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갖고 있는 분단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의 분단선은 아직 이북 땅에 있지만, 누군가의 분단선은 남한에 묶여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분단선에 대해 솔직해 본 적이 없다. 이들을 위한 논의보다 한반도의 완충지대를 먼저 생각해야 했고, 서로를 위한 이해와 공감은 공포와 불안으로 채워졌다. 어느새 형식과 진영 논리마저 무감각해져 버린 각자의 분단선,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
일상에서의 평화 만들기
"당신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는 이 질문으로 '평화'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평화를 위해서는 한 가지가 아닌 수십, 수백 가지의 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 일상 속 분단문화 때문인데, 군사안보에 대한 경각심은 일상을 넘어 권력에 의해 사유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안보주의는 가부장제, 사회적 차별, 인종주의와 같은 문화적 폭력을 강화시켰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일상 곳곳 흩어져있는 분단문화를 다면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문화가 안보라는 명목으로 어떻게 부서졌는지 안다면, 우리가 남북을 다시 잇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인다는 것이다. 안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안보로부터 비롯된 분단문화의 복합성과 모순을 이해하고 끌어안을 때, 창조적이고 실천적인 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북아·한반도 질서와 평화
이기호 한신대 교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현실과 세계사적 흐름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는 동유럽의 개방과 동북아 정세 변화의 외적 요인이 된 1988년 북방 정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 교수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펼쳐지는 국제정치의 전환기 속에 한반도를 바둑판에 빗대며 능동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에게, 평화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할' 무엇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시대정신으로써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비틀스'를 예로 들며, 자발적 공감이 문화를 만들고 이는 곧 평화로 이어진다고도 덧붙였다.
우리 마음에 그어진 '진짜' 38도선
"분단이 만든 감정구조는 여성·사회적 혐오와 다르지 않다."
김엘리 명지대 교수의 이 한마디는 유독 교실을 크게 울렸다. 분단된 구조가 결국 분단된 마음을 낳았고, 이는 다시 젠더 갈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단순히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아닌, 이 사회가 익숙해진 모든 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혐오란 혐오 대상의 특성이 아닌, 개인이 혐오 대상을 어떻게 상상하고 구성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새 '다르다'는 차이는 한국 사회에서 위협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김 교수는 우리가 당연시 해온 모든 것에 대해 한 발짝 떨어져 보기를 권했다. '평화' 혹은 '긴장'이라는 이원화된 틀 속에 우리는 '사람'과 '관계'라는 기본적인 논의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보를 넘어서지 못하는 평화는 없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라는 노회찬 의원의 수사가 정치적으로 훌륭할지 모르겠으나, 이론적으로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힘에 의한 현실주의 이론과 칸트로 비롯된 자유주의에 대한 국제관계의 이론을 설명했다. '어떤 평화를 원할 것인가'라는 측면에서 의견이 갈려야 한다는 것.
또 갈등을 창조적·비폭력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적에 대한 공감이 우선되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새로운 서사(narrative)와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통일에 대해 회의적인 진보와 통일에 대해 호의적인 보수의 출연을 요구했다.
무채색과 민무늬를 가진 분단선이 아닌, 다양한 색과 역동적인 결이 공존해있는 분단선을 꿈꾼다. 서로가 갖고 있는 분단선의 색과 위치, 그리고 모양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 더 많은 대화와 치유의 장을 통해 서로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고 갈등이 타협되며, 서로 돕는 것이 가능해진다. 관용에 따른 무조건적 수용을 넘어 관용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갈등과 창조적으로 타협할 수 있다.
막연한 꿈만 같은 이야기일까? 만약 노회찬 의원이 살아 계셨다면 이렇게 답해 주실 것이다.
"평화란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 멀리서 오지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빠르고 편한 지름길은 없습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그가 늘 그랬던 것처럼 함께 꾸는 꿈, 함께 걷는 길과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이 꿈을 믿어보려 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