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아빠', '평민 아빠'…초딩도 안다

[99%를 위한 기본소득]'비정규직'·'여성'이 기본소득 실현의 적극적 주체 되어야

"단편영화 <격정 소나타>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고은 씨는 설을 앞둔 1월 29일 경기도 안양의 월셋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갑상선기능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던 최씨가 수일째 굶은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프레시안>, 2011년 2월 9일)

정규직/비정규직: 신분사회의 재도래와 헐벗은 생명체

신분사회가 재도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십여 년도 훨씬 전부터 초등학교 아이들이 먼저 그것을 알아채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초딩들은 자신을 포함한 또래들 중 누가 '귀족'이고 누가 '평민'인지를 구별하기 시작했고 대개 그 구별의 주된 잣대가 된 것이 집(주로 아파트)의 '평수'였다. 집은 곧 축재된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신분사회가 봉건제의 유물일 뿐이라고 여전히 믿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어떤 사회적 신분의 몸으로 세상에 나는가를 핵심으로 평생의 신분에 족쇄가 채워지는 불평등한 사회가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하여 OECD 경제대국으로 거듭난 IT 강국에 도대체 어울릴 수 없다고 애써 믿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 또한 신분사회의 재도래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저 차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한때 초등학교 아이들에 의해 아파트 평수로 구별되었던 신분은 그 후 몇 년이 채 되기 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어엿한 명칭으로 변태했다. 그리고 이 사회 누구도 이 새로운 신분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새로이 도래한 신분사회 안에서 근대의 찬란한 유산인 '평등한' '개인'이란 사실상 도산 직전의 기업체와도 같아졌다. 신분은 결코 개인과 함께 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렇기에 '개인'의 탄생은 '신분사회'의 종말과 함께일 수밖에 없었고 '신분사회'의 종말이 곧 '개인'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은 그래서 당연한 역사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새로운 신분체제 앞에서는 개인들 사이 차이의 존중이건, 개인들 사이의 평등이건, 개인들 각각의 의견에 대한 민주적인 존중이건 그 어떤 근대의 가치도 깨지기에 십상인 싸구려 유리그릇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근대 역사의 당당한 주체의 자리를 호령했던 '개인'은 이제 빌어먹을 제 몸뚱이 하나 겨우 건사하기도 어려워진 헐벗은 생명체로 전락하고 만 것인가?

근대사회의 오래된 신분, '여성'

새롭게 도래한 신분체계가 봉건제적 신분과 엄밀히 따져 다른 것이 꼭 하나 있다면 그것은 봉건제적 신분이 공식적으로는 엄격히 생물학적 계보를 핵심으로 한 것이었던 반면 새로운 신분제도는 자본가가 정해주는 관계를 핵심으로 한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봉건제적 신분이 어떤 신분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두었는가를 핵심으로 한 것이었다면 새롭게 도래한 신분은 자본가가 어떠한 관계를 설정해 주었는가를 핵심으로 한다. 즉, 새로운 신분제도는 부계의 혈통이 아니라 자본과의 관계가 핵심이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자본과의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신분제도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봉건적 신분제도가 타파되었던 바로 그 동일한 역사의 장에서, 지위 고하와 부의 정도가 다른 남성들이 '신분'을 역사의 뒤꼍으로 보내고 '개인'으로 재탄생하면서 서로의 어깨를 나란히 하였던 바로 그 역사의 장에서, 이들을 '개인'이라는 근대적 인간으로서 구성시키고 이 개인들 사이의 관계를 자유, 평등에 기반한 관계,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계약을 통해서만이 서로를 강제할 수 있는 관계로 재개념화하는 역사적 합의가 이뤄졌던 바로 그 동일한 역사의 장에서, 사실은 또 하나의 봉건적 신분이 새롭게 구성되면서 그 모든 사회적 합의의 핵심적 토대이자 배경이 되어 주었다. 바로 '여성'이라는 신분이었다.

