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배는 비핵화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정욱식 칼럼] 식량 지원이 '미사일 도발에 대한 보상'?

보수 언론이 한미관계를 이간질하는 전형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청와대와 백악관의 발표 내용을 비교해서 아전인수식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7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통화에 대한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반면 백악관은 "두 정상이 북한의 최근 동향과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달성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이를 두고 보수 언론은 백악관은 "식량 지원을 언급하지 않았다"며, 대북 식량 지원을 둘러싸고 한미간에 심각한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전화 통화 내용과 관련해 청와대와 백악관의 강조점은 다를 수 있지만, 대북 식량 지원과 관련해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그 필요성에 공감한 바 있다.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말이다. 당시 트럼프는 "우리는 인도적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솔직히 말해 나는 좋다"고 본다며, "한국이 식량을 비롯해 다양한 지원을 하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5월 7일 전화 통화는 4주 전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한 사항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반대나 불만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 지원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여념이 없다. 인도적 문제마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빌미로 삼고 있는 셈이다.

식량 지원이 미사일 도발에 대한 보상?

보수 언론은 또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식량 지원으로 보상하려 한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식량 지원 방침 및 한미간의 논의는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있었던 5월 4일보다 훨씬 앞선 시점부터 추진되어온 것이다. 그리고 한미 양국은 북한의 발사 훈련에도 불구하고 식량 지원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매우 적절한 판단이다.

우선 북한의 발사체 '위협'은 한미동맹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 따라 충분히 억제 가능하고 또한 외교적으로도 관리 가능하다. 반면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위험'은 지금 당장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면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3분의 1이 훨씬 넘는 약 1천만 명이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연민의 정을 갖고 있다면, 북한의 발사체 발사를 대북 지원의 반대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동의해야 한다"

혹자들은 북한의 식량난 소식을 접하곤, 대북 제재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작년부터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크게 떨어진 데에는 가뭄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제재로 인한 원유 및 비료 수입의 급감도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의 부족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통의 크기가 커질수록 비핵화도 앞당길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탓인지, 보수 언론은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위험에 너무나도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굶주린 배는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하게 다지고 있다.

이처럼 제재의 역효과가 커지고 있다면, 적어도 인도적 지원은 제재와 분리해서 생각하거나 민생에 영향을 미치는 제재는 풀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북한을 상대로 "최대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그리고 인권 의식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트럼프조차도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을 향해 "당신들도 대북 지원에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땅의 보수 언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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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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