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국가 미국, 21세기만 미군 7000명, 민간 25만명 사망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민간인 25만 명 희생됐지만…끝 모를 '테러 전쟁'

유혈 분쟁, 무장 투쟁, 민족 분쟁, 독립 투쟁 등 여러 이름의 전쟁은 예외 없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전쟁 연구자들 사이에 20세기 100년 동안 여러 크고 작은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적어도 1억에서 1억 8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파리대왕>으로 198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윌리엄 골딩이 20세기를 가리켜 '가장 폭력적인 세기'라 낙인찍은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 숨 쉬는 21세기는 어떠할까. 제3차 세계대전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폭력의 세기'가 아닌 '평화의 세기'를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21세기의 5분의 1을 넘기는 시점에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프리카의 수단, 중동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곳곳에서의 유혈 분쟁과 그에 따른 희생은 오늘의 세계가 결코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마다 10개 안팎의 전쟁

대부분의 전쟁 연구자들은 1년 동안 어떤 지역에서 유혈 분쟁으로 사망한 사람이 1000명을 넘기면 그 지역의 분쟁을 '전쟁'으로 규정한다. 전쟁 연구로 이름이 알려진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웁살라 갈등 데이터 프로그램'(Uppsala Conflict Data Program) 자료를 보면, 21세기 들어와 해마다 10개 안팎의 전쟁이 벌어져왔다. (2001년 9개, 2002년 6개, 2003년 5개, 2004년 7개, 2005년 5개, 2006년 5개, 2007년 4개, 2008년 5개, 2009년 6개, 2010년 5개, 2011년 6개, 2012년 6개, 2013년 6개, 2014년 11개, 2015년 12개, 2106년 12개, 2017년 10개).

앞서 '전쟁'의 기준선을 사망자 1000명이라 했지만, 지구상에는 그보다 적은 사망자를 낸 유혈 분쟁 숫자는 '전쟁'보다 훨씬 많다. 전쟁 연구자들이 '전쟁'이 아니라고 제쳐놓은 유혈 분쟁에서도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사망자가 생겨나고, 그들의 죽음을 평생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수단 다르푸르를 비롯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는 유혈 분쟁의 경우는 국제기구나 비정부기구(NGO), 또는 언론사의 접근이 어려워 실제로 얼마만큼의 희생자가 생겨났는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21세기 20년 동안 80만~95만 사망


그렇다면 21세기 들어와 전쟁 또는 유혈 분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어느 정도일까. 정확히 알기는 불가능하다. 그저 대략 얼마 정도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2011년부터 지금껏 피를 뿌려온 시리아전쟁의 경우 사망자가 50만 명이라 언론에서 얘기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국제연합(UN)이 2015년부터 시리아 전쟁의 사망자 집계를 포기한 것은 어느 전쟁이든 전쟁 희생자 규모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한계를 바탕에 깔고, 21세기 들어 전쟁 희생자 숫자는 얼마나 될지를 알아보자.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웁살라 갈등 데이터 프로그램'은 사망자 숫자를 세 가지(low estmate, best estimate, high estmate)로 나누어 집계하고 있다.

중간치(best estimate)로 사망자를 추정한다면,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6년 동안 사망자 숫자는 약 65만 명에 이른다. 흔히 '보수적'으로 잡았다고 말하는 최저치(low estmate)는 약 55만 명, 최대치(high estmate)는 약 80만 명이다.

여기에다 2016년부터 2018년 10월까지 3년 동안의 희생자를 보수적으로 잡아 15만 명쯤을 더하면, 21세기 들어 지금껏 전쟁 희생자는 80만 명에서 많게는 95만 명에 이른다.

'테러와의 전쟁' 희생자 50만 명

21세기 전쟁 사망자와 관련된 또 다른 참고 자료 하나. 미 브라운대학교 왓슨연구소는 2011년부터 35명의 전문연구자들이 참여한 '전쟁 비용 프로젝트'(Costs Of War Project)라는 이름 아래 21세기 미국의 대외 군사개입 비용과 인명 피해 등을 조사해왔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발표한 보고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9·11 테러 이후로 2018년 10월까지 18년 동안 미군과 중앙정보국(CIA)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파키스탄에서 벌여온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약 50만 명(48만~50만 7000명)에 이른다.

