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금강산 관광, 北 일방 철거 '최후통첩'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 없다"…통일부 "합의 처리해야" 반박

북한이 금강산 관광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끼어들지 말라'고 공개 경고를 보냈다. 지난달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며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야 한다"고 한 지 20여 일 만이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15일자 기사 '금강산은 북과 남의 공유물이 아니다'에서 "볼품없이 들어앉아 명산의 경관을 손상시키던 남측 시설물들을 흔적 없이 들어내고, 우리 식의 현대적인 국제관광문화지구로 전변시키기로 한 우리 (조선노동)당 중앙의 웅대한 조치"를 언급하며 "그러나 우리의 새로운 금강산관광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해 남측은 시작부터 별스럽게 놀아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통신은 "우리가 남측 시설 철거문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나 명백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지한 것은 금강산관광지구를 우리 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명산의 아름다움에 어울리게 새롭게 개발하는데서 기존의 낡은 시설물부터 처리하는것이 첫 공정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취지를 명백히 알아들을 수 있게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당국은 귀머거리 흉내에 생주정까지 하며 우리 요구에 응해 나서지 않고 있다"고 했다.

통신은 남북 간 금강산 시설 문제 관련 협의 내용을 설명하며 "남조선 당국이 '창의적 해법'이니, '실무회담 제안'이니 하고 가을 뻐꾸기같은 소리를 하기에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10월 29일과 11월 6일 우리의 확고한 의사를 거듭 명백하게 통지해 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해 국가적 관광지구 개발계획 추진에 장애를 조성한다면 부득불 단호한 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고 통고했지만 역시 소귀에 경 읽기였다"고 했다.

통신은 "외래어도 아닌 우리 말로 명명백백하게 각인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당국은 '깊이있는 논의'니, '공동점검단의 방문필요'니 하고 오리발을 내밀었다"며 "멀쩡하게 열린 귀를 닫아매고 동문서답하며 벙어리 흉내를 내는 상대에게 더 이상 말해야 입만 아플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11월 11일 남조선 당국이 부질없는 주장을 계속 고집한다면 시설 철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폭로했다.

통신은 "이에 대해 남조선 당국은 오늘까지도 묵묵부답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가 지난 11일 북측으로부터 이같은 입장을 전달받았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 없다.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통해 나온 북한의 입장은, 북측 당국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았고 언론의 기명 논평도 아니었다. 기사 작성자(기자)의 이름도 없었다.

북한은 이 기사를 통해 그간 한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재개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을 강하게 반복적으로 비난했다. 통신은 "여러 계기에 저들의 시설물들이 얼마나 남루하고 볼품없는가를 제 눈으로 보고 제손으로 사진까지 찍어 공개할 정도로 빤드름하게 알고 있는 남측이 도대체 현지에서 무엇을 다시 점검하고 무엇을 더 확인한단 말인가"라며 "하라고 할 때에도 하지 못한 금강산 관광을, 모든 것이 물건너간 이제 와서 논의하겠다니 말이나 되는가"고 유감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기다릴 때는 움쩍 않고있다가 막상 문을 닫자 '금강산을 더욱 더 자랑스럽게 가꾸어 나가자는 입장'이라고 귀간지러운 소리를 내며 들어오게 해 달라고 계속 성화를 먹이니 보기에도 민망스럽다"거나 "미국이 무서워 10여 년 동안이나 금강산 관광시설들을 방치해 두고 나앉아 있던 남조선 당국이 철거 불똥이 발등에 떨어져서야 화들짝 놀라 금강산 구석 한모퉁이에라도 다시 발을 붙이게 해 달라, 관광재개에도 끼워 달라고 청탁하고있으니 가련하다"고도 했다.

"우리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었고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허용하는 동포애적 아량을 베풀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움츠리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제 손으로 제 발등을 찍는 꼴", "좋은 기회는 다 날려보내고 속수무책으로 있다가 가련한 신세를 자초했으니 사필귀정" 등의 표현도 눈에 띄었다.

특히 통신은 "사대의식에 쩌든 남쪽 위정자들은 풍전등화의 이 시각에조차 정신 못 차리고 '금강산 관광 문제를 북미 협상에서 다뤄야 한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어야만 실효적인 관광 협의가 이루어질수 있다'고 얼빠진 소리를 하면서 미국에까지 찾아가 속사정을 털어보려고 하지만 상전의 표정은 냉담하기만 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5당 대표 만찬회동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금강산 관광 문제를 제기하자 "북미회담이 아예 결렬됐다면 조치를 했을 텐데, 북미회담이 진행되며 대화가 될 듯 했고 미국이 '보조를 맞춰달라'고 하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며 자신도 금강산 문제가 이렇게까지 진행될 줄은 몰랐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북한은 그러나 "시간표가 정해진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통지문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허송세월할 수 없다"며 "이제 와서 두손을 비벼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싸늘히 식어버린 '협력'이라는 아궁이에 탄식과 후회의 눈물젖은 장작을 아무리 밀어넣어도 재활의 불길은 더는 일지 않을 터"라고 했다.

북한은 그러면서 "새로운 금강산 관광문화지구 개발 문제는 남조선 당국이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며 이미 그럴 자격을 상실했다"며 "세계 제일의 명산은 명백히 북과 남의 공유물이 아니며 북남화해협력의 상징적인 장소도 아니다.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가 책임지고 우리 식으로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로 보란 듯이 훌륭하게 개발할 것이다. 거기에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못박듯 말했다.

통일부는 "금강산 관광 문제는 남북이 서로 합의해서 처리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재강조하며 "북측도 금강산 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입장에 호응해 나오기를 촉구한다"고 반박했다.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남북 간 협의를 통해 해결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고 재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 기업과 정부의 시설·장비 등 재산권 문제에 대해 통일부는 "금강산 관광 사업자(현대아산 등)와 긴밀히 협의해 차분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 부대변인은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이날 오후 '금강산 사업대 대상 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장관은 전날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과 만났다. 김 부대변인은 "사업자와 협의하면서 계속 대안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했다.

'북측의 통보 사실이 현 회장 등 사업자들에게는 공유됐느냐'는 질문에 통일부는 "저희가 사업자들과는 늘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말씀드린다"며 사실상 시인했다. 김 장관과 현 회장의 회동은 전날인 14일 오후 5시 30분께부터 약 40분간 이뤄졌다.

통일부는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사에 대해 "오늘 북측의 입장 발표는 '조선중앙통신 보도'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특별히 수·발신 등이 없었다. 다만 북측 관영 통신에 의해서 공개된 점이라는 점을 유의해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부대변인은 "(11일자 통보에) '최후통첩'이라고 표현이 돼 있어서 저희도 이 사안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그러지만 이 상황에서도 남북 간 합의라는 원칙은 계속 견지해야 하는 상황임을 양지해 달라"고 했다.

김 부대변인은 '이번 보도와 11일자 통지문에 미국을 겨냥한 의도가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북미 협상과의 연관성에 대해 논의는 가능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의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평가해 말하기는 어렵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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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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