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 없는 회사 주식이 5조가 넘는다?

[서리풀 논평] 자본의 탐욕이 생명을 위협할 때

극단까지 온 조짐인지, 이제는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난무하기에 이르렀다. 통칭 '제약바이오' 산업이라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꺼번에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비슷한 일이 쏟아진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보사 품목허가취소로 환자, 투자자, 의료계에 심려와 혼란을 끼친 데 대해 회사 대표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미국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과 협력해 현재 중단한 미국 임상 3상을 이른 시일 내 다시 진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 <머니투데이> 7월 5일 자 '[특징주]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임상재개 기대감 '상한가'')

처음 허가받은 것과 성분이 달라서 품목허가까지 취소되었는데, 임상 3상을 다시 진행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효과 유무 또는 발암성 여부는 기본이 되고 난 다음 따질, 지금으로서는 '고급'의 과제다. 이제까지 진행한 임상시험이 다른 물질(약이 아니다!)로 한 것이라는데, 무슨 임상시험을 어떻게 재개한다는 것인가.

"현재까지 확정된 탑라인 중 가장 핵심지표인 두 가지는 양호했다. 이로써 리보세라닙의 효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만 이번 임상이 당초 기획한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이로써 FDA 허가신청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내부판단이다. (중략) 백이 아니면 흑인 것이고, 선이 아니면 모두가 악이라는 이분법, 0이 아니면 1이라는 디지털개념으로 이번 임상결과를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임상은 0.5를 발견하고 이를 1로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0.8을 1로 만들려던 게 이번 임상의 목표였으나 결과적으로 0.9에만 도달한 것, 이것이 이번 임상결과에 대한 저의 해석입니다. 이번처럼 리보세라닙의 효능이 입증되는 한 '임상지연'인 것이죠. 지각이 결근은 아니지 않습니까?"(☞ 관련 기사 : <한국경제> 6월 29일 자 '[전문]에이치엘비 주주 호소문')

이건 또 무슨 말(장난)인가? '임상지연'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로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었다는 강변. 안전성 기준을 통과해도 약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 많은 물질이 바로 이런 이유로 폐기된다. 이제부터 약을 개선하겠다는 것인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 임상시험을 하겠다는 것인가.

임상시험 결과를 해석하는 대목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임상시험이 0.8을 1로 '만들려던' 과정이면, 이제 기다리면 0.9를 넘어 1이 되는가? 임상시험이 무슨 적금도 아니고, 차라리 임상시험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믿고 싶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큰 회사, 그 사이 신약을 개발했다고 해서 재미(?)를 본 곳이라고 해서 그리 다를 것도 없다.

"최근 얀센이 진행한 비만환자 대상 임상 2상에서 1차 평가지표인 체중 감소 목표치는 도달했지만, 당뇨를 동반한 비만환자의 혈당 조절이 내부 기준에 미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됐다. (중략) 한미약품 측은 "역설적으로 비만환자의 체중감량에 대한 효과는 입증을 한 셈"이라며 "당뇨를 동반한 비만환자에게 혈당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을 반영해 개발 방향을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머니투데이> 7월 4일 자 ''1조 계약해지' 한미약품 "체중감량 효과 입증 한 셈"')

이 또한 희한한 논리다. '역설적으로' 체중감량 효과는 입증되었다니. 무슨 기계 정비하듯이 부품 몇 개를 바꾸면 허가받을 만한 신약이 나온다는 의미인가?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말 꾸미기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사달이 난 것은 우연히 겹친 듯 보이지만, 이후 이들 회사의 행동과 대응에는 공통점이 많다. '대책'의 중심이 주식시장이라는 것이 핵심. 대놓고 주식시장과 투자자용 발표를 하고, 주가를 지탱하려고 온 힘을 다한다.

황당한(!) 발표는 전문가와 학자, 정책 담당자가 아니라 주식시장과 투자자가 들으라는 것이다. 이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경제신문, 산업 위축을 걱정한다는 무슨 무슨 협회, 무식한 시민단체가 '침소봉대'한다며 규제 강화 주장을 비난하는 전문가도 이 '체제'를 함께 떠받친다.

