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 결기 있는 '담판'을

[황재옥의 한반도 '톡'] '평화경제' 구현하려면

지난 10월 5일 스톡홀름 북미협상이 결렬된 지 약 10여 일 만에 김정은 위원장은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금강산을 현지 지도했다. 이 시점에 김정은의 이 같은 행보는 무엇을 의미하나?

집권 초기인 2012년 11월 백두산에 다녀온 김정은은 2013년 2월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했다. 어린 나이에 집권한 김정은의 대내권력 기반강화가 목적이었다. 2017년 12월에도 백두산에 올랐다. 백두산에 다녀온 뒤, 201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할 의사를 내비쳤고, 2월 9일 개막식에 김여정을 보냈다. 김여정 편에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초청하는 친서도 전달했다. 이는 핵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개발 성공 카드를 들고 북미협상을 시작하는데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대미 영향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계산이 깔린 행보였다.

평창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2018년 4월과 5월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그것이 디딤돌이 되어 6월에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북미 공동선언은 북한의 오래된 대미 요구가 충분히 반영된 것이었다. 따라서 2017년 12월 김정은의 백두산행은 핵·미사일 때문에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었던 북한이 제재를 벗어나고자 하는 계산과 기대가 담긴 행보였다. 그러나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와 압박은 계속되고 북미 정상 간 합의는 이행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열린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났다. 하노이 '노딜'이후 6.12 싱가포르 합의는 온데 간데 없고, 오히려 지난 25-6년간 북한의 '선 핵포기'를 요구해온 미국의 압박만이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한 김정은은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미국이 금년 연말까지 기존의 '셈법'을 바꿔 나온다면 북미정상회담을 한번쯤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는 최후통첩을 미국에 보냈다.

'셈법' 변화를 요구한 뒤, 북미 물밑협상과 문 대통령의 중재로 6월 30일 판문점에서 트럼프-김정은 회동이 성사됐고, 그 연장선상에서 10월 5일 스톡홀름에서 북미협상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국의 '셈법'이 바뀌지 않았다고 판단한 북한은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회담 결렬 선언 후 10여일 만에 김정은이 백두산에 다녀온 뒤 북한 매체들은 민족자존,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제재와 압박을 가하는 세력들이 배 아파하고 골치 아파할 정도로 버텨 나가자"고 북한주민을 독려했다.

백두산행 이후 내놓는 김정은의 메시지는 연말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다려 보겠다는 단서가 달려있지만, 미국의 셈법이 안 바뀌면 핵실험과 ICBM 발사 등 미국을 괴롭히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고 제재를 계속해도 제재로 인한 고통은 이겨낼 수 있으니 '미국은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대미 최후통첩이다. 4월 12일 시정연설보다 강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백두산행 이후 나온 트럼프의 반응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너스레가 잔뜩 담긴 아리송한 말뿐이다. 미국이 셈법을 바꿈으로써 연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런 와중에 지난주 김정은은 금강산에 들려 남한 정부와 현대아산이 지어놓은 관광시설들이 꼴도 보기 싫다며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임자들이 남쪽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시작했다는 점도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설 철거 문제는 남측 관계부문과 합의하라고 지시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25일 북측은 회담 대신 문서로 철거문제를 협의하자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9.19 평양 정상회담에서 두 번이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업 재개에 대해 문서로 합의가 되었기 때문에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조건과 대가 없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업을 재개하겠다"는 호언까지 했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따라서 김정은의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 지시는 남한 정부가 미국의 견제로 합의 이행을 하지 않고 있는데 대한 불만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금강산 사업과는 무관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대동한 것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허용하라는 미국에 대한 압박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대응책 마련을 위해서 김정은의 금강산 지시 중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철거를 남측과 협의하라는 대목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남측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시작한 건 잘못이었다는 대목이다. 이는 철거 문제로 남한 정부 또는 현대아산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시설도 개보수하고 사업방식도 '의존'에서 '협업'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남한 정부가 남북정상간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 미국에 금강산 관광 재개 허용을 강하게 요구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필요시 북한이 직접 미국에게 요구하겠다는 속내가 바로 최선희 대동에서 엿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하나? 우선 대미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남북관계만큼은 능동적인 자세로 견인해 나가야 한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조업 재개를 유엔 대북제재 예외 사안으로 인정하도록 미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원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업 중단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중단시킨 것이었다. 유엔 대북제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김정은이 백두산을 다녀와서 내놓은 메시지와 금강산 지시와 관련해서 한미 간 대책 협의를 시작하되 이번에는 우리가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셈법을 바꾸도록 설득해서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도록 하고,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이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않고서는 문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평화경제'를 실현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경제'의 마중물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조업이 재개되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은 첫발도 떼지 못하게 된다.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는 한반도, 바로 '평화경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결기와 감투(敢鬪)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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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옥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북한학으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원광대 초빙교수(외교안보통일),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등을 거쳐 현재 민주평통 상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한반도경제통일교류위원회 부위원장,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의 기아>(역서, 2001) <북한인권문제 : 원인과 해법>(2012), <국경을 걷다>(2013), <정세현 정청래와 함께 평양 갑시다>(공저, 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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