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이유'로 폐지되는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 저지 공대위 연속기고⑥]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십대여성의 몫으로 남겨졌다

서울시 십대여성건강센터의 '건강지원'은 매우 특별했다. 그 특별함은 이제 과거형이 됐다.

이곳은, 스스로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들어찬 몸들에게 그 이유를 묻기보다 먼저 살피고 안심시키며, 지켜주고 기다려주는 장소였다. 어른을 동반하지 않아도 '미성년(未成年)' 그 자체로 온전히 환대받는 장소였으며 '나는봄'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더라도 이런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아주는 '준비된' 장소였다.

여성의학과, 치과, 한방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것, 정기검진과 예방접종, 몸펴기 운동처방이 가능하고, 질병이 있거나 의심될 때에는 의료진에게 상시적으로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전문 의료진에게 성 관련한 상담을 할 수 있고, 성건강 키트나 건강수첩을 받을 수 있으며, 안경이나 렌즈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나는봄' 십대여성건강 지원의 또 다른 특별함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나는봄'이기에 가능했던 돌봄이자 대체될 수 없는 것들이다.

하여, 적지 않은 십대들이 지원 종료 이후에도 이곳에 '놀러'왔다. '나는봄' 곁에서 고난의 한복판을 지나온 십대들이 이곳을 다시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곳이 비단 질병을 치료하거나 약을 처방하는 곳이 아니라, 이들이 '존재해도 되는 곳'임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살핌과 몸살핌이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어 세심하게 이루어지는 이곳은, 이들에게 마음 편한 놀이터이자 자신의 몸·마음 건강을 견주어 돌아볼 수 있는 돌(아)봄의 장소이며, 사회와의 연결을 (다시) 시도할 때에 길잡이가 되어주는 안전한 접속처였다.

지난 2024년 11월 서울시의회(보건복지위원회) 행정사무 감사에서 김복자 서울시의원은 사후관리 이후에도 센터로 놀러오는 '식구들'이 많은 것을 두고 '나는봄'의 노력이라 치하했다. 시의원 여럿은 '나는봄'의 건강지원 사업 보고를 듣고 나서 한번 가봐야겠다며 기관 방문을 예고하기도 했다.

오금란 서울시의원은 십대 여성 마약류 사범 급증 추세와 성매매와의 높은 관련성을 언급하면서 차년도 사업에 반영할 것을 당부했고, 이는 사무감사 말미에 '십대여성건강센터 사업에 마약관련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한다는 김영옥 위원장의 총평으로 정리되었다.

요컨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서는 십대여성건강센터 폐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오히려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사업의 확대가 논의되던 중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서울시는, 2025년 5월 '나는봄' 민간위탁 운영 종료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 양성평등담당관은 운영 종료의 주된 이유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성매매 유인에 대한 대응 미흡을 들었고, '헬퍼'보다 빠르고 안전한 긴급구조와 보호시스템이 시급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맞지 않다. '나는봄'의 활동이 온라인 개입에 미흡하기 때문에 헬퍼가 십대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십대들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공간을 서울시가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헬퍼의 십대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프레시안(박상혁)

서울시는 올해 3월 강북늘푸른교육센터를 폐지했고, 올해 12월 십대여성일시지원센터도 폐지한다. 이 두 기관은 모두 온오프라인을 통해 위기청소년의 곁을 지켰던 곳들이다. '나는봄'을 포함해서 이들 기관은 모두 작금에 일어나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헬퍼보다 가까이에 있는 몇 안되는 십대들의 접속처였다.

서울시가 제시하는 운영중단의 또 다른 이유는 청소년시설과의 기능 중복이다. 이 문제는 수년간 지적된 문제이자, 수년간 반복적으로 반박되었던 이슈이다. 실제로 서울시에는 청소년상담복지지원법(제29조)에 근거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서울시 24개소), 서울시 청소년특화시설인 청소년성문화센터(8개소), Wee센터 등 성착취 피해 조기발견 및 상담 지원이 가능한 지원체계가 구축돼 있다.

그리고 2022년 실시한 서울시 청소년 성상담 실태 및 요구 조사 결과 청소년 상담기관에 종사하는 상담원의 52.2%는 성상담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아동・청소년의 성상담 수요가 높은 점도 확인된다. 그러나 상담원 중 63.7%는 성매매 상담 경험이 없었고, 성매매 상담 경험이 있는 종사자의 58.9%는 상담에 어려움이 있다고 답하고 있다.

요컨대 기관은 있고 기능도 부여되나, 실제로 지원의 전문성은 아직 미진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성 건강 문제나 성 관련 상담이 필요한 위기 십대들이 유관기관에 접속할 수는 있지만,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조력자에게는 자신의 몸 경험과 어려움을 입밖으로 토해낼 리 만무하다.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AI를 통해 위기 청소년을 조기 발굴하고 긴급구조와 의료지원을 포함하는 통합지원센터를 '2026년에' 새롭게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내년 1월이라고 적었던 지난 5월의 반박 자료를 수정해 출범 연도만 언급한 걸 보면, 현실적으로 남은 반년 만에 통합센터를 기획하고, 설계하고, 설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 봄'에서 봉사하는 전문의가 위기청소년을 진료하고 있다.ⓒ나는 봄 제공

5월까지도 없었던 '나는봄' 이용자 상담·진료기록 보관계획도 뒤늦게 추가됐다. 지난 12년 동안의 이용자 기록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하던 것에 비하면 한 걸음 나아갔다.

그러나 운영 중단을 결정하던 그 시점에서는 정작 이러한 준비나 대책이 없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만약 정말로 서울시가 위기 청소년에 대한 보다 나은 지원을 기획하는 중이었다면, 충분한 준비기간을 확보하고, 그 과정에서 위기 십대들의 목소리가 적어도 한 줌은 포함됐어야 한다.

3월에 강북늘푸른센터를 닫고, 7월에 '나는봄'을 닫고, 12월에 또 다른 센터의 문을 닫을 때, 이 공간을 통해서 스스로를 살피고 사회와 접속하(려)던 십대들에게 물었어야 했다. AI를 통한 '조기 발견'이 얼마나 뒤늦은 개입인지, 서울시 곳곳에서 위기 십대를 기다리고 다가가고 보살피고 존재를 환대하던 장소를 삭제하는 것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들었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존재해도 되는 시간과 장소가 하나씩 사라지는 경험일 수 있다. 그 사실을 짐작도 하지 않은 채, '어른들의 결정'만을 남겼다.

7월 4일, '나는봄'은 문을 닫는다. 설득력은 없는 반박자료와 보도자료를 잇따라 쏟아내는 서울시를 보면서, 이를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이 사업은 '어른들의 이유'로 폐지됐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십대여성에게 남겨졌다.

바라건데, 내년 어느날 개소할 신규 통합센터는 지금까지 서울시 십대여성지원기관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충분히 숙고하고, 그 과정에서 십대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아내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결정을 내린 서울시가 해야할 최소한의 책임일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