주식시장과 투자자, 주가에 목을 매는 이유는 어려울 것이 없다. 다음은 신약과 비이오를 둘러싼 자본 시장의 실상을 보이는 한 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 임상시험으로 0.8을 1로 만들려고 했다던 바로 그 회사 이야기다.

"2017년 말 1만2500원대 수준이던 에이치엘비의 주가는 지난해 리보세라닙 3상 돌입 소식이 전해지자 급등하기 시작해 지난해 9월 말에는 10배인 12만6000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시가총액은 5조 1000억 원대를 넘나들기도 했다. 에이치엘비는 최근 3년간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으로만 975억 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원래 에이치엘비는 구명정·파이브 제작이 본업이다. 지난해 연간 매출이 360억 원이지만 적자다. (중략) 에이치엘비 김성철·김하용 공동대표는 지난해 스톡옵션 행사로 각각 265억 원과 172억 원의 행사 이익을 챙겼다.(☞ 관련 기사 : <헤럴드경제> 6월 28일 자 '연구성과보다 주가 먹고 자란 '바이오' 괴물들')

생소한 내용이 많지만 줄기는 간단하다. 이익이 하나도 없는 회사(적자)의 주식값 총액이 5조 원이 넘는다는 신화 또는 동화? 이들 자본과 주주의 이익은 약의 매출과 수익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나온다. 이 정도면 회사가 모든 조치에 앞서 '주주 호소문'을 낸 이유를 알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이 예상한 대로 주식시장의 반응이 임상실패의 의미를 가장 빨리 해석한다. 해당 회사의 주가는 몇십 퍼센트씩 곤두박질치고, 어떤 회사의 주가 총액은 하루아침에 1조 원(!) 넘게 줄었다. 인보사의 주인인 코오롱티슈진은 상장폐지가 거론될 정도다.


이쯤 되면, 정신 차리고 보면, 이토록 극단적인 가치의 전도와 소외가 따로 없다. 모든 것을 떠나서, 발암 성분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물질의 임상시험을 계속하겠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0.9와 1, 역설적인 효과 증명, 임상시험 등등에 사람과 환자, 그들의 생명과 건강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

따지고 보면 건강과 생명 연장을 제외하고 약과 바이오 혁신의 다른 명분이 있었던가 싶다. 그들은 환자의 고통을 말하고 그것으로 건강보험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은 하루가 바쁜데 무슨 규제가 이렇게 많으냐고 규제완화를 부르짖는 것도 그들이다.

전도와 소외는 당연히 자본의 힘에서 나온다. 몇 조에 이르는 시가총액과 몇 백억 원의 스톡옵션 앞에 생명이나 건강이 무슨 명분이 될까? 심지어 경제성장이나 일자리도 꾸미는 말에 지나지 않으리라. 서슴없이 임상재개와 임상지연, 역설적 효과 증명을 주장하는 자본의 이 뻔뻔함이 모든 가치를 압도한다.

개인이나 어떤 회사를 문제 삼는 것은 소용없다. 건강과 생명을 앞세운 이익과 자본의 운동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이며 국가를 넘어 지구적이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라잔(Kaushik Sunder Rajan, 한국에 번역된 <생명자본(Biocapital)>(안수진 옮김, 그린비 펴냄)의 저자이기도 하다)이 설명한 대로 투기자본이 판치는 '약의 체제(Pharmocracy)'는 이미 완성되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가기)

다만, 자본의 탐욕 앞에 힘없는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이 노출된 것이 두렵다. 인보사 사태를 보고 '미국이니 그나마 드러났지,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다'라고 하는 서글픈 한국적 현실까지 겹치면, '위험사회'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어렵다.

생명과 건강의 위험을 벗어나는 데, 제약바이오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 혁신 신약의 성장동력을 주창하는 권력과 자본에 생명윤리와 도덕을 촉구하는 일은 무용하다. 모든 것을 돈벌이와 이익으로 몰고 가는 힘에 맞서 대항의 진영을 구축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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