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봉건 체제만 더 강화할 뿐이다

[현안진단] 북한의 변화와 비핵화를 추동하는 쌍방향의 신뢰조치

'숨 고르기'에 들어간 북·미 협상

미국 중간선거가 끝났다. 예상대로 상원은 공화당, 하원은 민주당이 승리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년 임기와 재선 가도에 일단 빨간 불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은 셈이다. 중간선거 직후인 8일 뉴욕에서는 폼페이오와 김영철의 실무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선거 직후에 열리는 회담이라서 양측의 입장이 어떻게 투영될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북한은 서로 바쁘니 회담을 추후로 연기하자고 통보해왔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측이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평가에서 실질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북·미 정상회담,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잠정 중단 등 북한에 많은 당근을 주었는데, 북한은 비핵화의 실질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제재완화를 요구하며 한·미 워킹그룹의 가동과 한·미 해병대연합훈련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2주전에는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핵·경제 병진노선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고 내비치기도 했다. 마치 북·미협상이 큰 걸림돌에 봉착한 듯한 분위기이며, 이대로 갈 경우 지난 1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초 정상회담을 언급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관계가 좋고 북·미 대화는 잘 진행되고 있다는 낙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제재와 압박은 강력하게 유지하지만,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한다. 북한 역시 매체를 통한 비난을 지속하고 있지만 군사적 행동을 취하지 않는 점을 보면 대화를 지속할 것임을 예고한다.

한편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11월 평양 방문과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등이 예견됐지만, 이 역시 내년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지난 10일 개최된 미국과 중국의 2+2 전략대화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양국의 입장을 나눴고, 러시아가 요청한 유엔안보리 회의에서는 대북 경제제재를 논의했다. 전반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중간선거가 끝나고 이제 적어도 향후 1년여 동안 선거라는 제약요인 없이 북·미 협상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그 신호탄이 김영철의 미국 방문이었다. 비록 북한측의 요구로 연기됐지만, 당초 실무회담을 굳이 중간선거가 끝난 직후에 가지려고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연기 요청은 미국 중간선거에 대한 평가, 미·중 전략대화, 쿠바 평의회 의장의 방북 등으로 좀 더 준비가 필요했던데 기인했을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회담 연기 요청에 미국의 반응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식이다. 미국 역시 서두를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하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북·미 회담의 동력이 약화되었다고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제거됨으로써 북·미 협상의 집중력은 더 높아질 수 있게 됐으며, 이를 앞두고 북한과 미국은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은 입장 차이를 좁히고 있는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중간선거를 위해 모든 사안을 집중했다. 미·중 경제전쟁은 극에 달했고, 남미 난민들에 강력하게 대처했으며, 대이란 경제제재를 재개했다.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언급한 한국에 대해 간접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선거 막판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전화통화에서 중국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한발 물러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미·중 전략대화를 선거 직후에 가지기로 했다. 이렇듯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문제는 물론 국제현안까지 중간선거에 집중했다.

북한도 마치 미국의 중간선거 일정에 맞추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폼페이오의 평양 방문에 이어 김영철의 뉴욕 방문으로 고위급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고,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조만간 개최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금년 중 서울 방문 가능성도 높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직후 다시 협상의 본질 문제로 돌아온 듯하다.

먼저 북한의 요구 사항에 변화가 감지된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북한은 종전선언을 미국에 요구했다. 그런데 남북한 군사합의서가 이행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종전선언에서 제재 완화로 요구 조건을 변경했다. 미국도 핵 리스트 제출을 요구하다가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북한 간에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상호 견해 차이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며 조급할 것이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위험을 감수하며 변화를 선택한 북한

북한은 지금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을 지키는 수성 전략을 사용했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화친술을 써서 협상판을 구동시키려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 협상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북한을 봉건 잔재가 온전한 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시키려고 한다.

