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마음 풍향계, 마오쩌둥

[최재천의 책갈피] <마오쩌둥>

마오쩌둥이 세상을 뜨기 두어 달 전인 6월로 추정되는 어느 날, 마오는 화궈펑과 장칭을 비롯한 몇몇 정치국원들을 침상으로 불렀다. 마치 유언을 남기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일생에 걸쳐 두 가지 일을 했소. 첫 번째는 장제스와 수십 년간 싸워 결국 그를 몇 개 안 되는 섬으로 쫓아낸 일이오. … 우리의 이 업적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소. 두 번째는 문화혁명을 시작한 일이지. 지금은 문화혁명을 지지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반대하는 사람만 많소. 하지만 아직 이 일은 끝난 것이 아니오. 다음 세대까지 반드시 물려주어야 하오. 평화 속에서 물려줄 수 없다면, 혼란 속에서도 그래야 하오. 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면 피를 많이 흘려야 할 것이오. 그대들이 어떻게 할지는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소!"

그로부터 5년 뒤인 1981년,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년 넘게 토론을 거친 끝에 마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정리했다. "마오의 업적을 우선 평가해야 하며 실책은 부차적"이고 그 비율은 "공이 7이라면 과는 3"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이 비율은 과거에 마오가 스탈린을 평가할 때 쓴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1978년에 천윈이 한 평가가 더 적절했던 것 같다. "만일 마오 주석이 1956년에 서거했더라면 그의 업적은 영원불변했을 것이다. 1966년에 서거했더라면 과오는 있지만 여전히 위대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석은 1976년에 서거했다. 아,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번영, 민족주의, 마오쩌둥의 혁명의 전설.' 이 세 기둥은 오늘날 중국의 정치권력을 떠받치고 있는 정통성이다. 중국 내에서 마오 연구에는 '기묘한 타협'이 유지된다. 절묘한 표현이 하나 있다. 상하이 화둥 사범대학교 교수 샤오엔중은 "(중국 내 마오쩌둥 연구는) 중국 인민의 마음 상태뿐 아니라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풍향계"라 했다.

그래서 마오 연구는 상대적으로 외국에서 더 자유롭다. 하지만, 이 또한 이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영국의 저널리스트 필립 쇼트의 이번 개정판 후기 중 '서방 연구자들의 마오쩌둥 평가' 부분은 상당히 값져 보인다. 마오에 대한 평가는 수만갈래겠지만, 인도의 저널리스트 판카지 미슈라는 <뉴요커>지에서 이렇게 결론 내렸다.

"마오는 자긍심 높았던 민족에게 쇠락과 구원에 관한 매혹적인 서사를 선사해주었다. … 그는 명예가 실추되었고 신용을 잃었으나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

▲ <마오쩌둥>(필립 쇼트 지음, 양현수 옮김)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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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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