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김병준 vs 야3당…선거제도 개혁 설전

이해찬 "예산안과 연계하면 선거구제 논의할 필요도 없다"…야3당 일제히 반발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 월례 오찬 회동에서 마주앉은 여야 5당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과 예산안 연계 처리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분리 처리를 주장한 가운데 자유한국당이 이에 동조하고, 바른미래·민주평화·정의당 등 3당은 공개 반발하면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3일 의장 주재 5당 대표 오찬 모임인 '초월회' 행사 모두발언을 통해 "어제까지 예산안을 통과시켰어야 하는데 마무리를 못 하고 마주앉게 돼 유감"이라며 "예산안을 선거구제와 연계시켜 통과 못 시키겠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고 선공에 나섰다.

이 대표는 "내가 30년 정치를 했는데 선거구제를 예산안과 연계시켜 통과시키지 않는 것은 처음 봤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말 연계시킬지 분명히 답해 달라. 국민이 이것을 알면 얼마나 논하시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연계시킬 것을 가지고 연계시켜야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라며 "연계시킬 거면 선거구제 논의할 필요도 없다"고까지 했다.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도 "예산안은 예산안이고 선거구제는 선거구제"라고 이 대표에게 힘을 실으며 "선거구제는 쉽게 논의가 안 될 것 같다. 연계시키겠다는 것은 국민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선거구제에 대해서는 별도로 한 번 깊이 더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나"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자 선거개혁에 사활을 걸어온 소수 3당은 발끈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협치는 주고받는 것"이라며 "이 대표 마음이 불편한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민의 뜻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자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거대 양당이 진지하게 협의해 함께 풀어갈 생각을 해야지, 과거처럼 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때는 지났다"고 이 대표에게 일침을 가하며 한국당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한국당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여서 국민이 함께 가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도 개혁은 동시 처리해야 한다"며 "문희상 의장과 이 대표의 (예산안에 대한) 책임감은 이해하지만, 민주당 130석을 가지고 예산 처리를 못 하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격했다. 정 대표는 "야3당은 예산안 처리와 선거제도(개혁) 동시처리라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며 "이미 안(案)은 나와 있다. 결단하면 된다"고 촉구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저도 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예산 문제가 너무 중요하고 긴급하며 법정 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소신과 원칙을 갖고 있다"면서도 "그런데 선거제도 문제도 이만큼 긴급한 일이라는 것을 왜 국회가 자각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고 가세했다. 이 대표는 "내년 4월에 선거구가 획정되려면 적어도 연말까지는 구체적 선거제도 방안이 합의돼야 하는데 이 일은 '잘 되지 않는 일'로 치부하고 자꾸 뒷전으로 미뤄선 안 된다"며 "한 가지만 먼저 처리하다 보면 더 안 될 수 있다. 두 가지를 함께 논의할 때 속도가 더 빠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여야 5당 대표는 오찬 비공개 부분에서도 예산안 처리, 선거제도 개혁 등 현안을 놓고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별다른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 김 위원장이 예산안 처리를 오는 7일 본회의를 열어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해찬 대표나 문 의장은 '그 이전에 해야 한다'고 맞섰다고 한다. 문 의장은 법정 시한이 지난 만큼, 여야 합의가 없더라도 이날 본회의를 열어 정부 예산안 원안을 상정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이날 오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날 초월회 오찬 계기에, 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자체 입장을 담은 수정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실제 이런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오찬 참석자에 따르면, 오히려 해당 보도를 본 일부 참석자가 이 대표에게 "민주당이 '한국형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수정안을 검토하고 있느냐"는 취지로 물었지만 이 대표는 특별히 '한국형' 등의 개념을 특정하지는 않고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우리 실정에 딱 맞는 것은 아니다.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정개특위가 논의를 한다면 그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수준으로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날 홍영표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평화당 '천막 당사'를 찾아 "독일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이 50:50인데 우리는 85:15여서 초과 의석 문제가 있다"며 "'한국형 연동형제'를 해야 한다. 정의당 등은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홍 원내대표도 '한국형 연동형 비례제'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나 "50:50은 어려우니까 지역구 대 비례대표를 7:3으로 한다든지 해서 (그 비율이) 먼저 정해지면 지역구 의석 수를 고려해 정수를 늘리는 방향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 자체 선거개혁안이 뭔지를 놓고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당 지도부에서 '한국형 연동형 비례제'라는 언급이 나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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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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