인류역사를 가로지르며 산, 들, 바다, 밭, 논, 안방, 부엌, 마당, 시장, 유곽, 궁궐 등 역사의 현장 어디에나 있었던 여성들은 남성이 근대적 '개인' 주체로 거듭나는 동안 철저히 남성과의 관계를 핵심으로 성별화된 지위를 부여받았다. '조강지처', '현모양처', '가정주부', '양공주', '창녀' 등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지위들이다. 남성과 평생의 시간을 걸고 최초의 부부로서 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그 여성은 '조강지처'의 지위를 얻었다. 그 남성의 생물학적 계보를 잇는 인간을 생산하면 '현모양처'의 지위도 얻었다. 산업화 일로에서 주로 공장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 된 일터와 주로 잠을 자고 아이를 양육하는 곳을 일컫는 곳으로 변질된 집 사이의 거리가 물리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멀어지게 되면서 여성은 집을 '가정'으로 가꾸고 지키는 '가정주부'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일군의 여성신분의 집단이 이러한 지위를 처사 받는 동안 또 다른 일군의 여성신분의 집단은 대체로 사회적인 낙인이 찍혀있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이들이 하는 낙인찍힌 일들과 특징은 다양했다. 그러나 공통된 것이 있었다면 이들이 스스로 원했던 그렇지 않았든 상관없이 한 남성과 평생의 시간을 걸고 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남성과의 거리를 완전히 절연하면 절연하였다는 이유로, 한 명이 아닌 남성과 관계를 구성하였다면 또 그 이유로 자신의 삶의 방향과 질이 결정되어야 했던 이들이다. 이처럼 여성이라는 신분이 얻을 수 있는 지위가 남성과의 관계를 핵심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 연대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남성은 곧 신분과 지위의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에게 봉건제적 신분제도는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그것이 생물학적 부모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통해 결정되었던 봉건시대와 달리 남성과의 관계를 핵심으로 결정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통령인 남성과 가장 처음 법적 관계에 돌입하여 관계를 유지한 여성은 영부인의 지위를 얻게 되고 7급 공무원 남성과 가장 처음 법적 관계에 돌입하여 관계를 유지한 여성은 7급 공무원 남성의 처라는 지위를 얻게 되며 막노동자 남성과 가장 처음 법적 관계에 돌입하여 관계를 유지한 여성은 막노동자의 처라는 지위를 얻게 된다. 남성은 대통령이 될 수도, 7급 공무원이 될 수도, 공사현장의 막노동자가 될 수도 있지만, 근대시기 오랫동안 여성은 대통령이 될 수도, 7급 공무원이 될 수도, 공사현장의 막노동자도 될 수 없었다. 단지 그들의 처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80년대 이후 여성운동과 여성학이 높이 문제를 제기해 왔던 '성 역할'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모든 것이 단지 성 역할이라는 말로 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대적 '성 역할' 관념은 '여성'이라는 근대적 신분의 탄생이 가져온 결과물로 봐야 하지 그것의 원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여성들이 어떤 남성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를 두고, 즉, 여성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연결되는 자원으로서의 남성을 두고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신분으로서의 '여성'을 등장시킨 사회체제 아래에서는 당연한 결과이다. 여성들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연대하기 힘들었던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처와 첩은 서로 하품조차 나란히 하지 않을 만큼 앙숙이라고 하니 그런 관계에서 어떻게 정치적 연대를 기대할 수 있을까?

