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정대세, 월드컵을 달군 한 재일조선인 청년에 대한 기억

[월드컵] 2014년 월드컵에서 '조국통일 세리모니'를 기대하며

북한 축구대표팀이 25일 밤 코트디부아르와의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패함으로써 44년만에 진출한 월드컵 본선에서 3전 전패를 기록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이로써 결국 스트라이커 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가 준비했다고 알려진 '조국통일' 티셔츠 세리모니는 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골을 넣으면 유니폼 안에 '조국통일' 글귀나 한반도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다가 유니폼을 벗어 보이는 세리모니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월드컵 기간 내내 활자화된 '조국통일' 네 글자보다 더 큰 울림을 한국과 북한, 그리고 재일조선인 사회에 퍼뜨렸다. 지난 16일 브라질과의 경기를 앞두고 북한 국가를 부르던 중 눈물을 흘린 장면 때문이었다.

그는 눈물의 의미에 대해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대단한 대회에서 세계 최고팀인 브라질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고 밝혔지만, 재일조선인으로서 가지는 조국에 대한 상념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감수성이 뒤범벅돼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청년의 눈물은 곧 전세계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21일 포르투갈과의 경기에 앞서서는 정대세에 포커스를 맞춘 영상이 전세계에 송출되는 장면도 있었다. 포르투갈전 직후 영국 언론 <가디언>은 '정대세 워치'라는 짤막한 글에서 "그는 단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며 "그의 얼굴에는 눈물 대신 빗물이 흘렀다"고 전했다.

"자신의 뿌리,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

▲ 북한 국가를 듣고 눈물 흘리는 정대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놀라움을 안겨줬다. ⓒ연합뉴스
해외 언론들까지 정대세의 눈물에 주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재일조선인의 복잡다단한 사정과 그가 북한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기까지 지켜온 신념과 그 어려움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가 북한 대표팀으로 뛰기까지, 재일조선인 축구협회가 피파에 그의 특수한 상황을 문의하고 북한 정부에 한국 국적인 그를 인정하도록 설득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조선고급학교 시절부터 꿈꿔 온 인공기 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2007년에 입게 된다.

왜 어려운 길을 택했을까? 그가 J-리그에서 뛰는 한국 국적의 선수면서도 북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데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조선학교에서 받은 교육이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재일교포 3세 스포츠 자유기고자인 신무광이 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선수>에서 정대세는 "학력이나 직위도 소중하지만 살아가면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자신의 뿌리이며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신념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신념을 세워준 학교에 감사하다"고 밝히고 있다.

거침없고 솔직하게

'뿌리'에 대한 신념과는 별개로 정대세는 나고 자란 곳인 일본의 언어를 훨씬 더 자유롭게 구사한다. 언어뿐 아니라 패션이나 음악 취향 면에서도 북한보다는 일본에 가깝다. 랩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는 화려한 티셔츠를 즐겨 입으며 헤어스타일도 자주 바꾼다. 또 나이키로부터 후원받은 축구화를 신으며 십자가가 그려진 액세서리를 걸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북한 사회에서 쉽게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북한의 폐쇄적인 이미지와도 거리가 멀다. 북한이나 조선학교에 편견이나 악감정을 갖고 있는 이들도 정대세만은 별개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대세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꺼리는 다른 북한 선수들과는 정반대로 언론 앞에서 서슴없이 자신을 밝힌다. "우리 골키퍼는 빠르지만 높은 공은 잘못하는 것 같다", "박지성과 유니폼을 바꾸고 싶었지만 나중에 유니폼이 모자랄까 봐 바꾸지 못했다" 등 거침없이 솔직한 발언이 매번 화제가 되고 있다.

적극적인 소통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는 물론 포르투갈어까지 4개 국어를 구사한다는 사실도 팬들의 관심을 샀다. 그는 이에 대해 "세계적인 스타들과 경기장에서 대화하기 위해 포르투갈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밝혀 자신의 큰 포부를 보여주기도 했다.

정대세가 연재하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전문가 칼럼이나 그가 남아공 월드컵 입성을 계기로 운영하기 시작한 블로그·트위터의 인기도 동반 상승했다. 블로그에는 월드컵 경기와 관련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물론 자신의 '셀카'도 게재돼 있다.

