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은 과학적 상상일 뿐이다

[최재천의 책갈피] <평균의 종말>

"평균적인 신체 치수 따위는 없듯 평균적인 재능, 평균적인 지능, 평균적인 성격 같은 것도 없다. 평균적 학생이나 평균적 직원도 없고 그 점에서라면 평균적 두뇌 역시 없다. 이러한 일상화된 개념들 모두는 잘못된 과학적 상상이 빚어낸 현상이다."

2000년에 태어난 첫째 아이를 키울 때다. 도대체 기어 다니지를 않았다. 똑바로 앉아 허리를 세우고 엉덩이를 방바닥에 대고는 끌고 다녔다. '뭐가 문제일까.' 늘 걱정거리였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트레이서가 2004년 파푸아뉴기니에서 원주민 오(Au) 족을 연구하던 중 별난 사실을 깨닫게 됐다. 오 족을 지켜본 지 20년째인데, 아이가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의 운동 발달 패턴이 서구의 정상적인 경로와 달라 보이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오 족의 아이들은 거의 75%의 시간을 몸이 똑바로 펴진 자세로 아기 띠에 업혀 다녔다. 드물게 바닥에 내려진 경우에도 부모는 아이가 엎드려 눕지 못하게 했다. 치명적 감염에 대한 위험 때문이었다. 이 점이 서구와 근본적 차이였다.

이 부분을 읽다 나도 모르게 '어이쿠!' 했다. 그러곤 첫째에게 책의 해당 부분을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ㅋㅋㅋ" 답 문자가 날아왔다. 정확한 연구였다. 우리 큰 아이는 안고 있다 내려만 놓으면 '앵~' 하고 울었다. 그래서 깊이 잠든 시간을 제외하고는 업거나 안아 키웠다. 육아 방식이 아이의 운동 발달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이 절묘하게 찾아왔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평균적 행동 패턴을 들어 어떤 것이 고유하고 보편적이라는 증거로 해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따지고 보면 그 행동 패턴이란 것이, 애초부터 가능한 경로를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에서 유래된 경우임에도 말이다.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저자는 중학교 때 ADHD 판정을 받았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문제아'였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아내와 아들이 있었고, 1년 뒤 아이가 하나 더 생겼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지 15년 뒤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교수가 됐고 현재는 지성·두뇌·교육 프로그램 책임자를 맡고 있다.

우리는 평균주의에 속아 '정상적' 뇌, 신체, 성격의 개념을 믿고 산다. 그래서 정상적인 경로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신체발달, 학제, 취업 등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올바른 경로가 있다고 믿어버린다.

저자의 목표는 "당신을 평균의 횡포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는 것"이다. 평균이 아니라 '개개인'이다.

▲ <평균의 종말>(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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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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