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종족주의'의 뺨을 갈기는 이 책

[프레시안 books]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반일 종족주의'가 논란이 된 지난여름 이후 그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 입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역시 '한국군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였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의 주장이 갖는 황당함을 꿰뚫어 보는 사람들도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라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는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불편한 진실을 <반일 종족주의>(이영훈·김낙년·김용삼·주익종·정안기·이우연 지음, 미래사 펴냄)라는 책을 통해 처음 접했던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한국군 위안부' 문제를 "'우리 안의 위안부'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라며 자신들이 처음 제기하는 것처럼 떠들어 댔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군 위안부' 문제는 현재 한성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귀옥 박사가 일찍이 2002년 2월 23일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 대학(立命館大學)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심포지엄'에서 '한국 전쟁과 여성: 군'위안부'와 군'위안소'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바 있다. 심포지엄을 후원했던 <아사히신문>은 '조선 전쟁 시 한국군의 위안부 제도'라는 기사로 대서특필했다. 김귀옥 교수의 연구는 대중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학계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필자도 수업이나 대중 강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면 빼놓지 않고 김귀옥 교수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면서 그가 발굴한 육군본부 간행인 <후방전사(인사편)>(1956)의 해당 부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김귀옥 교수의 연구성과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후방전사(인사편)>만을 자신들이 처음 발굴한 양 소개하고 있다. 대중 강연에서 일일이 출전을 밝히기 어려운 경우는 물론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 안의 위안부'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라면서 한국 학계나 '위안부' 관련 활동가들이 '반일 종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다.

김귀옥 교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군 위안부'라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일본과의 문제 때문에 공론화되는 것을 주저하는 기색"이 확연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김귀옥 교수처럼 용기 있는 연구자들은 누구보다 먼저 이 문제를 세상에 공개했다. 더구나 김귀옥 교수야말로 누구보다도 투철한 민족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분단의 질곡에 맞서 온 연구자가 아니었던가.

▲ 중국 송산의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서울시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 식민주의와 전쟁, 가부장제의 공조>(선인문화사 펴냄)는 김귀옥 교수가 2002년 발표했던 논문을 발전시켜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이 책은 딱딱한 학술서라기보다는 김귀옥 교수가 한국군 '위안부'라는 문제를 만나서 논문을 쓰고 식민주의와 분단의 산물인 국가폭력으로서의 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연구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제1장 '기억과 공포, 국가와 개인'에서는 공식 기억에 의해 말살된 민중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제2장 '사회적 기억과 군'위안부''에서는 피해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용기를 내는 과정을, 제3장 '한국 언론 속의 군'위안부''에서는 한국의 언론이 군'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제4장 '그곳에 한국군'위안부'가 있었다'와 제5장 '한국군'위안부'의 진실'에서는 '한국군 위안부'의 실체를, 제6장 '한국군'위안부'의 식민주의적 책임'은 식민주의의 미청산이라는 관점에서 한국군 '위안부' 문제가 갖는 의미를, 제7장 '전시 성폭력도 국가폭력이다'에서는 한국 전쟁 당시의 성폭력 문제를, 제8장 '속초 세 할머니가 겪은 6.25전쟁과 국가폭력'에서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제9장 '군'위안부'의 출구를 찾아'에서는 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과제를 전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를 읽은 독자들이 김귀옥 교수의 신간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를 읽는다면, 두 책이 '한국군 위안부'의 존재라는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똑같은 사료를 통해 보여 주고 있지만 얼마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가를 뚜렷이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에는 '한국군 위안부'뿐 아니라 '미군 위안부'도 최근까지 존재했다. '한국군 위안부'나 '미군 위안부'의 존재는 한국 사람들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판할 자격을 박탈하는 것일까?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또는 한국이 더 심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야말로 '종족주의'에 사로잡힌 것이 아닐 수 없다.

'제국' 일본의 인종적 위계질서 내에서 2등 신민의 위치를 차지하는 조선인 여성들이 전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에 주된 피해자가 되었다는 점에서 민족 문제를 떠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전체상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 문제에 사로잡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라본다면 '일본'인들이 '조선'여성들에게 못된 짓을 한 것을 비판하는 데 그치고 만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어느 민족에 속하느냐에 상관없이,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인 입장에서 여성의 신체를 전쟁 수행의 도구로 삼는 군국주의적 발상과 행동을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영훈 등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은 한국의 민족주의적 연구자나 활동가들에게 '종족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는 난폭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협애한 종족주의에 빠져 한국이나 일본이나 '위안부' 제도를 운영했으니 일본을 비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엉뚱하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김귀옥 교수는 분단과 국가폭력에 대한 연구와 실천에서 일관성 있게 민족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민족의 당면 과제를 평화주의와 여성주의의 보편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며 풀어 가는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해 왔다. 그가 한국인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잘못이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은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다시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하는 교훈이자 각오의 표출"이다. 김귀옥 교수는 또한 한국군 '위안부'가 바로 일본이 키워 낸 조선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이것은 분단된 한국에서 식민주의가 계속되었다는 점을 뚜렷이 보여 주었다. 친일 잔재의 미청산을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친일 잔재의 미청산이 친일파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이 누구누구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군 '위안부'가 어떻게 설치되고 어떻게 잊힌 것인지를 밝히는 작업이야말로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친일 잔재의 거대한 뿌리에 대한 통렬한 고발인 것이다.

한국 학계, 나아가 한국 사회는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얻게 되었지만, 한두 가지 아쉬운 점도 남는다. 먼저 이 책이 2019년 11월에 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앞서 간행된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물론,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자체가 <반일 종족주의>가 심하게 비틀어 버린 한국군 '위안부'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지만, <반일 종족주의>에 의해 다소나마 혼란을 겪은 독자들을 위해 한 장이나 절쯤을 할애하여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해 주는 친절이 빠진 점이 아쉽다. 또 한 가지 아쉬움은 절반쯤은 자료의 부족과 피해당사자의 고백이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기인하겠지만, 2002년 당시의 논문 발표에서 연구가 크게 진척되지 않았다는 점이라 하겠다. 김귀옥 교수 본인도 "더 이상 한국군'위안부'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와 이들의 존재가 한국 사회 전체에 미친 영향에 대한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그곳에 한국군 '위안부'가 있었다 - 식민주의와 전쟁, 가부장제의 공조>(김귀옥 지음, 선인문화사 펴냄). ⓒ선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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