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와 '정대세'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월드컵] <천리마축구단>, <박치기>, <우리학교> 3편의 영화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영국 <선데이 타임스>가 예측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표팀의 우승 확률은 125대 1 일본은 200대 1이었고, 북한은 무려 1000대 1이었다. 그만큼 이번 월드컵에서 '이변'이 일어난다면 가장 극적일 수 있는 팀이 북한이다.

이 신문은 북한 팀에 대해 "처음 월드컵에 진출해 이탈리아를 꺾었던 1966년보다 전력이 못 하다"고 분석했는데, 전 세계가 특히 영국이 '북한'의 돌풍을 기억하고 있음에 대한 반증이다.

'속도전' 축구 <천리마축구단>

1966년 잉들랜드 월드컵의 주인공은 북한이었다. 한국전쟁 정도로 인식되는 극동의 변방 국가는 '베일에 쌓인 팀', '외계인'이라 불렸다. 냉전이 한창이라 영국 외무성은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개막전과 북한이 절대 올라갈 리 없는 결승전에서만 국가를 연주하게 룰을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 첫 경기인 소련에 0대 3으로 진 북한이 두 번째 칠레 전에서 1대 1 무승부를 기록하더니 세 번째 이탈리아 전에서 1대 0으로 이겨 이탈리아 선수단이 귀국길에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게 했다. 북한 팀이 머물던 미들스버러라는 도시는 북한에서 온 이방인들에 열광했다.

1라운드 통과 뒤 8강전에서 포르투갈 전. 전반 20분 안에 세 골을 몰아넣으며 3대 0으로 앞서갔으나, '제2의 펠레'라 불리던 모잠비크 출신 에우제비우에게 5골을 헌납하며 이변 행진을 마감했다.

이 과정을 회고한 영화가 영국인 다니엘 고든 감독이 2002년 만든 <천리마축구단>이라는 80분짜리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4년간의 협상 끝에 북한에 입국해 당시 런던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박두익, 림중선, 박승진, 양성국, 리찬명 등을 인터뷰한다.

가슴에 훈장을 줄줄이 달고 있는 그들은 한결 같이 말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계선수권대회에 유색인종을 대표해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다. 한 두 팀이라도 이기고 오라는 감명적인 교시를 주셨다." 그리고는 '한 게임'을 이긴 것이다. 그들은 35년이 지난 뒤에도 김일성 동상 앞에 모여 눈시울을 붉혔다.

통한의 포르투갈 전에 대해서는 당시 대표팀이었던 림중선은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경험이 풍부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고, 수비수였던 양성국은 "내가 잘 못해서 '다섯 알' 씩이나 실점을 줬다"고 자책한다.

경쾌한 리듬으로 진행되는 다큐멘터리는 북한의 풍경과 1966년 월드컵 화면을 교차해 보여주며 북한이 일으킨 '이변'의 원동력을 재조명한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당시 북한의 슬로건은 속도와 노력경쟁이었다. 전후에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사안이었고, 천리마운동은 김일성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광속도로 건설하자는 운동이었다"면서 "북한 축구도 천리마 스타일의 속도전이었다"고 설명한다.

한과 울분의 <박치기>

1968년 교토. 일본 고등학생들이 검정색 저고리를 입은 '조선학교' 여학생들을 괴롭힌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선학교 남학생들이 몰려가 일본 고등학생들의 버스를 뒤집어 버린다.

이 사태를 신문에서 본 일본 고등학교 담임은 학생들에게 훈계를 시작한다.

"가는 곳마다 전쟁이다. 전쟁을 없애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전쟁은 전쟁으로 대항하는 거다. 혁명전쟁은 반혁명전쟁으로, 민족전쟁은 반민족전쟁으로, 계급전쟁은 반계급전쟁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다고 모택동 주석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대로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자. 조선학교에 가서 친선 축구시합을 신청해라. 싸움에 쏟을 힘을 평화적으로 이용해보자. 교토만이라도 평화협정을 맺어서 전국을 모범사례로 만들어 보자."

