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호 측근, 압수수색 전날 "들어온다, 준비하라"

[프레시안-셜록-뉴스타파 공동보도] 전방위로 진행된 증거인멸

"나를 표적 삼아 들어오는 수사이기에 내가 구속되겠지만, 나 혼자 죽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9월 12일,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은 임원들을 모아놓은 저녁 회식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협박과 함께 성과급을 걸고 임원들을 회유했다. 본인을 위해 임원들이 만약 구속된다면 성과급으로 '3억-연봉+기여도'로 계산해 주겠다고 했다. 집행유예가 나오면 '2억-연봉+기여도', 벌금형이 나오면 '1억-연봉+기여도'였다.

성과급에서 연봉을 제외한 이유가 특이했다. '내가 연봉을 주는데도, 이번 사태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돈값'을 못한다는 질책이 담겨 있었다. '기여도'는 뭘까. 양 회장은 '기여도'에 따라 성과급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본인이 구속되면 성과급도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기여도’란 사실상 거짓 진술, 증거 은폐 등을 가리킨다. '불법을 자행하라'는 지시였다. 양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 임원을 특정해 "나에게 그동안 기여한 바가 없으니 이번에 기여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흡사 조폭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전 위디스크 직원 ㄱ씨는 협박과 회유가 난무한 이 회식 자리 시점을 경찰이 두 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했다. 실제 압수수색은 9월 3일과 7일 진행됐고, 이 회의는 9월 12일 있었다. 양 회장은 자신의 범죄 책임을 임원들에게 돌리려 했고, 그 대가로 성과급을 약속했다. 그간 여러 차례 경찰과 검찰 수사를 받아왔던 양 회장이었지만, 이번만은 그도 위기를 느꼈던 셈이다. 이 모든 일은 지난 7월28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 직후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경찰의 '수상한' 수사가 시작됐다.

▲ 양진호 회장. ⓒ연합뉴스

<그것이 알고 싶다> 이후 깊어진 갈등의 골

양진호 회장이 실제 소유하는 웹하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에 올라오는 '리벤지 포르노(디지털 성범죄 영상)' 문제를 다룬 이 방송의 반향은 컸다.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불과 한 달도 안 돼 20만 명을 돌파할 정도였다. 경찰 수사는 불가피해 보였다.

방송 내용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한 회사 내부 자체 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양 회장의 지시를 받고 회사 직원이 음란물을 업로드했을 뿐 아니라, 헤비업로더를 직접 관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방송 내용은 사실이었다. 추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런 불법 업로더의 존재가 드러날 경우,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대표이사는 물론, 관련 임원들도 음란물 유통 방조죄 수준을 넘어 정범으로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확인된 불법 업로더의 존재로 회사 내부는 둘로 나눠졌다. 한편에서는 대표이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씌우려 했지만 다른 한편에서 대표이사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통 방조'까지는 책임을 지겠지만, 업로더의 존재와 관리까지는 책임질 수 없다고 버텼다. 불법 업로드를 지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는데 정범 책임까진 질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내부 갈등은 극대화됐다.

취재팀이 만난 복수의 양 회장 회사 임직원들은 이렇게 양 갈래로 갈라진 두 축의 대척점 한편엔 임00 법무대표가, 다른 한편엔 공익신고자 A씨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양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임 대표, 그리고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공익신고자 A씨간 갈등의 골은 깊었다.

특히 임 대표가 양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증거 은폐', '직원 해외 도피' 등을 지시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복수의 내부 임직원들이 진술하는 임 대표의 증거 은폐 지시와 거짓진술 강요 내용 등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관됐다. 관련 증거들도 그들의 주장에 신빙성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진술하고 증거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임 대표는 자신이 증거 은폐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자신이 그 정도 수준까지 회사 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불법 헤비업로더' 관리 직원, 해외로 도피시키려 하기도

취재팀이 입수한 녹음파일에는 임 대표가 불법 음란물을 올리는 '불법 헤비업로더' 관리 직원을 해외로 도피시키려 한 정황이 자세히 나와 있었다.

"(회사가) 정범이죠. 정범. (업로드를) 무지막지하게 했지요. 정범이 밝혀지면, (...) 아직도 핵폭탄이에요. 핵폭탄. 제거가 안 된 거예요. 제거를 하라 해도 안 해요. 내가 회장님에게도 이야기를 했거든요. '이거를 제거를 해야 한다'."

