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해 국방부는 5년간 방위력 개선비를 94조 1000억 원으로 책정했고, "포괄적 위협에 대응하는 전략적 억제능력을 구현하는데 전체 방위력개선비의 70%에 육박하는 65조 6000억 원을 배분했다."
주목할 점은 "핵·대량살상무기 위협 대응"을 언급하면서 북한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위협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주변국의 전략적 위협을 과장한 성격이 짙다.
우선 일본은 핵·대량살상무기 능력 자체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실제 전력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반면 중국은 상당한 수준의 핵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곧바로 우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은 비핵국가에 대해서는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 보장'과 핵보유국을 상대로도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핵선제 불사용'(No First Use)을 공식화해온 국가이다.
이에 따라 주변국들까지 의식해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 대응"을 대규모의 국방비 증액 및 군비 증강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과장된 위협 인식과 과잉 대응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방비, 일본 추월하나?
주목할 점은 한국이 꾸준히 국방비를 증액해오면서 일본의 방위비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한국과 일본의 군사비 지출의 차이는 3배 안팎에 달했었다. 그런데 지난 20여 년간 일본의 점진적인 증액과 한국의 대폭적인 증액이 맞물리면서 양국의 군사비 차이는 크게 줄어들었다. 2018년을 보면 한국 43.2조 원, 일본 51.7조 원으로 한국의 군비 지출은 일본의 약 85%까지 이르렀다.
더욱 주목할 점은 양국의 군비 지출 계획을 비교해보면, 수년 내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5년간 국방비를 270.7조 원으로 책정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액수는 일본이 '중기방위력 정비계획'에서 5년간 방위비 예산으로 책정한 274.7조 원과 비슷하다.
이에 따라 양국이 계획대로 군사비를 늘릴 경우, 한국은 2022년이나 2023년에 일본보다 더 많은 군사비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일본보다 한국의 군사비 증액율이 2~3배 가량 높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경제력이 3배 가량 크다. 이에 따라 현재 양국의 GDP 대비 군사비 지출을 보면, 한국은 약 2.6%이고 일본은 약 0.9% 수준이다. 그런데 상기한 규모로 양국이 군사비를 늘리면 한국은 2023년에 GDP 대비 2.9%, 일본은 약 1.0%가 될 것이다. 한국이 경제력이 비해 일본보다 과도하게 군사비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군사비를 증액해온 나라이다. 2018년 군사비는 약 230조 원으로 약 760조 원을 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이러한 군비 증강은 분명 우려할 만한 상황이지만, 이를 곧 우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국의 군사 현대화는 주로 역내 국가들과의 영유권 분쟁, 대만 독립 저지, 유사시 미국의 개입 차단 등을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위협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GDP 대비로 보면 한국이 중국보다 0.8% 정도 더 높게 군사비를 쓰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주변국들의 잠재적 위협이 아예 없다거나 이를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국들의 군사적 능력을 바로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이를 부풀리고 과잉 대응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접근법이 아니다. 최대 피해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군사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주변국들이 한국을 침략할 것이라곤 상상하기 어렵다. 일본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방의 영토를 향한 공격적·침략적 성격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또한 평화헌법의 취지가 크게 훼손되고 있지만 이 헌법이 지니고 있는 규범적 구속력은 여전히 강하다. '하나의 중국'을 지키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중국이 한국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갖는다고는 것도 결코 합리적인 가정이 아니다.
최선의 대비책은?
지금까지 북한은 우리 안보의 '자산'이 아니라 위협이자 '부채'였다. 그 역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패러다임 전환 및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 달성 시 남북한은 서로에게 공동 안보와 협력 안보를 증진할 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인지하고 안보 전략을 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남북한이 군사 문제를 꾸준히 해결해나가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구축하게 되면, 남북한은 '연합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이는 곧 남북한의 군사 협력 역시 '남북연합사령부'와 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잉태하게 된다. 적대에서 협력으로의 남북한 군사 관계의 전환은 주변국 위협 대처에도 가장 확실하면서도 '저비용, 고효율'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의 국방중기계획은 이와 같은 가능성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우선 앞선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규모의 군비 증강 계획은 남북이 합의한 "단계적 군축"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도 어려움을 가중시킬 소지가 크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이 주변국들의 위협 대응을 이유로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면 주변국들이 한반도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주변국들, 특히 일본은 남북연합과 그 이후 통일 코리아가 군사적으로 강력해지고 자신을 적대시할 것이라고 판단하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지지하고 협력할 전략적 동기가 크게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향후 5년간 270조 원 넘게 국방비를 책정하면서 대규모의 전력 증강을 꾀하는 국방중기계획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북한과 합의한 "단계적 군축"을 추진하면서 주변국을 상대로는 군비경쟁보다는 군비통제를 추진할 수 있는 외교적 능력과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가 가시권에 들어오면 동북아 비핵지대를 추진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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