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미터 철탑에서 보낸 삼성 해고자의 크리스마스

[현장] 김용희 삼성 해고 노동자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 199일

"인간의 땅 어디에도 호소할 곳 하나 없어 하나님의 어린 양 김용희는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갔건만 바벨탑처럼 치솟은 마천루들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온갖 자동차 소음에 뒤덮여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아직은 저 철탑 위 외침에 세상은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 다리를 펼 수도 없고 허리를 펼 수도 없는 저 곳에서 맘몬 삼성과 맞서고 있는 하느님의 어린 양 김용희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마소서."

김용희 삼성 해고노동자가 강남역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200일을 하루 앞두고 성탄절을 맞았다. 철탑 아래 모인 사람들은 김용희 씨가 삼성의 진정 어린 사과를 받아내고 땅에 내려오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렸다.

삼성해고노동자김용희고공농성개신교대책위가 성탄절인 25일,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김용희 고공농성 투쟁 승리를 기원하는 성탄 기도회를 열었다. 김 씨는 25m 철탑 위에서 기도회에 참석한 50여 명의 시민에게 핸드폰 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 김용희 고공농성 투쟁 승리를 위한 성탄기도회에서 평화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김도환 씨. ⓒ프레시안(최용락)

기도회에 참석한 송기훈 씨는 "무노조 경영을 천명하던 삼성과 이를 비호한 대한민국을 상대로 싸워온 김용희 씨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며 "2000년 전 성탄절에 로마의 식민지, 가장 가난한 한 동네에 떴던 작고 밝은 별이 오늘은 강남역 사거리 CCTV 철탑 위에 떠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다 해고된 이재용 씨는 "200일이 되기 전에 김용희를 철탑에서 내려오게 하고 싶었는데 무산된 것 같다"며 "그렇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삼성이 잘못을 뉘우치고 정말 진정어린 사과를 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전했다.

김 씨는 삼성에 노조를 설립하려다 해고됐다. 이후 24년째 '삼성의 진정성 있는 사과, 복직, 해고기간에 대한 임금지급'을 촉구하며 싸워왔다. 회사에 다녔다면 정년퇴직 날짜였을 예순 살 생일을 한 달여 앞둔 지난 6월 10일, 김 씨는 마지막으로 한 번 제대로 싸워보겠다는 마음으로 강남역 앞 CCTV 철탑에 올랐다. 또다른 해고 노동자 이 씨도 철탑 아래 천막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김 씨는 이후 55일 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지난 13일과 17일,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삼성의 노조 와해가 '그룹 차원의 조직적 범행'이라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삼성은 "과거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김 씨의 고공농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날 철탑 위에서 성탄절을 맞은 김 씨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24년째 해고자 신분으로 싸워오다 보니 크리스마스 분위기 같은 것을 느끼기가 어렵다"고 심정을 밝혔다. 건강 상태와 추위에 대한 대비를 묻는 질문에는 "누워서 자전거 타기를 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고, 노숙투쟁도 많이 하고 해서 웬만한 추위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씨는 삼성의 노조 와해 관련 판결과 삼성의 사과에 대해 "형식적인 사과를 몇 번이나 봐온 탓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고,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없었다면 그마저도 안 됐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며 "삼성이 해외로 나가면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는 일류 기업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는데, 삼성이 진정으로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조건을 되돌아보고, 헌법에 나와 있는 노조할 권리를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삼성의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기 위한 김 씨의 싸움이 계속되는 한 시민들의 연대도 이어진다. 삼성해고노동자고공농성공대위와 개신교대책위는 앞으로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기도회, 수요문화제, 평일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 강남역 CCTV 철탑 아래 천막. ⓒ프레시안(최용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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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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