19세기 서방 열강들이 봉건사회에 머물던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개방을 요구하던 시기에 그들이 대응했던 것과 유사하게 북한 체제도 봉건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안정적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변화를 선택했다. 그가 현지 지도를 하면서 변화하지 않는 북한 관료들과 기관들에게 화를 내는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 또한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미래과학자 거리, 여명거리, 원산 갈마지구 개발 등을 추진할 수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변화의 의지를 가지면 제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각종 개발을 위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분주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개발을 지시하면 당에서는 각 기관별로 재원을 할당한다. 기관들은 북한 주민들에게 할당을 부담하도록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 지도에서 그 현장을 확인하고 미진한 부분은 당 자금을 지원해서라도 일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경제의 자력갱생 능력을 복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낮다. 전형적인 봉건사회 성격이 강하다. 북한의 시장화는 북한 내부자원의 분배방식을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한 것에 불과하다. 경제의 파이가 커져서 시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파이를 키우고 싶어 한다. 내부 자원의 조달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외부의 자원을 적극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이 가진 유일한 카드인 비핵화를 놓고 미국과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파이가 커지면 북한의 대외의존도는 높아지며, 북한 사회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시장은 북한 내부자원을 분배하는 방식의 변화를 넘어 북한 경제 자체의 성격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는 경제제재

미국이 구사하고 있는 대북 제재와 압박 강화 전략은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높이고 북한의 변화를 가로막는 데 기여하고 있다. 북한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진짜 제재를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북한 경제는 오히려 좋아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평양 등 일부 대도시만 보고 하는 말이긴 하지만, 제재가 효과가 있다면 평양도 영향을 받아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국가 재원을 시장이라는 분배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과거 배급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던 것을 시장을 통해 극복한 것이지만, 제재로 인해 외부로 나가야 할 물자들이 내부로 유통됨으로써 물자는 더 많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렇듯 제재는 봉건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는 북한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핵을 가지고 세계를 위협하는 모양새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 김정일식 수성전략이다. 이런 위협을 중단하라고 경제제재를 취하면 북한은 위협의 수위를 높였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핵을 가지고 위협하지 않을 테니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달하고 요청하고 있다. 북한 경제의 대외의존도를 높이려고 한다.

그 실마리를 미국이 쥐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이후 개혁개방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들어오는데 비핵화라는 자격요건을 제시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직접협상을 시작하며 지속적으로 비핵화의 의지를 천명했고,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평양선언문에 명시하기도 했다. 또한 풍계리 핵실험장을 공개 폭파하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을 폐쇄했다고 언급했다. 영변 핵시설도 해체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하며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에서는 일정 정도의 제재 완화는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미국은 추호도 물러설 분위기가 아니다. 북한 체제를 그대로 봉건사회에 머물게 해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김정일식의 수성전략으로 복귀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쌍방향의 신뢰 조치가 북한 비핵화와 변화의 관건이다

북·미간 협상 간극이 조금씩 좁혀지고 있지만 언제 1년 전으로 회귀할지 위태롭기만 하다. 미국 중간선거라는 불확실성이 제거된 만큼 북미 협상의 집중력은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이다. 조급하게 대응할 것도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적어도 1년 이상 미국 내 정치 일정에 따른 스케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북미 관계 진전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북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미국의 요구 조건을 일부 수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인 행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호적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해야 한다. 헤일리 대사가 언급했듯이 풍계리나 동창리 등에 사찰단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는 일방 행동에서 상호 행동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다.

미국도 할 수 있는 일부터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인들의 북한 방문을 허용하고, 지원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용인하는 탄력적 조치가 필요하다. 안보리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대북제재 완화를 논의하자는 요청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해 유엔 차원의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행동을 취하면 분명한 당근이 제공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은 개방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개방을 거부하는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국제사회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신뢰를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 김정은 위원장은 대내외적으로 고독함을 느낄 것이다.

국제사회의 리더 국가인 미국은 북한의 개방을 이끌어 내기 위해 19세기 방식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맞는 신뢰 프로세스를 전개해야 한다. 북한도 미국에 신뢰를 보내고 보다 과감한 대응으로 봉건사회를 근대사회로 변모시키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 또한 아무도 가보지 않은 이 새 길이 '확신의 길'이 되도록 힘껏 거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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