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은 누구 옆에 있습니까

[프레시안 books]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상상해봤다. 내 앞에, 옆에 앉은 직장 동료가 성소수자라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전혀 그런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잠깐, '그런 사람' 같아 보이는 건 또 뭐지?

내가 가지고 있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방금 발견하고야 말았다. 성소수자가 남성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면 어딘지 '여성'스럽고,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면 머리가 짧고 화장을 안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스테레오'타입 말이다. 직업? 글쎄다. 예술가나 자영업자 아닐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어딘가에 소속돼 월급을 받는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이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생각을 못했다'라니. 이성애자가 주류인 세상에 우연히 이성애자로 태어난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안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나 보다. 누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차별이 심할수록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고. '일터의 퀴어'는 그런 존재다. 겹겹이 쌓인 차별과 차별 속에 지워진 존재. 그들의 삶은 비성소수자들의 눈길이 외면한 곳에서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들은 고개를 들어 서로를 확인해 주세요"

삼성 해고노동자, 고려인, 장기투쟁 노동자 등 우리 사회 속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이들을 기록해온 기록노동자 희정 작가가 이번에는 '퀴어'라 불리는 성소수자의 노동을 추적했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오월의 봄 펴냄)은 성소수자들의 직장 생활을 다룬다.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섬세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저자는 모욕, 꾸밈, 유리천장 등 8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우선 '퀴어'란 '사람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뉜다'는 성별 이분법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말한다. 퀴어로 존재하는 건 이들의 선택이지만 또 선택이 아니다.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이들이 선택한 것은 '그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20대 30대 퀴어를 스무명 남짓 인터뷰한 뒤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중산층 집안의 장남이자 사범대생인 '마늘'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우연', 중소기업 정규직 '하늘', 지방 출신 대학생 '규원' 등. '성소수자'라는 설명이 없다면 이들의 스펙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러나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설명할 때는 특별해진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처럼 '좀 들어본' 단어부터 젠더퀴어, 퀘스처너리 등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서로 고개를 들어야만 알 수 있는 정체성, 저자는 이를 마치 "마피아 게임을 하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패싱(passing)', 누구도 가던 걸음을 멈춰 뒤돌아보지 않기를

저자가 만난 이들은 사무실, 카페, 학교, 학원, 콜센터, 공공기관, 시민단체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었다. 옷차림이 '딱 봐도' 퀴어인 이들도 있고 퀴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모를 이들도 있다. 어찌됐든 이들의 삶이 피곤한건 매한가지다.

저자는 직장을 다니는 퀴어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라 말한다. '패싱(passing)'이라고 한다. 길 가던 사람이 다른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 저자는 패싱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직장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라고 표현한다. 그 연기는 그저 연기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행위다. 그래서 이들의 각본은 점점 철저해진다. 가령 어떤 이는 가상의 '여자친구'를 위해 커플링을 사고, 또 어떤 이는 가상의 '남자친구'가 나온 군부대 이름까지 준비해 둔다.

이 '치밀하고 섬세한 각본'은 참으로 버겁다. 하루 여덟 시간 이상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 의심할 틈 없게 끊임없이, 꼼꼼하게 짜맞춰져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집에 돌아오면 낮에 동료들에게 한 말을 자꾸 되짚어보게 된다. 혹시라도 실수가 있진 않았는지 늘 염려한다. 그냥 커밍아웃 하라고? 대가는 작지 않다. 대부분은 직장을 포기해야한다.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구직이 일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저자는 그런 이들의 처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거짓말이 아무리 힘들어도 굶어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일터의 퀴어' 어딘지 낯익은 그들의 노동

'내가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논의의 범위를 '퀴어'에서 '여성'으로 확장한다. 퀴어가 '정상'을 꾸미는 것처럼 여성들은 '여성'임을 꾸민다. 성별 규범에 따른 꾸밈은 치마 입고 화장하는 것에서 끝이 아니다. '여성스러운' 체격과 체형, 걸음걸이, 자세, 태도 등이 요구된다. 저자는 취업의 문턱과 직장에서 퀴어가 느끼는 피로함과 모욕은 여성이 느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한다. 그 결 그대로 좀 더 치밀하고 극단적으로 퀴어에게 표출될 뿐이다.

성소수자의 그 고단함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성소수자만의 노동'이 아닌 '여성의 노동' 나아가 '지금 이 사회의 노동'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큰 규범 중 하나는 성별 이분법이다. '사람은 남자 또는 여자'라는 구분법은 성별에 따른 특정 역할을 부여한다. 이것이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특정 성별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닐테지만 '더 요구받는' 성별은 분명 있다.

공고하게 자리잡은 성별 이분법 체계 하에서 '정상성'은 곧 '남성성'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이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을 주변부로 밀어낸다. 정상성의 밖의 존재들이 '정상성'을 위한 역할을 할 때, 존재의 ‘쓸모’가 증명된다.

'쓸모를 증명해야 존재의 자격이 주어진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저자는 약자일수록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제가 쓸모있으니 회사는 저를 쉽게 자르지 못할 거에요"라는 어떤 퀴어의 말처럼 잘리지 않기 위해,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잡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보여주고 증명해야하는 사람들. 남성 위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들이 그렇고 사회적 자산이 없는 흙수저들이 그렇다. 저자는 여기서 다시 한번 논의의 범위를 확장한다.

퀴어를 배제하며 만들어진 '정상'의 삶, 그걸 정상이라 할 수 있나

저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의 상징인 '콜센터'가 공정하다고 말하는 젠더퀴어 마늘이나, 평생직장에서 평생 함께 갈 동료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사는 강표, 사회가 제시하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어 노년을 걱정하는 수영 등. 그들의 모습은 '흙수저' 와 비슷하다. 인맥과 같은 사회적 자산을 쉽게 쌓을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맨 몸뚱아리 뿐이다. 가정부터 사회, 국가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됐다 말한다. 존재하기 위한 모든 비용은 스스로 오롯이 부담해야한다. 이들이 '더 아래로' 내려가는 이유다.

작가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누군가를 위계의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유지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최면 걸린 삶을 살아낸다'고 말한다. 잘 버틸 수 있다고 되뇌는 우리의 옆에는 존재를 위해 쓸모를 증명하며 정상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퀴어가 있다. 남성과 여성, 그 언저리 경계 어딘가에 서있는 퀴어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는 곧 지금까지 세상이 작동해온 방식에 의문을 갖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차별을 자각할 때 차별적 요소를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성소수자들에게 응답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사는 대신 다른 삶을 꿈꾸는 일. 그러므로 퀴어는 일터에 있어야 한다. 퀴어인 그대로."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희정 지음, 오월의 봄 펴냄, 정가 1만 4000원 ⓒ오월의 봄

책은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지 않은 내용들을 다룬다. 페미니즘에 기본 지식이 없다면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던 꾸밈 노동이나 트랜스젠더에 관한 의문에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딘가 잠자던 나의 감각을 깨워주었고, 왠지 좀 더 예민해지고 불편해진 것 같지만 그만큼 세상이 좀 더 다채롭게 보인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보고 싶게 만든다.

저자 희정은 스스로를 '기록노동자'라고 소개한다.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하는 일'이라 말한다.

쓴 책으로는 직업병에 시달리는 삼성반도체 노동자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사람이 일하다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기록한 <노동자, 쓰러지다>, 이정미 노동열사 평전 <아름다운 한 생이다>를 썼다. 함께 쓴 책으로는 <밀양을 가다>, <섬과 섬을 잇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 <재난을 묻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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