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낳는 도시의 조건: 무질서, 다양성, 그리고?

[최재천의 책갈피]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실리콘밸리는 아테네나 피렌체보다 더 친근하다. 그리스 조각상이나 르네상스 회화를 소장할 수는 없지만, 아이폰을 가질 수는 있다. 한시를 쓰거나 인도 회화를 그릴 수는 없지만, 구글 검색은 늘 이용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를 알거나 메디치가와 사귀지는 못하지만, 실리콘밸리에는 아는 사람들이 있다."

천재는 군집한다. 지금의 실리콘밸리가 그렇다. 서기 1900년 빈이 그랬고, 1500년 피렌체가 그랬다. 1200년 전 항저우가 그랬고, 기원전 450년 아테네가 그랬다. 그때, 그곳에서 명석한 정신과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들이 풍성히 배출되었다.

왜 그랬을까. 왜 하필 그때, 그곳이었을까. 이름 하여 '천재의 지리학(The Geography of Genius)'이다.(<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문학동네 펴냄)

아테네의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철학자로 기억되지만, 무엇보다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사람들은 말을 했지만, 대화는 아니었다. 그저 독백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지적 탐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대화가 집단적 천재성의 매개체가 됐다.

아이디어는 대화의 의도적 산물일 수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예상치 못한, 그렇다고 덜 즐겁지 않은 부산물로 생기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의 물살에 곧잘 몸을 담갔으며, 똑같은 물살이 결코 다시 찾아오지 않고 자신도 결코 똑같은 소크라테스가 아님에 기뻐했다. '대화'가 아테네를 천재의 발상지로 이끌었다.

한 도시학자가 창조적 도시에는 기술(technology), 재능(talent), 관용(tolerance), 이 '세 가지 T'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세 가지 D', 무질서(disorder), 다양성(diversity), 감식안(discernment)을 든다.

감식안이 왜. 감식안은 어쩌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간과되는 요소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는지 물었다. 폴링은 쉬운 일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내고 나쁜 것을 버리면 된다네."

실리콘밸리의 단골 주제는 실패다. '성공적 실패'의 관건은 과학적 방법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뭔가 될 때까지 실패하는 것입니다. 신중하고 효율적으로 실패하는 것이죠. 실패가 훌륭한 학습 경험이 되려면 현재의 과정에 유익해야 합니다."

저자의 감각은 독창적이고, 노승영의 번역체는 매혹적이다.

▲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에릭 와이너 지음, 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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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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