일본 학생 둘이서 잔뜩 겁에 질려 교토조선중고급학교로 '친선 축구시합 신청서'를 전달하러 간다.

화면은 조선학교 화장실. 안성, 재덕, 방호가 잡담 중이다. 일본인 배우들이 더듬더듬 한국말로 대사를 한다.

"실전에서 어느 쪽이 더 셀까요? 우리 인민군하고 미군하고. 역시 미군이겠죠?"
"진짜로 싸우면 막상막하일걸. 우리 인민군 단결력이 얼마나 강한데."
"미군은 핵무기도 있잖아요."
"까짓 거 총단결하면 돼. 수소폭탄이니 중성자탄이니 만들어 놨어도 전쟁에 못 써. 뭐니 뭐니 해도 전쟁은 기 싸움이야. 싸움도 마찬가지야."
"호치민이 기 싸움에서 이겼잖아. 북베트남 애들이 땅굴 하나는 기가 막히게 파거든. 미군 애들이 땅굴 파는 거 배웠겠어?"
"그럼 우리가 이기겠다. 축구도 잘 하니까."

이야기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으로 이어진다.

"(1966년) 월드컵은 진짜 감동이었어. 이제 축구연습 안 나올 거야?"
"결심했어. 난 공화국으로 갈 거야."
"언제?"
"여기서 축구해도 국가대표로 뛸 수도 없고 우리나라 선수로 월드컵에 나갈 거야."

2005년 개봉된 영화 <박치기>의 도입부다. 혼돈의 시기 1968년. 온갖 차별과 멸시, 가난 속에 살아가는 주인공인 재일교포 2세 아이들은 일본인 불량배들과 패싸움을 벌이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이들에게 거지같은 현실을 탈출하는 길이 있다면 조국에 돌아가 국가대표가 돼 월드컵에 나가는 것. 당시 재일 조선인 젊은이들에게 '조국'은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공화국(북한)'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그리던 꿈을 이룬 사람이 있다. 바로 정대세 선수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가 그의 앞에 지금 막 펼쳐지고 있다.

정대세와 <우리학교>

정대세 선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총련계 학교인 '조선학교'를 알아야 한다. 나고야 출신인 정대세는 재일교포 3세로 그의 할아버지 고향은 경북 의성이라고 한다. 많은 재일동포들이 일종의 '무국적' 상태인 '조선' 국적을 갖고 있지만, 정대세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아버지 덕분에 국적이 한국이다.

정대세가 북한 팀을 택한 것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조선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북한 쪽에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 그의 부모는 정대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한국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조선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북한 팀의 안영학 선수도 조선학교 출신의 재일교포다.

조선학교, 재일 조선인들을 이해를 돕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영화가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를 배경으로 한 <우리학교>(김명준 감독. 2007)다.

감독은 농구부 여자 아이들의 경기 모습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5명이 뛰는 농구 경기에 농구부가 5~6명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부상을 당하거나 5반칙 퇴장을 당 하면 대신 나가서 뛸 동료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체험적으로 '살살 해야 한다'는 것을 익혔다고 한다. 조선학교가 정식 학교로 인정되지 않아 종목 마다 다르지만 각종 전국대회 진출권의 제한을 받기도 한다.

이들에게 스포츠 경기는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름과 말을 지키며 사는 이들은 태생부터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지만, 어떤 운동이든 경기에서는 똑같은 룰 안에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한 축구부 학생은 "전국대회에 진출하는 것이 동포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는 사명"이라고 어른스럽게 말한다. 그래서 일본 학교와의 축구 경기에서 졌을 때 아이들은 땅 바닥을 치며 서럽게 울어댄다. 정대세도 일본 학교 축구팀에 지고 서럽게 울었던 날이 많았을 것이다.

▲ 영화 <우리학교>의 한 장면. 일본 학교와의 시합에서 진 아이들이 땅을 치며 서럽게 울고 있다.

16일 북한 팀은 브라질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1966년의 영광 재현에 나선다.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의 외계인, 도깨비 팀도 아니다. 이들이 흘렸을 땀방울과 눈물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그나마 조금 더 의미 있는 월드컵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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