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좌파'는 가라!…이제 '기본소득'으로 뭉칠 때!"

[99%를 위한 기본소득] 기본소득과 진보의 진화

신자유주의와 진보의 진화

197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지구를 망쳐놓았던 신자유주의가 막바지 위기에 달했다. 신자유주의가 '일종의' 진화된 자유주의였다면, 그간 진보좌파도 진화했다. 사민주의의 위기는 서구의 68혁명과 생태·여성·문화·미시세계의 변혁을 지향하는 신좌파를 낳았다. 이제는 부동산·금융 투기로 살아가는 자본과 이들을 위한 재정지출로 재정적자를 낳은 보수정부처럼 젊은 세대와 미래세대까지 미리 당겨서 착취하고 수탈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과 보수세력에 대항해, 젊은 진보좌파가 지구 곳곳에서 불안정한 삶에 시달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농민·영세자영업자·빈곤노령층·생태·여성·장애인·청소년·아동·이주자와 함께 '우리는 99%다'를 외치면서 프레카리아트라는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Occupy 운동에서 새로운 젊은 진보좌파와 99% 프레카리아트의 부상은 다중으로 뿔뿔이 찢겨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진보좌파 및 변혁계급의 진화를 대세로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도 촛불과 더불어 SNS를 통해 젊은 세대가 진보적인 계급으로 형성되고 진화하는 것은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일 게다.

청소년·청년 세대의 급진화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까지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이었던 독일에서, 청소년·청년 운동의 주역들이 만든 지 몇 년 안 되는 해적당이 2011년 가을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8.9%의 지지율로 주의회에 진출함으로써 지구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진보좌파가 되었다는 것은 진보좌파 및 계급 진화의 새로운 징표이기도 하다. 해적당은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 그리고 이의 현물형태인 '무상 무선인터넷', '무상대중교통'을 공약으로 2011년 8월까지 2%에 머물렀던 지지율을 9월 선거에서 8.9%로 끌어올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독일 해적당은 전국적으로도 좌파당에 필적하는 7~10%의 지지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촛불을 지폈던 청소년, 그리고 지금 트위터 등을 통해 연합지성을 발휘하는 젊은 세대는 독일의 젊은 세대나 Occupy 운동 세대와 비교하면 잘나면 잘났지 못날 것이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중도개혁세력에게 대안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진보좌파가 못났기 때문일 것이다. 좌파를 참칭하는 북한정권의 못난 모습과 한국의 못난 보수세력 등 외부 여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진보좌파가 설 땅이 좁아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라도 우리나라의 진보좌파가 모범적으로 진화했다면 지구적으로 모범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08년 청소년이 앞장선 한국의 촛불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서구의 Occupy 운동보다 충분히 앞섰고, 지구적으로 모범적인 진보좌파의 진화가 한국에서도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젊은 세대와 함께 한국의 구좌파와 신좌파가 새로운 진보와 변혁의 계급 프레카리아트로 진화하지 못한다면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구좌파/신좌파와 젊은 진보좌파의 상생적인 진화와 프레카리아트의 형성

그런데 젊은 진보좌파가 부상한 독일 좌파의 진화과정은 모범적인가? 또 '노동'을 중시하는 구좌파와 생태·여성·문화·미시세계를 중시하는 신좌파는 진보좌파의 진화과정에서 젊은 진보좌파에 자리를 내어주고 도태되거나 도태되어야 하는 것일까?

서구에서나 한국에서나 진보좌파의 진화과정은 그간 구좌파와 신좌파가 서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서로 대립하고 제약하는 과정이었음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 과정은 좌파의 몰락으로 이어져 신자유주의의 창궐과 함께 강한 보수연합 및 중도개혁연합으로 정치권의 두 중심을 강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지금 독일에서 젊은 진보좌파의 부상이 좌파의 대립과 분열을 더욱더 촉진하여 보수세력과 극우파가 재부상할 발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진보좌파는 이제 과거의 대립과 분열이 아니라 서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상생적인 경쟁과 연대를 통해 진보좌파 진화과정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해야 한다. 단일 조직으로 통합되든지 아니면 독자적인 조직들의 연합체나 접속체가 되든지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 것이며 열린 문제로 남겨놓아도 될 것이다.

