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 노동자 사망, 현대重 어떤 의무도 안했다"

노조, 현대중 하청노동자 머리 협착 사망 사고 자체 조사 보고서 발표

지난 20일 현대중공업 울산 공장에서 가스탱크 해체 작업 중 18톤 무게의 헤드에 머리가 짓눌려 하청노동자 박모 씨가 사망했다. 가스탱크 해체 작업 시에는 낙하 사고 등을 막기 위해 헤드를 크레인에 거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해당 작업의 외주화 이후 현장에서는 크레인이 이용되지 않았다. 사고 당일도 마찬가지였다.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조선업종노조연대는 23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와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조합은 "탱크 헤드 해체 작업 외주화 전에는 이루어지던 감시자 배치, 헤드에 크레인 물리기 등의 안전 조치가 외주화 후 하청노동자가 작업할 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 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험의 외주화에 내몰리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하청업체가 작성한 '표준작업지도서'에는 감시자 배치, 크레인 물리기 등이 나와 있었다"며 "원청과 하청 사업주는 해당 작업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안전 보호 조치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주화 이후 헤드 해체 작업의 안전 조치가 사라졌다"


박 씨가 사고 당일 수행하던 작업은 육상 플랜트용 LPG 저장탱크를 제작 할 때 탱크가 어느 정도의 압력을 버티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했던 기압 헤드를 제거하는 작업이다. 기압 헤드의 무게는 18톤에 달하기 때문에 기압 헤드가 낙하하거나 튕길 경우 중대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작업이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업체도 기압 헤드 해체 작업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하청업체가 작성한 '표준작업지도서'에는 해당 작업의 유해위험요인으로 "해체 작업 중 튕김, 추락, 낙하 등"이 기술되어 있다. "감시자 배치 → 크레인으로 테스트 헤드 인양 → 전체 용접부 가우징 작업(표면에 둥근 흠을 파내는 작업) 실시 → 신호수와 감독자 입회 후 해체작업 진행" 등 작업 순서도 제시하고 있다.

표준작업지도서는 현장에서 시행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사고 당일 외주화 전에는 시행되던 크레인 물리기, 하부 받침대 설치 등의 안전 조치는 시행되지 않았고 위험업무에 필수적으로 배치해야 할 안전 감시자도 없었다"며 "외주화 이후 작업한 14개 기압 헤드 제거 작업 모두 같은 상황에서 진행됐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은 "작업 초기에는 표준작업지도서마저 없었다"며 "기압 헤드 해체 작업은 2019년 3월 시작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표준작업지도서가 만들어진 것은 그로부터 세 달이 지난 2019년 6월 5일이었다"고 전했다.

표준작업지도서를 작업 수행 노동자에게 주지시켰는지도 의문이라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장이다. 노동조합은 "확인 결과 표준작업지도서의 당사자 서명과 안전교육의 당사자 서명이 달랐다"며 "표준작업지도서 내용을 작업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이 직접 확인하고 서명했는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적었다.

▲ 사고 당일의 현장 사진. 크레인 결착과 하부 받침대 설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금속노조 제공.


"현대중공업은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의무도 다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현대중공업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도급작업 시의 안전 보건 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3항은 "(도급작업 시) 사업주는 수급인이 사용하는 근로자가 토사 등의 붕괴, 화재, 추락, 낙하 위험이 있는 장소 등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 안전 보건 시설의 설치 등 산업재해예방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같은 조 4항에는 "사업주는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작업장에 대한 안전 보건 점검을 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다.

노동조합은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가 수개월 동안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위험작업을 강행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재해 현장에 설치된 작업현황판에는 관리책임자가 원청 부서장으로 명시됐지만 당일 작업장에 원청 관리자는 나와 있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노동조합은 탱크 헤드 해체 작업 외주화는 물론 크레인 등 장비로 수행하는 업무를 현대중공업MOS로 분사해 외주화한 것도 사고의 위험성을 높였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은 "장비 업무의 현대중공업MOS로의 분사 이후 전문 인력이 빠져나가면서 인력과 경험이 부족한 작업자가 신호수, 운전수의 업무를 맡았다"며 "현대중공업MOS도 업무를 여러 개의 하청업체로 쪼개면서 신호수와 운전수가 몇 명인지, 누가 어디에서 어떤 작업을 진행하는지 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졌고, 크레인 등 장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위험의 외주화 중단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해야"

노동조합은 이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하청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현대중공업 원하청 사업주 구속",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 및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투쟁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노동조합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7년 삼성중공업과 STX조선 사망 참사 이후 꾸려진 국민 참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라 문재인 정권이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특별조사위원회의 핵심 대책인 위험의 외주화 중단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도 요원한 상태"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은 "위험의 외주화를 끝장내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자본을 제대로 처벌하기 위한 법 제정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노동자의 죽음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 동의하는 전국의 노동조합과 사회단체와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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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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