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천년 경제사를 풀어낸 고전

[최재천의 책갈피]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

역사학계는 지난 3000년에 걸친 중국 농촌 경제의 성격을 두고 논란을 거듭해왔다. '가족 중심' 농업과 '농민적' 사고방식을 특징으로 하는 독특한 중국 역사의 결과일까, 아니면 대부분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법칙에 따라 농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결과일까?

1990년대 들어 중국 경제사 분야에서 이른바 ‘캘리포니아 학파’가 부상했다. 왕조 시대 후기의 중국 경제사를 세계사의 맥락에 위치시켜 비교경제사의 관점으로 분석하기 시작한 것.

"경제 성장의 측면에서는 서양의 제도, 문화, 정부 정책이 우월했다는 암묵적 전제가 오래도록 당연시되어왔는데, 캘리포니아 학파는 이 전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케네스 포메란츠의 '거대한 분기점(Great Divergence)'이라는 도발적 연구가 출발선이었다. 그는 '과연 제도적 차이가 실물 경제에서 다른 결과를 낳았는가'를 물었다. 유럽의 브리튼, 중국의 양쯔강 삼각주 지역 등 전근대 세계의 대부분 선진 지역들은 제도적 기반이 달랐음에도 근본적으로 뚜렷한 유사성을 띠었다. 그것은 바로 애덤 스미스가 경제 성장의 모티프라고 한 "시장의 확장과 노동의 전문화"였다.

750~1250년의 시기를 학계에서는 '당송변혁기(唐宋變革期)'라 일컫는다. 중국 경제사의 물줄기가 결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기 때문. 이때 경제의 무게 중심이 기존 중원 지역에서 벼농사 중심의 양쯔강 유역으로 옮겨갔다.

1100년 기준, 중국의 인구는 1억 명에 이르렀다. 당송변혁기를 휩쓴 경제적 변화는 제도의 변화로 나타났다. 토지의 사적 소유가 법제화되었다. 세금이 자산에 따라 차등 부과됐다. 잉여 농산물의 증가, 운하의 발달 덕분에 노동력의 전문화가 가속화됐다. 화폐 공급량이 증가했고, 새로운 금융 중개 방식이 출현했다. 국가의 재정 정책이 경제 전 분야에 걸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현실이 이러했음에도 그저 ‘동양적 전제주의’라고 분류하는 건 옳았을까. 어리석은 왕조의 통치 때문에 정치 및 경제 제도는 심각한 타성에 젖었고, 그 결과 중국은 경제적 행위와 경제사의 일반 법칙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는 시각은 객관적이었을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사 연구자들은 이러한 잘못된 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리처드 폰 글란의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는 거대한 지역 범위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냈다. 3000년의 흐름을 정리했다. 중국 경제사 분야의 연구사를 총정리했다. 그래서 경제사의 고전이 탄생했다.

▲ <케임브리지 중국경제사>(리처드 폰 글란 지음, 류형식 옮김) ⓒ소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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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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