특히 포르투갈전 후 자신의 블로그에 "브라질전 때보다 수십배의 심적 충격을 느꼈고 하루 정도를 우울하게 보냈다"면서도 "이런 우리를 응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적어 또 한 번 '정대세'로 검색되는 수십 건의 기사가 나오게 했다.

▲ ⓒ정대세 블로그

정대세 신드롬

정대세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오는 곳에는 여전히 북한이라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누리꾼들의 악성 댓글이 따라온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을 거치면서 이 재일조선인 청년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인 것이 '대세'로 굳어진 듯하다.

정대세의 친근한 이미지가 북한 선수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희석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브라질전에서 한 골을 성공시킨 지윤남(4.25 체육단)에게 '인민 초콜릿남'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차범근 <SBS> 축구 해설위원이 북한 선수들을 가리켜 "우리나라 선수들만큼 애정이 가고 두근거린다"고 밝힌 것도 이와 같은 우호적 무드 속에서야 가능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냉각된 남북관계와 상관 없이 북한팀에 호감을 표시할 수 있었던 정대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포르투갈전 때는 많은 시민들이 봉은사에 모여 북한을 위한 거리응원을 벌였고 매 경기마다 트위터 공간이 응원으로 달아올랐다. 한 트위터리안은 안영학(오미야)과 정대세의 트위터에 "월드컵은 계속 열릴 거고 우린 계속 응원할 거야. 절대로 기죽어서는 안 돼"라는 '멘션'을 날리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그의 인기는 높다. 일본 스포츠 포털 사이트인 <스포츠 나비>의 한 재일교포 3세 기자는 북한 대표팀을 취재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고려 호텔 노래방 라운지의 여직원들로부터 "정대세 선수를 모르는 평양 시민은 없다. 실전에서도 부디 활약해주기를 바란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정대세는 이번 월드컵 북한팀의 공개훈련 후 공식인터뷰에서 "스포츠와 정치는 별개다.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것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북한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정대세는 그 '정치적인 것'들의 경색이 무색하게 한반도가 오랜만에 한 목소리로 "북한, 잘해라!"를 외치게 한 장본인이다.

2014년, 다시 대세(Big World)를

하지만 정대세는 국적에 얽힌 스토리나 자유분방한 행동 이전에 축구 선수로서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어 앞으로 그라운드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세계 최강 브라질 수비수들과 맞서 결코 뒤지지 않는 플레이를 선보여 외신과 해외 구단주들의 주목을 받았다. 브라질전 후반 44분께 지윤남이 만회골을 터트릴 수 있도록 헤딩 패스를 한 것도 정대세다.

<ESPN>은 정대세가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매끄러운 플레이를 확실히 보여줬으며 사실상 (북한팀에서) 유일하게 공격을 한 플레이어였다"고 했으며 <골닷컴>은 "정대세의 폭발적인 공격력은 수비진을 긴장시켰다"고 평가했다.

비록 참패했지만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줬던 끈기있는 모습도 북한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ESPN> 평점 7점을 받게 했다. 코트디부아르전에서도 후반 8분과 36분 상대팀 골키퍼 부바카르 바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골 찬스를 만들어냈다. 비록 득점으로 연결시키진 못했으나 이날도 종횡무진 상대팀 문전을 휘저었던 정대세는 분명 위협적인 선수였다.

3패 전적과 함께 정대세는 이제 일본 J-리그 선수 생활로 돌아간다. 소속인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복귀하지만 앞으로 그가 꿈이라고 밝혔던 유럽 무대를 밟을지도 모른다. 독일 분데스리가 2부 VfL 보쿰이 월드컵 개막 전 가진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정대세가 보인 활약상을 높이 사, 그의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다.

뛰는 무대가 일본이 됐든 유럽이 됐든 청년은 또 다시 '조국'의 선수로 나타날 것이다. 많은 누리꾼들은 코트디부아르 경기 후 "'조국통일' 티셔츠가 어떤 무늬일까 궁금했는데 보지 못해서 아쉽다"며 "2014년에 브라질에서는 그 세리모니를 꼭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북한은 비록 '1966년의 기적'을 재현하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다음 월드컵을 기대하게 했고 '남북한 단일 축구팀'까지 거론하게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대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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