좌파 내부의 상생적인 진화과정은 어쩌면 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노동자 중심주의와 녹색·여성 중심주의의 대립을 넘어서서 새롭게 등장한 젊은 진보좌파와 더불어 진보좌파는 드디어 모두가 힘을 모아 '우리는 99%이다'라고 천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촘스키의 말대로 '우리는 99%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다. 촘스키에 앞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옹호한 앙드레 고르츠는 1997년에 <현재의 빈곤. 가능성의 풍요(Misères du présent. Richesse du possible)>에서 신자유주의가 '우리 모두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99%로 증대되는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면서 불안정한 노동과 삶에 시달리는 무산자를 지칭한다.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정규직을 포함한 임금노동자 및 실업자와 퇴직자도, 녹색주의자와 여성도 프레카리아트에 속하며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0대)인 '늙은' 청소년도 프레카리아트의 일부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로 자본의 착취와 수탈이 확장되면서 그들은 인구의 99%로 확대되고 있다. 어쨌든 구좌파든 신좌파든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이주자와 청소년·청년의 가치를 올려주어야 한다. 이주자와 청소년·청년이 독자적으로 새로운 진보좌파 블록을 형성할지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좌파는 대립과 분열로 굴절된 과거의 한계를 넘지 못한 채, 도태의 위기에 처할 것이다.

노동이 아니면 진보좌파가 아니라는 옹졸함, 녹색과 여성이 아니면 보수라는 피해망상, 젊지 않은 사람들은 진보좌파가 될 수 없다는 소아병은 진보좌파의 진화과정에서 눈 녹듯이 녹아 없어지고 프레카리아트라는 봄의 대지로 흡수되어야 한다. 그 진화의 길을 만들어 간다면 처음에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데 따른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진보좌파는 20세기 초중반의 진보좌파보다 더 많은 세상을 변혁하게 될 것이다. 맑스가 <자본> 3권에서 말한 '연합지성(assoziierter Verstand)'은 99%의 힘을 예견한 것이었다. 비록 그는 자본주의가 99%를 임금노동자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로 만들 것이라고 착각할 만한 시대에 살았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인구의 99%를 프롤레타리아트를 포함한 불안정한 무산자계급 곧 프레카리아트로 만들고 있다. 아니, 프레카리아트는 21세기 프롤레타리아트이다. 이들이 공동의 비전을 갖는다면, 이를 당해낼 수 있는 정치세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누가 99%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보수 신자유주의와 때로는 중도개혁파가 지구를 망칠 수 있었던 것은, 99%의 프레카리아트가 모자라거나 몽매해서가 아니라 진보좌파들의 굴절된 진화과정 때문 아니었을까?

기본소득의 비전과 현실성

가이 스탠딩이 2011년에 <프레카리아트(The Precariat)>에서 말했듯이, 모든 사회성원 각자에게 돌아갈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연합지성을 갖춘 99% 프레카리아트의 형성과 진보좌파의 재구성을 위한 비전이다.

한국의 친환경 무상급식은 지구적으로 자랑스러운 부분적인 현물 기본소득이다. 이 친환경 무상급식의 운동과 아젠다는 10년을 넘었지만, 광역지자체에서 정책적으로 채택되고 전국의 광역지자체로 확산된 것은 경기도교육청의 2009년 정책결정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경기도교육감을 포함한 기본소득의 주창자와 지지자들이 경기도교육청 차원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채택하여 정책으로 구체화한 것은 기본소득의 정신에서 그 일부로서 고의적으로 채택되고 정책화된 것이었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포함하여 '모두를 위한 무조건적인 현물 및 현금 기본소득'은 지구와 역사적으로 전승된 자산이 모두의 것이며 여기에서 생겨나는 수익이 아동과 청소년 및 청년을 포함한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인류, 심지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지속적으로 서로를 풍요롭게 하며 서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선물'이라는 정신을 구체화한 것이다. 젊은 세대가 등록금과 빚, 전망도 희박한 취직 준비로 자기의 소질과 가능성을 소진하는 대신에, 무상급식·무상교육·기본소득을 누리게 된다면 자본에 종속된 임금노동자가 되기 위해 목매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수많은 일자리와 활동들을 스스로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지구와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세대에게 돌려줄 것이다. 그럴 때만이 지구와 인류는 지속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당연히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재원은 이미 우리에게 있다. 자본을 위한 각종 보조금과 공적자금이 미래세대가 부담할 재정적자를 통해 조달되는 것과 반대로, 기본소득은 이미 생산된 부의 일정비율을 지속 가능한 최대한의 수준에서 모두에게 평등하게 돌려주는 것이다. GDP 경제통계 자체에 한계가 있지만 이를 활용해서 말한다면, 한국의 기본소득네트워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이미 생산된 가처분 GDP의 30%에서 50% 수준까지를 이주자와 아동, 청소년, 청년, 노동자, 노령층 등 모두에게 현물과 현금으로 개별적으로 돌려주자는 것이다. 물론 장애인에게는 추가로 더 많은 기본소득 또는 장애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주장대로 한다면 2011년을 기준으로 할 때, 무상급식이나 무상교육 및 무상의료 외에도 각자 매년 약 700만 원에서 1,200만 원에 이르는 현금 기본소득을 누릴 수 있다. 그 재원은 토지·금융 불로투기소득 중과세 및 생태세, 기업의 공유화에 기초한 공유기업 수익 확대, 통화주조차익 등을 통해 점차 확대할 수 있다. 이는 미래세대의 것을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부를 재원으로 하는 것이며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와 반대로 지속 가능하며 현실적인 대안이다.