'핵폭탄 제거'는 직원(핵폭탄)의 해외 도피(제거)를 의미한다. 10월 중순께, 회사 직원과 임 대표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임 대표는 회사에서 '불법 헤비업로더'도 관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의 존재가 드러날 경우, 음란물 유통 방조가 아니라 정범이 될 수밖에 없다고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경찰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핵폭탄'(불법 헤비업로더 관리 직원)을 해외로 도피시켜야 안전하다고 양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실제 취재팀은 회사 측이 '불법 헤비업로더' 관리 직원을 회유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한 사실을 확인했다. 회유를 위해 1억 원을 제안하는가 하면. 어떤 '불법 헤비업로더' 관리 직원은 경찰 조사 하루 전날,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했다. 또 다른 관리 직원은 해외법인으로 빼돌리려 시도하기도 했다.

녹음파일에 주목할 점은 또 있다. 임 대표는 직원에게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어떤 진술을 해야 하는지, 인정할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등을 세세하게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지시를 받은 직원은 그대로 경찰에서 진술하겠다고 말한다. '증거 인멸을 지시하지 않았고 지시할 수도 없는 위치였다'는 임 대표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황들이다.

사지도 않은 4500만 원짜리 침향을 샀다고 진술하라고 강요하기도

임원들은 대부분 회사 대책회의에서 서로 입을 맞췄다.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 이후, 한국인터넷기술원회사 법무팀 주도로 10여 회 가량의 대책회의가 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관련해서 임 대표는 말석에 앉아 있기만 했다고 주장하지만, 임직원들은 임 대표가 이 회의를 주도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회의에 함께 참석한 임 대표와 다른 임직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복수의 임직원들에 따르면, 이 회의에선 주로 증거은폐 방법, 그리고 거짓 진술 방향 등이 논의됐다고 한다. 양 회장에게 사정의 칼날이 닿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작전회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양 회장과 위디스크·파일노리는 서류상으로, 법적으로 따지면 연관이 없다. 이 때문에 양 회장 측은 이른바 '바지 사장'들과 핵심 업무 임원들만 '우리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진술할 경우, 양 회장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임원들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양 회장 측 핵심 인물인 임 대표가 회사 임직원들에게 거짓진술 등을 강요한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이 '작전회의'에서 지시받은 거짓진술을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임 대표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전 위디스크 직원 ㄴ씨의 증언이다.

"회사에서 논의한 대로 경찰조사에서 진술하지 않을 경우, 임 대표의 '화살'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김모 대표이사의 경우, 자기 통장에 자신도 모르는 4500만 원이 입금됐는데, 이 돈이 모두 침향을 사는데 사용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회사(임 대표)에서는 김 대표에게 경찰조사에서 자신이 침향을 샀다고 진술하라고 했지만 김 대표가 이를 거부했다. 당시 김 대표는 '내가 대출 빚도 있는데 그것(침향)을 어떻게 샀다고 하느냐'고 했지만 임 대표는 '당신이 투자 개념으로 샀다고 해라'고 구체적인 진술까지 지시하기도 했다."

김 대표의 개인통장은 다른 계열사 대표들의 통장과 마찬가지로 회사 회계팀 이사가 관리했다. 양 회장은 이들 고위 임원들의 통장을 활용해 돈을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같은 돈의 자금 출처와 용처는 모두 불분명하다. 비자금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계열사 대표들의 개인 통장은 이를 굴리는 용도도 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이를 무마하고자 양 회장이 구매한 침향을 김 대표 본인이 구매한 것처럼 거짓진술을 하라고 강요한 셈이다.

ㄴ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 대표는 결국 임 대표가 지시한 대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조사에서 4500만 원을 본인이 사용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ㄴ씨는 "이후 경찰조사에서 자기가 지시한 대로 진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임 대표는 김 대표를 불러 '왜 시키는 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며 회의실에서 저녁 9시부터 밤 12시까지 질타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회사 직원과의 전화통화에서 "임 대표가 20~30분 동안 (침향을) 내가 샀다고 하라고 강요했다"며 "(내가 이를 거부하자) 임 대표는 개인적으로 억하심정이 있어서 양진호 회장을 해코지 하려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 기자회견을 열고 양진호 회장의 비리를 폭로한 공익신고자 A씨. ⓒ프레시안(최형락)

