적 도구로 작동가능하다. 당장 실현가능한 현실적 정책으로 가능하냐고 딴지를 거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을 더 발전시키자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를 결합시키자면, 그래서 노동운동과 농민, 빈민, 학생 등의 계급과 이해관계가 결합된 운동을 전개하자면 그것을 하나로 묶어줄 유력한 이념적 도구로서의 기본소득을 주목할 필요가 있고 이미 좌우를 망라한 하나의 네트워크로 발전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 실업의 문제가 일자리를 통해 해결하자는 것이었다면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잉여사회로 전환되었다. 잉여사회에서 일자리 중심해법은 자칫하면 노동자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된다. 노동자들이 움켜져야할 것은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노예적 표식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당당한 해방의 깃발이다.

민주노총은 1-10-100운동을 80만 조합원과 함께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이라는 핵심적 고리에 '접속'하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그동안 소원했던 수많은 촛불들과도 함께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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