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할 때 일이다. 박근혜-황교안 정권은 패트리엇으로는 북한이 고각으로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며 사드 배치를 추진했다. 사드의 요격 고도가 40~150km이기 때문에, 그 밑이나 위로 날아오는 미사일은 요격조차 시도하기 힘들다며 만류하고 저항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정부는 반지름 200km(사드의 사거리)의 원형 평면도를 펼치고는 "사드를 배치하면 대한민국의 3분의 2를 보호할 수 있다"며 사드 배치를 밀어붙였다.
이로써 한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여겨졌다. 낮게 날아오는 것은 패트리엇으로, 높게 날아오는 것은 사드로 요격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북한이 5월 초에 잇따라 발사한 '불상의' 미사일 앞에 대한민국이 뻥 뚫린 것처럼 다수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은 북한의 발사체를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부르면서 현존 패트리엇으로도, 사드로도 요격이 힘들다며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국방부는 "미사일 방어 능력을 지속해서 보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PAC-3의 속도와 사거리를 크게 높인 패트리엇-MSE 도입은 사실상 결정된 상태이고, '바다의 사드'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이 붙은 'SM-3' 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그럼 이러한 무기들이 배치되면 우리는 진짜로 안전해질 수 있을까? 미사일 방어체제(MD)의 역설을 이해하면 '아니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우선 MD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한반도의 지리의 법칙을 극복할 수는 없다. 휴전선을 맞대고 있고 종심이 짧아 어떤 MD를 갖다 놓아도 곧 무용지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국방비를 대폭 투입해 차곡차곡 MD 자산을 배치하면 언젠가 완벽에 가까운 방어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조차도 MD의 지독한 역설을 피해갈 수는 없다. MD가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해도 문제지만, 잘 요격할 수 있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문해보자. 한미동맹이 완벽에 가까운 MD를 구축하면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까? 핵과 미사일을 가져봐야 소용없다고 여기고는 이들 무기를 폐기하고 살려달라고 빌까? 아니면 MD를 무력화하기 위해 더 많은, 더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배치할까? 아마도 상당수 독자들은 후자가 될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더 큰 안보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안보 딜레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보다 안전해질 수 있을까? 일찍이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취약성이 안보에 기여한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절대 안보를 추구하는 것보다 상호간의 억제가 작동할 때가 안보에 더 이롭다는 뜻이다. 이 뜻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바로 1972년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이다. 서로가 가급적 MD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희한한 조약'이다. 그리고 이 조약은 미국이 2002년에 일방적으로 탈퇴할 때까지 30년 동안 "국제 평화와 안정의 초석"이었다는 칭송을 받았다.
물론 억제에 의존하는 평화는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용지물에 가까운 MD를 보강하면서 군비경쟁과 안보 딜레마를 격화시키는 방식보단 낫다. 더 나은 방식은 공동 안보로의 이행이다.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내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일방적 사고에서 "상대방이 안전을 느껴야 나도 안전해질 수 있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건 남북한 정상이 작년에 세 차례 만나 공감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북한이 최근 보여주는 모습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이다. 북한의 최근 발사체 훈련은 남북 군사 합의의 취지와 맞지 않고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 작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약속하고 공개한 것은 한미군사훈련 '축소'가 아니라 '중단'이었다. 그런데 한미동맹은 축소된 형태로 군사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올해 국방비를 8.2% 인상하는 등 5년에 걸쳐 대규모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계적 군축"에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 합의의 정신에 위배된다. 남북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국방비 인상률이 2배에 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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