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스트라이커' 정대세, 온몸으로 골을 넣어라

[프레시안 스포츠] '박두익 다리' 후광효과 세계인 관심 집중

1966년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박두익은 훈련을 제대로 못 했다. 그는 부상으로 축구화조차 신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출전을 자청했다. "일 없이오. 아무렴 한 경기 못 뛰갔시오."

월드컵에 오기 2년 전에도 대표팀에서 낙마해 마음고생을 했던 박두익은 이탈리아 전에서 결정적인 슛 한 방으로 세계 축구 팬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남겼다. 이탈리아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를 '치과의사'로 불렀다. 그만큼 그의 골에 온 나라가 아팠고 열 받았다는 뜻이다.

'박두익의 다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의 8강은 이렇게 찾아왔다. 잉글랜드는 북한 축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특히 북한의 조별예선이 펼쳐진 미들스버러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탈리아를 무너뜨린 에어섬 파크에는 지금 회사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그곳에 한 영국 조각가가 만든 '박두익의 발'이 남아 있다.

북한 축구가 월드컵 8강에 오른 중요한 이유는 집요하고도 처절한 그들만의 다리 근력 강화 훈련에 있었다. 칠레와의 경기 마지막 순간 터진 박승진의 통렬한 중거리 슛과 전설이 된 박두익의 슛 모두 이 훈련의 산물이다.

그들은 굵은 고무 밴드를 다리에 붙잡아 매고 다리를 강화시켰다. 하루에 수천 번씩. 늘 새벽에 산을 타는 훈련으로 그들의 다리는 더 굵고 단단해졌다.

북한과 1966년 월드컵 지역예선을 치렀던 호주의 스탠 애컬리는 이렇게 말했다. "새벽 6시에 잠에서 깨 창 밖을 내다보니 북한 선수들이 조그만 고개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 우리하고 경기가 끝난 게 거의 자정 무렵인데."

애컬리와 잘 아는 사이였던 영국 축구의 전설 보비 찰튼이 쓴 자서전은 이 에피소드를 놓치지 않았다. 박두익과 북한 선수들의 용수철같이 탄력 있는 다리가 완성된 배경이다.

얼마나 북한 축구선수들의 다리가 부러웠던지 잉글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조 하비 감독은 소속팀 선수들의 훈련에 등산을 포함했다. 북한이 잉글랜드 축구에 남긴 유산 중 하나다. 그는 "우리도 저렇게 뛰려면 쌀밥을 먹어야 한다"고 까지 할 정도로 북한 축구에 푹 빠졌다.

북한축구 운명 짊어진 '정대세의 어깨'

44년이 지난 지금 북한 축구에 '박두익의 다리'는 없다. 대신 '정대세의 머리와 어깨'가 있다. 헤딩슛에서 강점을 보이는 정대세는 온몸으로 골을 넣을 줄 아는 스트라이커다. 중요한 순간 페널티 박스에서 상대 수비수와 어깨 싸움을 제대로 할 줄 안다. 어깨싸움은 힘만 가지고 하는 무식한 싸움이 아니다. 몸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하는 일종의 개인기다.

머리와 어깨를 잘 쓰는 정대세는 패스의 질이 좋지 않은 북한의 역습축구가 택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옵션이다.

또 한가지 그의 강점은 공격수로서 수비를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공이 안 올 때 그는 문전에서만 어슬렁대는 '게으른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해 볼 다툼을 전개한다. 물론 그때도 어깨를 쓴다.

한국에서 왕성한 취재활동을 하는 존 듀어든 기자가 최근 옵저버에 기고한 정대세 특집 기사를 보고 꽤 많은 영국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정대세의 별명이 '인민 루니'라는데 수비는 악착같이 하냐?" 루니와 견주기 위해선 수비가 필수라는 뜻이다.

15일 펼쳐지는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정대세는 원래 자신의 위치에서 플레이하기가 힘들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역습기회가 올 때까지 사실상 수비수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북한은 힘, 기량, 전술 모든 면에서 브라질을 포함한 조별 리그 상대팀(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에 한참 뒤진다. 설령 기회를 잡는다 해도 숫자싸움에서 뒤져 정밀한 슛까지 연결되기가 힘들 것이다.

▲ '인민 루니'라 불리는 정대세는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한 수 높은 기량을 갖춘 조별 리그팀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의 '머리'와 '어깨'가 절실하다. ⓒ뉴시스

그들이 준비하는 '어게인 1966'

중요한 것은 축구는 확률 게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사람들이 축구에 눈길을 주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포드주의'와 '테일러주의'를 신봉했던 그들이 철저히 계량화되고 포지션 분화가 더 확실했던 야구와 미식축구에 빠진 것도 축구의 큰 우연성에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연성 덕에 북한 축구의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북한 축구 선수답지 않게 솔직한 감정표현을 자주 드러내는 정대세는 그 가능성의 중심에 있다.

지금 정대세는 북한 축구 선수로는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44년 전 빛을 발한 '박두익 다리'의 후광효과다. 박두익은 "정대세는 정말 폭발적 인물이다. 그의 존재감이 북한 축구의 인상을 만든다"고 칭찬한 바 있다.

이제 정대세의 답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 축구가 남아공에서 뭔가 보여주려면 정대세의 폭넓은 움직임이 절실하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머리와 어깨다. 특히 공을 따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의 상체를 주목해야 한다. 그곳에서부터 그들만의 '어게인 1966'은 시작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의 여파로 북한 선수들을 보기가 불편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땀 흘리며 뛰는 90분 만이라도 남북관계를 떠나 그냥 축구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북녘 땅을 짓누르는 정치, 사회적 압박감은 그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무겁다. 그들이 차야 할 축구공의 무게는 450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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