왓슨연구소 측이 '전쟁 비용 프로젝트'를 통해 추구하는 바는 무엇일까. 통상적으로 비공개 또는 비밀리로 이뤄지는 군사 분야의 각종 통계 숫자를 밝힘으로써 미 국방부의 독점 구도를 깨고 미 군사정책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18년째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이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는 실증적 근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보고서 바로 가기)

▲ 2001년 9.11 테러 뒤 지금까지 생겨난 전쟁 희생자 통계를 다룬 왓슨연구소의 '전쟁비용 프로젝트' 보고서 맨 앞장. ⓒ왓슨연구소

미군 사망은 7000명, 민간인 희생은 25만 명

위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가 생겨난 지역은 △이라크 26만∼29만 명 △아프간 14만 7000명, △파키스탄 6만 5000명 순이다. 2011년에 벌어졌고 2014년부터 미국이 개입한 시리아 전쟁에서의 사망자 50만 명(추정치)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인 사망자는 1만 5000명 수준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군 6951명(아프가니스탄에서 2401명, 이라크에서 4550명 사망) △미 국방부 소속 민간인 21명(아프가니스탄에서 6명, 이라크에서 9명 사망) △보안요원을 비롯한 계약직원 7820명(아프가니스탄에서 3937명, 이라크에서 3793명, 파키스탄에서 90명 사망).

미국인 계약직 사망자가 미군 사망자 숫자보다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특수부대 출신으로 블랙 워터를 비롯한 민간군사기업의 계약직으로 이라크, 아프간 현지에서 요인 경호 등 무장활동을 펴다가 게릴라들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은 이른바 '용병'들이다.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뒤 걸핏하면 들려오는 미군 사망자 뉴스가 국민들에게 안겨다 줄 충격과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고 수송이나 경비 등 비전투 업무를 민영화했다.

아웃소싱 개념에 따른 새로운 성장산업인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들이 호황을 맞았고, 단기간의 높은 연봉 계약을 맺은 민간인 전사들이 나타났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한창일 때 2만 명을 넘었다. 기업전사들이 미군 현역병들과 함께 전선에서 활동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을 넘어 "지금 미군은 민간군사기업의 도움이 없이는 군사작전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는 말조차 나왔다.

민간인 사망 통계의 허점

왓슨연구소 보고서는 미국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을 보여준다. △영국군을 비롯한 미 연합군 1464명 (아프가니스탄에서 1141명, 이라크에서 323명) △아프가니스탄 군인과 경찰 5만 8596명 △이라크 군인과 경찰 4만 1726명 △파키스탄 군인과 경찰 8832명 △반미 게릴라 무장조직 10만 9396~11만 4471명 (아프가니스탄 4만 2100명, 이라크 3만 4806~3만 9881명, 파키스탄 3만 2490명). 미군 전사자와 반미 게릴라 무장요원 등을 포함해 군인 사망자는 모두 합쳐 23만 명 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이 튀긴 불똥에 맞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엄청났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그 숫자가 적어도 24만 4000명, 많게는 26만 6000명이라 밝힌다(△이라크 18만 2272~20만 4575명 △아프가니스탄 3만 8480명 △파키스탄 2만 3372명). 언론인 희생자는 362명(△이라크에서 245명, △아프가니스탄에서 54명, △파키스탄에서 63명), 인도적 구호업무를 펴던 비정부기구 요원들 희생은 566명(아프가니스탄에서 409명, 파키스탄에서95명, 이라크에서 62명)에 이른다.

