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내대표는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정권의 경제 정책은 위헌"이라거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해달라"는 등 위험수위를 넘어선 언급으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나 원내대표는 "오만과 무능과 남탓으로 점철된 정부", "좌파정권", "먹튀 정권, 욜로 정권, 막장 정권", "좌파 포로 정권", "(촛불) 심부름센터" 등의 표현도 동원했다.
나 원내대표는 우선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는 자명하다"며 "지난 20세기 실패한 사회주의 정책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장은 불공정하고, 정부는 정의롭다는 망상에 빠진 이 좌파 정권이 한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위헌이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헌정 농단' 경제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외교안보에 대해서는 "가짜 비핵화로 얻은 것은 한미훈련 중단뿐"이라고 주장하며 "지난 2월 28일, 북한은 핵 폐기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동안 북한의 협상은 핵폐기가 아닌 핵보유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지명은 더 심각하다. 김 후보자는 사드 배치 당시 '나라가 망한다'며 반대했고 대북제재를 비판하기도 했다"며 "사드, 대북제재가 싫다는 문재인 정부의 본심이 드러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노동·환경 등 사회분야 정책에 대해서도 그는 "미세먼지, 탈원전, 보 철거(는), 문재인 정부가 좌파 포로정권이라는 명백한 증거"라며 "미세먼지는 중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북한이 중국에 많은걸 의존하고 있으니 이 정부는 중국에 당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탈석탄으로 미세먼지를 줄여야 하는데 탈원전 세력에 발목잡혀 있다. 보 해체를 주장해 온 좌파·시민단체에 정부 정책이 휘둘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나 원내대표는 노동시장 개편이 잘 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문재인 정부가 강성귀족노조, 좌파단체 등 정권 창출 공신세력이 내미는 촛불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드루킹 사건, 손혜원 의원 의혹 사건 등 여권발 의혹에 대한 공세도 나왔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권이 댓글 공작과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며 "과거 국정원 댓글 아이디 300여 개, 드루킹 댓글 아이디는 2300개, 국정원 댓글 27만여 건, 드루킹 댓글은 8000만 건"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사이버사령부 등 이명박 정부 국가기관에 의한 선거개입 범죄와 민간인 '드루킹'의 포털사이트 업무방해 사건을 단순히 양적으로 비교한 그는 "규모, 치밀성, 효과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무시무시한 드루킹 댓글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이분법과 선민의식에 찌든 정권"이며 "사상독재, 이념독재, 역사독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반미, 종북에 심취했던 이들이 이끄는 운동권 외교가 이제 우리 외교를 반미, 반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거나 "종북을 종북이라고 말하면 친일인가?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은 친일파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경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의회민주주의 부정"
선거제도 개편 문제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국회 문을 열자마자 민주당은 사상 초유로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강행처리하겠다며 다시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 세계 두 나라에만 있는 매우 독특한 제도", "대통령제 국가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짝이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모양"이라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는 특히 "내각제에 가까운 권력 구조 개선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이 함께 추진되지 않는 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담은 선거제 개편은 사실상 의회 무력화 시도이고 의회민주주의 부정이다.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못박아 말했다.
그는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될 경우의 문제에 대해 "민주당 주장과 달리 의원수 확대도 불가피하다"며 "표심 왜곡의 위헌 논란 소지도 있고, 정당 간 야합 투표도 가능하다. 한 마디로 민주당의 2중대, 3중대 정당의 탄생만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당은 국회의원 숫자를 27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제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며 비례대표를 줄여 지역구 의원 수를 늘리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강조했다. 그는 "정당 민주화가 사실상 실현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비례대표제는 계파 보스 간의 밀실 공천과 밥그릇 나눠먹기로 전락하기 일쑤"이고 "유권자의 정확한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직접선거의 원리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고 주장하며 "차제에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이를 지역구 숫자 조정에 사용해 지역구 의원의 대표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시민사회·학계에서는 선거의 대표성·비례성 보장을 위해 비례대표 확대를 대체로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그런데 '정당 민주화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례대표제를 폐지하고 지역구 의원을 늘리겠다는 주장은 일반적인 정치개혁 담론과 정반대 방향이다.
나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관련 "지금 야당들은 여당에 의해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선거제 개편을 미끼로 좌파독재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것"이라 비난했다.
