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자학>, 고마운 책이다

[최재천의 책갈피] <주자학>

<논어>의 첫 글자는 '학(學)'이다. 그래서 첫 문장이 "배우고 때로 이것을 익힌다.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知, 不亦說乎)"로 시작된다. 여기서 '학'은 어떤 의미일까.

현대 우리말로 '학'이나 '학자(學者)'라고 하면, 수학이나 물리학, 수학자나 물리학자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거나, 법학, 정치학, 철학 등 대학에 학과가 개설되어있는 학문이라는 의미로 '학'을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어서 말하는 '학' 또는 '학자'가 주희(朱熹)가 말하는 '학' 또는 '학자'와 같은 의미일까. 당연히 다르다. '학'을 '학문'으로, 혹은 '학자'를 그대로 '학자'로 번역하면 말짱 오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학'이라는 한자어는 주로 일본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시기에 걸쳐 서양의 지적 작업을 받아들인 결과 생겨난, 번역상의 이해에 불과하다.

실제로 일본은 '학'이라는 말뿐 아니라 서양에서 온 '학문'을 접하여 받아들이고 번역하는 과정에서 주자학에서 유래한 말을 대대적으로 번역으로 사용했다. '리(理)'가 대표적이다. '이성, 진리, 이념, 논리' 등이 그렇다. '성(性)'도 그렇다. '성질, 성격, 본성, 성능' 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주희는 '학'을 어떻게 해설했을까.

주희의 <논어집주(論語集註)>가 있다. "학지위언, 효야(學之爲言, 效也)." "'학(學)'은 굳이 말하자면 '본받는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주희의 '학'은 '본받는다'는 의미다. 주희는 '학'이라는 작업을 공자가 확립하여 후세에 남긴 최고의 유산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주자학(朱子學)의 핵심은 "공자가 제기한 '기(己)'를 이어받아 '주체(나)'를 확립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찌 감히 주자학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국사 교과서의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제대로 한 번 읽어야지 하다가 기노시타 데쓰야가 짓고 조영렬이 번역한 <주자학(朱子學)>을 들게 되었다. 고마운 책이다. 저자는 주희의 저술을 분석하면서 '논리적 일관성이 뒤틀려 있음'을 찾아낸다. 그래서 주희 사상이 '수미일관한 체계성와 논리적 정합성을 특징으로 한다'라는 인식은 잘못된 단정이라고 정리했다. 비평할 능력이 못 된다. 마지막으로 주희가 이해한 ‘학’의 진정한 목표와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성인이 되는 것. 아니었다. 궁극은 "(성인(聖人)이 되어) 천지(天地)의 화육(化育) 작용을 돕는 것. 즉, 화육 작용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 <주자학>(기노시타 데쓰야 지음, 조영렬 옮김)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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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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