휴대전화 교체에 DB 삭제 지시까지

임 대표는 나아가 임직원의 휴대전화 교체를 지시했다. ㄴ씨는 "밤늦은 시간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만난 임 대표가 휴대전화 교체를 지시했다"며 "휴대전화를 교체하면 증거은닉 아니냐고 묻자 '별거 아니니 문제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직원들이 모두 휴대전화를 교체했다"고 증언했다. 실제 회사 임직원 상당수가 9월 3일 경찰 압수수색 전에 이미 휴대전화를 교체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 대표 지시로 회사 DB가 삭제됐다는 복수의 회사 임직원들은 증언도 있다. 불법 음란물, 디지털 성범죄 동영상 등으로 벌어들인 돈은 범죄수익환수금으로 몰수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노' 등 (음란물이 검색되는) 몇몇 키워드를 돌려 그간의 음란물 매출을 대략적으로 계산해봤는데, 약 2년 동안 20억 원 정도의 수익이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최소 20억 원 이상이 범죄수익환수금으로 몰수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임 대표는 2017년 6월 이전 DB는 모두 날리라고 했다. 그래서 이 DB를 날렸다. 당시가 2018년 8월 중순이었다. 그런데 그 뒤, 경찰이 압수수색을 들어왔는데, 희한하게도 경찰은 우리가 날린 DB에 딱 맞춰서 2017년 6월부터 2018년 7월까지의 DB를 복사해 갔다." 위디스크 전 직원 ㄷ씨

2017년 6월 이전 DB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대표이사들에게 '가짜 사인'을 하도록 지시한 정황도 있다. 애초 회사 서류에는 대표이사 서명란이 없다. 실질 소유주인 양 회장이 모두 관할하기 때문이다. ㄷ씨는 "어느 날 임 대표가 대표이사들을 불러 지난 3~4년간 모든 회사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강요했다"며 "알고 보니 대표이사들에게 (음란물 등에) 책임을 지게 하려면 그들 사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양 회장과 임 대표는 자신들의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휴대 전화 교체와 DB 삭제를 동원한 증거 인멸, 핵심 인물 해외 도피 시도, 거짓 진술 강요, 협박, 회유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진행했거나 하려고 했다. 실제로 일부 증거 인멸이 이뤄지면서 경찰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임 대표가 압수수색 전날, 들어온다며 준비하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수사 기관과의 유착 의혹이다. 특히 복수의 내부 직원들은 임 대표가 경찰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을 증언하고 있다. 매우 구체적인 증언들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이후) 그 당시에는 양진호 회장 방에서 거의 매일 대응회의를 진행했다. 그때도 대응회의를 할 때인데, 임 대표가 갑자기 회의실로 들어오더니, 내일 (압수수색이) 들어온다며 준비해야 한다며 양 회장에게 (압수수색을) 알리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 없는 임원들에게도 알려서 대비하라고 했다." 위디스크 전 직원 ㄴ씨

실제 임 대표가 압수수색이 들어온다고 지목한 날(9월 3일)에 정확히 맞춰 경찰은 위디스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공익신고자 A씨도 지난 1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경찰 압수수색 전날, 내부에서는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9월말께, 회사 근처 식당에서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양진호 회장은 '임 대표가 신중해서 말이 없다. 임 대표가 잘 처리해서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겠다.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말했다. 이후 임 대표는 '일단 사건은 진행 중이고, 잘 해결될 수 있고, 잘 되면 벌금형으로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양 회장은 계열사 대표이사들에게 '니들이 벌금형을 받으면 그것의 두 배로 보너스를 주겠다'고 말했다." 위디스크 전 직원 ㄱ씨

불법 영상을 팔아 이익을 챙겨온 양 회장은 자신이 실소유한 회사의 불법 행태가 폭로되자, 경찰 조사에 대비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온갖 불법적 행태가 자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선 핵심 인물이 임 대표다. 임 대표는 약 10년여 간 양 회장이 성범죄 동영상 피해자들의 고통을 대가로 온갖 불법을 자행하며 부를 축적해 온 과정에서 법망을 피하는 데 있어 충실한 '조력자'로 존재해 왔다.

다수의 임직원들이 증언하고 있는 양 회장 측의 증거 인멸 등은 국민이 부여한 공권력을 기만하고 무력화시키는 악질적인 범죄다. 수사 기관의 '봐주기 수사'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양진호 회장과 경찰 사이에서는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프레시안>-<셜록>-<뉴스타파>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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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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