군인사망자(약 23만 명)와 민간인 사망자(약 25만 명)는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민간인 사망자가 군인 사망자로 거짓 또는 잘못 보고되는 사례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민간인 사망자 숫자가 군인 사망자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연합(UN)은 이라크 전쟁 사망자를 월 단위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4개월마다 분기별로 사망자 집계를 해왔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민간인 사망자의 경우는 접근성 등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실제 민간인 사망자보다 적게 집계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녔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슬람국가(IS) 세력이 점거했던 이라크 모술을 미군과 이라크 정부군이 되찾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암매장된 시신의 발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서 죽은 상당수의 민간인들이 비정규 무장 집단(militants)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보면서도, 미군과 연합군 또한 민간인들을 죽였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미 국방부는 9.11 테러 뒤 미군의 공습을 비롯한 군사작전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민간인 희생자가 생겨났는지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미 국방부의 2018년 6월 발표에 따르면, 2017년 1년 동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멘 지역에서 미군의 군사작전으로 민간인 499명이 죽었고, 167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또다른 450명의 사망자가 미군에게 죽었는지 아닌지를 평가중(remained to be assessed)이라 밝혔다. 이와 관련, 왓슨연구소의 보고서는 "비정부기구(NGO) 소속 관찰자들은 미 국방부가 밝힌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사상자 숫자가 많이 축소됐을 걸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거듭 전쟁 사상자 집계의 투명성(transparency)을 강조한다. 미군 사상자 집계는 대체로 정확한 편이지만 민간인 사상자는 그렇지 못하다. 많은 경우 정치군사적 필요에 따라 축소 은폐되기 십상인 탓이다. 보고서는 사상자 집계의 투명성이 높아질수록 그에 다른 당국의 책임감이 더 높아지고 사상자를 줄이려는 보다 나은 군사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다른 전쟁 희생자들

미국이 벌여온 '테러와의 전쟁' 희생자는 사망자뿐 아니다. 왓슨연구소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지금껏 미군은 거의 7000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부상자는 5만 3700명에 이른다.

파병 미군이 입은 정신적 트라우마도 지나칠 수 없다. 2015년에 나온 미 의회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적어도 30만 명의 파병 미군이 뇌손상(traumatic brain injuries)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2008~2016년 사이에 파병 경력을 지닌 예비역 장병 가운데 6000명이 자살했다. 이는 일반인의 자살률보다 1.5배 높은 비율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낳은 또 다른 희생자는 지뢰와 불발탄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희생이 특히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 1296명, 2015년 1587명, 2016년 1943명이 생목숨을 잃었다. 한편으로 이라크에서는 2014년 63명, 2015년 58명, 2016년 109명으로 아프간에 견주어선 숫자가 훨씬 적다. 1980년 이래로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아프간이기에, 지뢰-불발탄 문제가 이라크보다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간인 희생은 언제, 어떻게 보상 받나

2017년 11월 왓슨연구소의 '전쟁 비용 프로젝트'는 2001년 9.11 테러 뒤부터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아프간, 이라크, 파키스탄, 시리아에서 지출한 비용이 5조 6320억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는 미 국방부가 발표한 같은 기간의 전쟁 비용 1조 5200억 달러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기에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연구소는 "미 국방부는 전쟁터에 투입된 직접 비용만 따져 지나치게 좁은 범위에서 전쟁 비용을 계산했다"면서, "참전 군인들의 치료와 보상, 미 국토안보부와 보훈처를 비롯한 관련 부서의 비용도 함께 계상해야 한다"고 반론을 폈다. (☞바로 가기 )

미 국방부처럼 전쟁 비용을 '전쟁터에 투입된 직접 비용'으로 한정한다면,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 애꿎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목숨 값은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을까. 지난 2004년 이라크에 취재 갔을 때 들은 이야기는 미군 오폭으로 죽고 다친 일부 민간인들이 현지 미군 장교들로부터 겨우 몇 백 달러의 현금을 위로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마저도 잇단 오폭으로 뿔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왓슨연구소의 전쟁비용 계산에는 미군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와 보상 항목이 들어있지만,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죽은 민간인들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보상 항목은 들어있지 않다. 이를 제대로 포함한다면, 전쟁 비용은 훨씬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

2009년 부시 행정부 뒤를 이은 오바마 행정부부터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그 용어가 이슬람권에 주는 반감을 걱정한 탓이다. 하지만 용어만 '해외 비상작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실상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고, 민간인들의 희생도 끊이지 않는다.

'21세기 초강대국 미국이 전쟁국가'라는 사실은 지구촌 평화 기상도를 흐리는 큰 걱정거리다. 끝으로 다시 묻는다.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에 휘말려 애꿎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목숨 값은 언제,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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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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