그는 정치개혁과 관련해 "선거제 개편을 넘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이 해답"이라며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 분산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한국당이 직접 대북특사 파견하겠다"
나 원내대표는 한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원탁회의 개최를 제안한다"며 "소득주도성장 실패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 대신, 전문성을 갖춘 경제부처와 여야 정당들이 모여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또 "국민부담 경감 3법을 제안한다"며 부동산 가격 공시에 관한 법률, 지방세법, 조세특례제한법 등 개정을 주장했다.
외교안보와 관련해서는 "국론 통일을 위한 7자 회담을 제안한다"며 "대통령과 각 원내교섭단체의 대표 및 원내대표로 구성된 7자 회담을 통해 대북정책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일관성 있는 통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이어 "한국당이 직접 굴절 없는 대북 메시지 전달을 위한 대북 특사를 파견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미세먼지 관련 대안으로는 "동북아-아세안 국가들로 구성된 '대기오염 물질의 장거리 이동에 관한 협약'을 맺어야 한다"며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주변국과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는 "마지막으로 전(全) 상임위 국정조사·청문회를 제안한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와 부패를 국회 차원에서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결국 특검 도입이 불가피할 것이고, 이마저도 막힌다면 전 국민적 투쟁이 확산될 것"이라며 "한국당은 상임위-특검-국민투쟁이라는 3단계 투쟁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수석대변인" 언급에 민주당 고성 항의…10여분간 연설 중단
나 원내대표의 전방위적인 정부 비판 연설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항의로 두어 차례 중단됐다. 통상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40분간 진행되지만, 항의로 인한 의사 중단으로 나 원내대표는 총 1시간여 동안 연단에 서 있었다.
먼저 연설 시작 10분 만에 나 원내대표가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은 위헌"이라고 말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의석에서 한 차례 고성으로 항의를 보냈다. 이어 5분여 후 나 원내대표가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 이제는 부끄럽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한 대목에서 여당 의석이 폭발했다.
밀려드는 항의에 나 원내대표는 "외신 보도 내용"이라고 반박하며 연설을 이어가려 했으나, 홍영표 여당 원내대표까지 단상 앞으로 나가 "이게 무슨 연설이냐"며 항의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단상 앞에서 삿대질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일부 신체 접촉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문희상 국회의장이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을 소집해 의사진행을 이어가려 했으나 홍 원내대표는 "사과를 해야 한다"며 문 의장에게도 항의를 이어갔다.
연설이 중단된 지 10여분이 지나도록 민주당 의석에서는 "사과해! 사과해"라고 연호가 나왔고, 한국당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맞불을 놨다. 나 원내대표도 발언대에서 "야당 원내대표 말도 듣지 않겠다는 민주당 의원 여러분의 오만과 독선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여러분이 사과하란다고 제가 사과하겠느냐. 저는 연설 마칠 때까지 이 자리에서 내려갈 수 없다"고 예정된 연설 원고가 아닌 여당 의원들에 대한 즉석 비난 연설을 시작했다.
문희상 의장이 나서서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중단시킨 후 양측의 자제를 호소했다. 의회주의자를 자처해온 문 의장은 "국회는 이렇게 하는 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령"이라며 "여러분이 보여주는 모습은 공멸의 정치다. 상생의 정치가 아니다"라고 여야를 모두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 "얘기는 들어줘야 한다. 참으라. 최종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나도 '청와대 스피커'라는 소리를 듣고도 참았다"고 했다.
문 의장은 한국당을 향해서도 "박수칠 일이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형식상 민주당을 향해 한 말인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라도 경청해서 듣고, 그 속에서 타산지석으로 배울 것은 배우고, 또 그 속에 옳은 소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반성하고 듣는 것이 민주주의다"라는 말도 사실상 나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을 우회 비판한 것이었다. 그는 "내가 볼 때는 상당히 논란될 발언을 했다"며 "그러나 (연설을) 마무리할 수 있게 조용히 듣자"고 했다.
그러나 본회의장이 조용함을 되찾은 것은 문 의장의 절절한 호소 때문이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 표시로 퇴장했기 때문이었다. 나 원내대표는 문 의장의 중재로 본회의장이 평온을 되찾은 후 "의장 말씀에 일부 감사드리고, 일부는 '역시 민주당 출신 의장이다'라고 생각했다"고 문 의장을 에둘러 비판하고는 연설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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