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축 체계', 이름은 바꾸고 예산은 늘리고?

[정욱식 칼럼] 국방중기계획의 문제점 (상)

지난해 남북관계에서 '신의 한 수'를 뽑으라면, 남북한의 군사 분야 합의 및 성실한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의 종전 선언"이라고 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지난 11일 발표한 '2019~2023년 국방중기계획'은 강한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5년간 국방비에 무려 270.7조 원을 투입해 대규모 군비 증강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단계적 군축"에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 및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만들자던 9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 분야 합의서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특히 논란이 되었던 '3축 체계' 용어를 폐기하면서 오히려 관련 예산은 대폭 증액키로 했다. 일단 국방부는 기존 3축 체계 중 '킬 체인'은 '전략표적 타격',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는 '한국형미사일방어', '대량응징보복'은 '압도적 대응'으로 각각 변경했다. 남북한이 부전(不戰)의 맹세를 하나둘씩 실천하면서 평화체제와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키로 한 만큼, 변화된 상황을 반영한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용어를 바꾼 것은 기만에 가깝다. 관련 예산은 오히려 크게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 국방중기계획에서는 '2018~2022 국방중기계획' 재원보다 약 32조 원을 늘려 270.7조 원을 책정하면서 주로 무기 구매를 의미하는 방위력개선비를 약 94조 원으로 잡았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보다 국방비를 대폭 증액키로 한 셈인데, 이는 장고 끝에 '악수(惡手)'라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에 접어든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지난 2017년 국방홍보원이 제시한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개념도 ⓒ국방홍보원
남한은 지난 20년 동안 북한보다 국방비를 20~30배 정도 더 많이 써왔다. 심지어 남한의 국방비가 북한의 국내총생산을 추월한 지도 오래됐다. 최근 북한의 GDP는 300억 달러 안팎으로 추정되는 반면에 남한의 국방비는 4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이전보다도 훨씬 높은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완전한 비핵화"가 실패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고 국방중기계획은 이러한 취지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는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비핵화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만든 동기들 가운데에는 한미동맹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군사력을 이러한 전략 무기의 개발·보유를 통해 상쇄하겠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곧 북한이 비핵화 '이후'에 한미동맹에 비해 군사력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여길수록 비핵화에 주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비핵화를 추구하면서 한미동맹에 대한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재래식 군사력의 대규모 증강을 도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건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가능성도 거의 없다.

2013년에 시작돼 작년에 "승리"를 선언한 북한의 병진노선은 군비 부담을 줄여 경제 및 민생 발전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는 작년 4월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채택한 '새로운 전략 노선'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는 군비 부담을 줄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 분야의 민수용 전환을 가속화해 경제발전에 필요한 내적 역량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한과의 군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방부의 '국방중기계획'을 '악수'라고 표현한 핵심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재래식 군사력을 늘릴 여력도 의사도 별로 없는 북한으로서는 이미 갖고 있는 핵무력을 일정 정도 유지하는 것이 저렴한 방식으로 군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이 비핵화의 실패 가능성에 대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가 아님은 물론이다. 일단 남한은 여러 가지 전력 증강 사업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군사력을 구비한 상태이다. 한미동맹에 여러 가지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비핵화가 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나 대규모 감축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의 현존 전력 및 한미동맹을 고려할 때, 대북 억제력은 이미 강력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향후 군비 증강은 가급적 필수적인 사업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국방부가 이번에 내놓은 계획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올해부터 남북관계의 핵심 과제가 "단계적 군축" 추진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국방중기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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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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