8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적 변화와 더불어 활발하게 진행되어 온 여성운동과 여타 다른 사회운동의 결실에 힘입어 이제 여성들은 꼭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의 지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닌 시대를 살게 되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고용노동(또는 임금노동) 영역으로의 진출이 급증하면서 '가장'이라는 이름의 남성을 통하지 않고서 자본과 국가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여성들이 급증하였다. 비로소 여성 또한 근대적 계약주체인 '개인'으로서 어느 정도는 거듭나게는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여성 자본가의 등장, 여성 관료의 등장 등으로 이제 여성은 다시금 역사의 현장 어디에나 있고 또 어떤 것에도 관여되어 있는 역사의 주체로서 다시금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기본소득 네트워크

처/첩 체계와 정규직/비정규직 체계는 닮은꼴

이런 와중에 또다시 등장한 새로운 신분체계가 바로 '정규직/비정규직' 신분체계이다.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는 처와 첩의 관계와 많이 닮아있다. 앞서도 말하였듯이 다른 것이 있다면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관계는 남성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본과의 관계가 그 핵심이라는 데 있을 뿐이다. (자본가가 대다수 남성들이고 남성 중심적 체제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진다면 정규직/비정규의 관계 또한 남성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정된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남성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위가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이 바로 그 이유로 서로 간의 연대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처럼 또 서로 연대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분할·지배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자본과 어떤 방식의 관계를 맺느냐를 중심으로 그 지위가 결정되는 노동자들은 또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서로 간의 연대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분할·통제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더해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신분체계 안에는 비정규직 대다수(70% 정도)가 바로 여성이라는 사실이 교묘하게 감춰져 있다. 비정규직 여성이 '여성'이라는 신분과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라는 날실과 씨실의 중첩된 지위를 얻게 된 이유는 앞의 맥락 안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남성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지위가 결정되는 '여성' 신분이기에 자본과의 관계에서 남성만큼의 협상력을 갖기도 어렵고, 그만큼의 처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자본이 여성을 필요로 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비정규직' / '여성'과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

비정규직 여성이 그저 여성이라는 신분만 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신분 또한 점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점이다. 근대적 개인 주체가 자유, 민주, 평등의 가치를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요구하고 향유할 수 있는 주체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했을 때 비정규직 여성이 점하고 있는 주체의 위치는 여성이라는 신분 위치보다 더 근대적 주체 위치에 가깝게 다가서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여성'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

가장 우선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소득이 모든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것이다. 근대사회 들어와서도 '여성'은 온전한 '개인'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성 중심의 준거 안에서, 남성 중심의 기준 안에서, 남성 중심의 체제와 체계 안에서, 남성과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대항이건 저항이건 거기에는 항상 '남성'이 하나의 절대적인 쌍과 같이 들러붙어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와 유사한 어떤 기준도, 준거도 없다. 단지, 이 사회라는 시공간에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이 자격요건이 될 뿐이다. 그야말로 어떤 특정한 인간집단을 준거로 한 설명이나 인정에 대한 요구와 같은 굴욕적인 과정 없이 그저 온전한 하나의 '개인' 행위주체로서 고려될 뿐이다.

'기본소득'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기본소득 제도'가 '소득', 즉, 가처분 역량(혹은 소비역량)을 증대시키는 데에, 즉, 활동역량을 증대시키는 데에 일조할 것이라는 점이다. 소득이 늘면 그만큼 활동 에너지의 양이 증가할 수 있다. 증가한 활동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 것인지는 함부로 예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역사는 다채로운 행위자들의 장이지 않은가. 그러나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사회와 교류하였던 여성들이 남성과의 관계의 성격과 질을 재정립하는 데 이 활동역량을 쏟을 수도 있다는 예견은 해봄 직하다. 자본과의 관계에서 가장 열악한 협상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비정규직 여성 또한 자본가와의 관계의 성격과 질을 재정립하는 데에 이 활동역량을 쏟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견도 해봄 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 볼 점은 '기본소득'이 자본가가 아닌 '국가'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위 첫 번째 중요한 점에서 언급한 지점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 자본, 개인의 관계를 큰 틀에서 재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삼각관계적 틀이 가질 수 있는 역동성과 상호 참조성 그리고 상호 강제성이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이유로 '비정규직'/'여성'은 '기본소득' 실현을 통해 상호 간의 관계의 틀을 재설정, 재구성하는 뜻깊은 역사적 장에 적극적인 역사적 주체로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통해, 故 최고은 작가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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