급진적이면서 99% 프레카리아트와 함께 진화하는 길, 기본소득

우리는 친환경 무상급식이 한국 보수세력의 몰락과 민주/진보의 회생에 끼친 효력을 알고 있다. 그리고 젊은 청소년들과 젊은 부모들이 스스로 진보임을 자부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다.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은 그 일부인 친환경 무상급식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진보좌파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에만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프레카리아트의 형성과 진보좌파의 재구성을 촉진하는 진보좌파 진화의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전반적이고 무조건적인 현금 및 현물 기본소득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주장하는 모호한 '보편복지'의 선명한 '원조' 결정체이기도 하다. 99%의 프레카리아트가 아직 기본소득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은 기본소득을 공론화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새로이 재구성될 한국의 진보좌파는 잃을 것이 없는 99% 프레카리아트의 정치세력이며 스스로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겁낼 필요가 없다. 아니 진보좌파는 오히려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의 비전을 통해 99%로 확대일로에 있는 프레카리아트의 자랑이 되고 그들과 함께 확대되는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진보좌파가 기본소득을 겁내기보다 희망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더 구체적인 데 있다. 불안정한 노후와 주거, 그리고 자녀교육비 부담은 한국의 임금노동자들을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으로 내몰고 있다. 이는 자본가의 바람만이 아니라 한국의 임금노동자들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국의 임금노동자들은 연장노동을 선택할 때만 그나마 삶의 불안정을 완화할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돌아갈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한국 임금노동자의 삶의 불안정성을 크게 제거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더는 생명을 단축하는 연장노동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 원하는 노동과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보편적 기본소득은 남성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여성의 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며, 여성과 청년들이 열악한 비정규직을 더는 수용하지 않도록 파업기금의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건은 비약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뿐만인가. 수요가 확대되고 1인당 노동시간이 축소되기 때문에 일자리가 늘어나 청년실업도 비약적으로 해소될 것이다. 더구나 무상교육과 더불어 현금 기본소득은 청년들의 빚더미 부담을 일거에 제거한다. 그리고 무상의료와 더불어 현금 기본소득은 더는 비참한 노후에 시달리는 사각지대의 노령층을 깡그리 없앤다. 임금노동자들은 임금 외에 추가적인 기본소득을 누릴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의료/노후/부모부양에 지출되었던 소득을 더 원하는 데 쓸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 및 실업자를 모두 포함한 임금노동자, 여성, 청소년, 청년, 노령층을 공동의 이해관계로 접속시키고 묶어낼 기본소득은 99%의 인구를 공동의 이해관계와 비전을 가진 실질적인 프레카리아트로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진보좌파가 기본소득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이처럼 99%의 프레카리아트와 자신을 공동의 이해관계와 연합지성으로 연결하고 접속시켜 변혁의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좌파와 신좌파 그리고 젊은 진보좌파는 분열과 대립으로 굴절되었던 과거의 진화과정을 변혁하여 서로의 가치를 올려주는 진화과정이 되도록 연대하거나 상생적인 경쟁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해야 한다. 이는 당위적인 선언이 아니라, 공동의 이해관계에 기초한 공동의 운동과 비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미 시작된 99%의 프레카리아트 운동은, 진보좌파의 진화과정을 벌써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99%의 Occupy 운동과 한국의 청소년·청년 운동은 아직은 어디로 갈지를 탐색하고 있다. 진보좌파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자신들의 과제로 받아들이고 이들과 접속하고 만나며 함께 진화해야 한다. 여태까지 한국의 진보좌파는 급진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길을 찾지 못하였다. 급진적이면서도 99%가 함께 진화하는 길, 그 길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앞에, 옆에 있다. 모두를 위한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그 길로 가는 대문일 것이다. 99%의 연합지성이 그 대문을 찾지 못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99%가 그 대문을 찾아 들어가는 다음에야 진보좌파가 그 길을 뒤 쫓아 가거나 아니면 99%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면, 그때는 지금까지의 내부 분열과 대립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진보좌파의 보수화 아니 퇴화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환경 무상급식이 진보좌파와 대중적인 진화과정의 전초전이라면, 전면적인 현물·현금 기본소득은 진보좌파와 99%의 진화를 대세로 만들 것이다. 비록 정세에 따라 점진적으로 추진할 수도 있겠지만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은 그렇듯 진보좌파와 99%의 비전과 희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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