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런 막말과 남북대화 차단 방침은 대단히 유감스럽고 또한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은 없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품격과 수위의 차이는 분명 있지만, 남북한이 관계 악화를 서로 '넷 탓'으로 돌리는 상황이 지속되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군사훈련과 한국의 대규모 군비증강이 남북관계의 악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단을 약속한 한미군사훈련을 가능한 중단하고 "단계적 군축"이 어렵다면 국방비 동결이라도 해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하지만 최근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8월 11일 시작된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에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와 '안정화 작전'까지 언급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북한 점령'을 의미한다.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해 불가피한 훈련이라고 했지만, 이 훈련에 이들 내용까지 포함시킨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작년에 남북한 정상들이 부전(不戰)과 불가침을 약속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더 큰 문제는 8월 14일 국방부로부터 나왔다. 2020-2014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5년간 무려 291조 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와 언론에선 북한의 막말과 잇따른 단거리 발사체 발사 배경을 두고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문재인 정부의 대규모 군비증강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남북한에는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명시적인 합의가 없었다. 반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선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합의의 당사자인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훨씬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북한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해도 실효를 거둘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직시해야 할 '내 탓'이다. 언행불일치가 심해질수록 남북관계의 회복과 발전은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군비 질주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국방비를 수수방관하면 땅으로 꺼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다시 본궤도에 올려놓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이 역설한 "국민을 위한 평화"에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재원의 낭비도 뒤따라오게 된다.
한미군사훈련과 남한의 군비증강을 비판하는 것은 결코 북한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군사훈련과 군비증강에 편승해 북한 내에서 강경론이 득세하는 것이다. 비핵화를 하면 한미연합전력에 비해 군사력이 더욱 뒤처지게 된다며 비핵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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