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버리면 다음은 누구 차례?"…청와대 앞 울린 '혐오 그만' 목소리

전국 114개 사회단체, 347명 시민 기자회견 "대통령, 발언 책임지고 사과해야"

발달장애 자녀를 둔 백선영 씨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평범한 시민의 현실은 모르면서 역차별과 불공정을 말하고, 지지율에 매달려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야말로 부끄러운 줄 알라"고 크게 소리쳤다. "'경제에 도움이 안된다'고 이주민을 버린다면,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라고 물으면서다.

백 씨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인종주의는 중국 혐오, 이슬람 혐오에서 끝나지 않고 제 아이에게도 향했다. 지능과 몸의 반응이 남들과 다르다며 '열등하고 함께 할 수 없는 존재' 취급을 받았다"며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왔다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이주자나,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정상이 아니라고 배제되는 장애인이나 정확히 같은 자리에 있다"고 말했다.

양육자인 그는 또 "자원 없이 출산하고 양육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사회적 관계망이 끊긴 채 고립되는 이주여성의 처지는 국경을 넘지 않고도 절절히 알 수 있다"며 "'에펨코리아'의 20대 남자들은 돌봄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사회적 조력이 필요한 일인지 한 번이라고 생각해 봤나?"라고 물었다.

백 씨는 이어 "사회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장애인부터 격리하고 내쫓고 죽였던 잔혹한 역사가 있다"며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 이 비정한 언어가 사람을 어떻게 사지로 내몰고 혐오를 퍼뜨리는지를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뼈저리게 겪어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혐오에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저선을 지키기 위해 함께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청와대 앞에서 전국 114개 이주·인권·노동단체와 347명의 시민이 공동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이주민 관련 차별 발언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엔 동포, 결혼 이주민을 포함해 이주민의 권익을 지원하는 시민 등 11명이 50여분 간 발언을 이어갔다.

▲백선영 씨가 11월 3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전국 114개 이주·인권·노동단체와 347명의 시민이 공동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이주민 관련 차별 발언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했다. ⓒ사람이왔다(백승호)

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X에 에펨코리아 등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공유하며 "지방정부들이 다문화 가족을 우대하는 제도가 문제 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이를 시작으로 다문화 가족 지원 정책을 '내국인 역차별'처럼 그린 입장을 여러 차례 게시했다.

나랑토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그놈의 다문화"라며 뉴스를 보던 남편이 내뱉은 탄식을 전했다. 2004년 한국에 온 나랑토야 씨는 한국인과 결혼해 현재 두 명의 자녀를 둔 결혼 이주여성이다.

나랑토야 씨는 "'다문화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떤 특혜를 받았는지 아무리 떠올려 봐도 기억나는 것이 없고, 오히려 '다문화'라는 라벨을 붙인 채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시혜적 서비스와 부당한 시선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예로 '무료로 고향에 보내줄 테니 다문화 고부 갈등 프로그램에 출연하라'는 방송국 작가 제안을 거절하자 '좋은 기회를 주는데 왜 거절하느냐'는 타박을 되레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작 필요한 지원은 뒷전인 채, 원치 않은 이들에게까지 강제로 쥐여주고는 이제 와서 '특혜'를 들먹이며 다문화 가정을 사회적 낭비의 주범으로 몰아간다"며 "대통령의 경솔한 발언으로 나와 가족이 또 어떤 차별과 무시, 멸시를 견디며 살아가야 할지 두려움과 분노가 밀려온다"고 밝혔다.

실제 대통령이 특혜처럼 언급한 공공 산후조리원 이주배경 가정 이용률은 2.98%에 불과하다. 정효주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는 "대통령은 '다문화 가정 대 내국인 가정'이라는 구도를 계속 사용한다"며 "그러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도 한국 국적자가 포함된 이주배경 가정만 대상으로 한다. 다문화 가정이 내국인 몫을 뺏는 집단처럼 그리면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반감에 불을 붙이게 된다"고 비판했다.

▲나랑토야 씨가 11월 3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전국 114개 이주·인권·노동단체와 347명의 시민이 공동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이주민 관련 차별 발언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했다. ⓒ사람이왔다(백승호)

박희은 경기이주평등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15일 경기 김포시에서 산재 사망한 필리핀 노동자 고 하롤드 라자가 씨 영정사진을 들고 나왔다.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3300여 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지만 대부분 사인이 확인되지 않은 채 무연구 시신 처리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작고 열악하고 위험한 사업장 곳곳에서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있기에 이 사회가 유지된다"며 "20년 넘게 위험하고 열악한 사업장의 인력난을 메우며, 차별과 배제 속에,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더 숨죽이고, 비인간적 삶을 받았을 고인을 생각하니, 대통령 발언이 더더욱 서럽다"고 비판했다.

2024년 리튬 배터리를 생산하는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로 사망한 23명 중 18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사고로 딸을 잃은 이순희 씨도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를 만들며 한국의 첨단 산업을 떠받치다 스러져 간 우리 가족들의 노동은 무엇이었나?"라며 "임금을 본국에 전부 보내면 어떻게 먹고살고, 아프면 병원엔 어떻게 가느냐? 농축산어업과 제조업, 건설업도 이주노동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 않나"라고 물었다.

아울러 "안전장치 하나 없는 위험한 일터에 (이주노동자가) 밀어 넣어질 때는 아무 말 없다가, 목숨 바쳐 일한 대가로 받은 그 피 묻은 임금 몇 푼을 두고 '경제에 도움이 안된다'며 손가락질하는 게 과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말인가"라고 했다.

우다야 라이 위원장도 "국정 최고 책임자라면, 임금체불과 산재 사망 발생률이 정주노동자의 세 배나 되는 처참한 현실부터 얘기해야 한다"며 "혐오 발언에 대해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에 사과하고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11월 3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전국 114개 이주·인권·노동단체와 347명의 시민이 공동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이주민 관련 차별 발언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람이왔다(백승호)

11명의 발언자 모두 대통령의 발언이 한국 사회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산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에펨코리아 등 검증되지 않은 온라인 커뮤니티 주장을 공식 정책 검토의 근거로 삼은 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척에 동조하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며 "이주민을 부정적으로 보는 혐오 세력이 대통령 발언을 더 악의적으로 빌려 차별 근거로 활용하는 건 더 우려스럽다"고 발언했다.

참가자들은 "온라인을 뒤덮는 반(反) 이주민 혐오와 갈등에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라"며 "열악한 농어촌 현장에 내국인 고용을 진심으로 확대하고 싶다면,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방치하는 주범인 근로기준법 63조(농어촌 종사자에 법 적용 제외)부터 개정하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이들은 "이주민 300만 명 시대에 인권에 기반한 이주인권 정책 방향을 논의하고, 이를 지지하는 시민과 함께하겠다"며 "우리는 차별보다 평등이 우리 공동체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현장을 찾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박희은 경기이주평등연대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15일 경기 김포시에서 산재 사망한 필리핀 노동자 고 하롤드 라자가 씨 영정사진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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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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