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하는 한일관계, "필요한 건 대결 아닌 설득"

[토론회] '한일관계, 어디로? 시민사회의 역할을 묻다'

‘한국의 수출 규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결정하는 일본 각료회의가 2일로 예정되어 있다. 1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성사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마무리되면서 일본의 수출 규제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일 갈등이 격화되고 문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31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와 참여사회연구소가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이유와 한국 시민사회의 대응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이유를 △일본 국민의 역사인식 후퇴와 양국의 경제력 수렴이라는 배경,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라는 직접적 원인, 그리고 총리 관저로의 권력 집중이라는 일본의 정치 상황과 연결 지어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한일 갈등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 사회를 대결보다는 설득의 자세로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에는 남 교수를 비롯해, 임재성 강제동원 소송 담당 변호사, 이지평 LG 경제연구소 상근자문위원,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지정 토론자로 참석했다. 사회는 김정인 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이 맡았다.

▲ 참여연대가 주최한 "한일관계 어디로? 시민사회의 역할을 묻다" 토론회. ⓒ프레시안(최용락)

일본은 왜 수출 규제에 나섰나?

남 교수는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이유로 먼저 일본의 사회 경제적 배경 두 가지를 짚었다. 남 교수는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선 첫 번째 배경은 일본 국민의 역사인식이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다"며 "전통적인 조선 멸시가 혐한론으로 불이 붙었고, 그것이 지금 일본 국가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먹히는 배경이 된다"고 진단했다.

남 교수는 "두 번째 배경은 양국 경제력 관련해서 부분적으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서고 있다는 점"이라며 "일본이 자신감을 갖고 있던 산업 분야에서도 한국이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이러한 기저에 깔린 배경을 전제로 두고, 일본의 수출 규제를 촉발한 직접적 원인으로는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행 과정과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법원 배상 판결을 거론했다. 남 교수는 "2018년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됐고 일본이 이 과정에서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빗겨나 있었다"며 "일본이 그 동안 안주해온 질서가 변한다는 위기감이 있었고, 트럼프의 미국은 믿지 못할 상대인 것 같은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 없다는 공포감이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남 교수는 강제동원 대법원 배상 판결을 두고도 "일본이 편하게 지내온, 냉전과 남북분단으로 형성된 전후체제가 붕괴하는 와중에 '65년 체제'를 뒤집는 논쟁이 나왔다"며 "일본이 군사력을 배경으로 일방주의적 외교를 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고, 어떻게 대처할지 몰랐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65년 체제'는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체결로, 이후 형성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한일 관계를 뜻한다. 1965년 맺어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에는 일제 식민지배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적시하지 않았다. 냉전 시기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소련, 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려 한 미국의 압박과 일본으로부터 경제개발자금을 타내려 한 박정희 정권의 의도가 작용하여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한일간 정치적 타협이 이루어진 탓이다.

그에 따라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양국의 의견차는 그대로 남았다. 일본의 강제동원에 대한 논리는 식민지배가 합법이므로 강제동원도 합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식민지배가 불법이므로 강제동원도 불법이라는 논리를 담고 있다.

남 교수는 두 배경과 두 원인이 일본의 최근 정치 상황과 맞물려 수출 규제 조치가 나왔다고 판단했다. 남 교수는 "작년 말부터 한일 문제를 어떻게 할지 총리 관저 주변에서 논의가 됐는데, 아베 들어 일본 정부가 총리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과거 다원적 민주주의가 위험해지고 있었다"라며 "그 결과 평소 치밀한 일본답지는 않지만 아베다운 조치로 수출 규제가 내려졌다"라고 주장했다.

"일본 시민사회, 대결이 아닌 설득의 대상"

토론회 참가자들은 65년 체제의 바탕이 된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양국 간 불일치가 전면에 드러나 갈등이 발생한 상황에서 이 불일치를 해소하지 않으면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불일치를 해소하고 한일 관계를 재구축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는 일본 시민사회에 대한 설득 노력이 언급됐다. 남 교수는 일본 시민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우리에게 전달되는 일본 시민사회의 모습은 평화주의자나 군국주의자 등 목소리 크고 자기 확신이 강한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일본최대 규모 우익단체) 일본회의는 군국주의인데, 이런 사람들이 일본을 이끌어간다고 보는 것은 태극기부대가 한국을 이끈다고 보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사실 일본인 대부분은 '평화헌법을 전제로 제도를 운용하되 그것만으로는 안보가 보장되지 않으니 미일 동맹을 통해 생존을 보장받자'는 생각을 가진 제도적 현실주의자들"이라며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일본인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그간 역사 인식에서 앞으로 나아간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남 교수는 "민주화 이후 과거사 문제를 여기까지 끌어올린 한국 시민사회의 힘도 확인할 겸 대다수 일본인을 설득하기 위해 일본의 역사 인식이 진전했다는 것도 일정 부분 인정하자"며 "(위안부 문제에서 군의 관여를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 (아시아 식민지배에 사죄와 반성을 표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 (한국 국민을 지칭해 사죄와 반성을 표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한국 국민 의사에 반해 식민지배가 이뤄졌다는 인식을 표한)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를 통해 역사 인식이 진전했다고 하면서 조금만 더 가자는 식으로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성 강제동원 소송 담당 변호사도 한일 시민사회가 설득이 아닌 대결 구도로 흐르는 것을 경계했다. 임 변호사는 "(외국인 입장에서) 투표를 할 수도 없고 집회 시위를 하기도 어려우니 (일본) 정치세력에 의사를 전달할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불매 운동이 유일하다"며 불매 운동의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불매 운동이 의사소통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전쟁 논리, 즉 '일본이 보복하니 보복하는 거야'나 '내부에서 비판하면 이적행위야'라는 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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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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