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고위험군인데도 '평소 활발한 아이'라며 방임…고립된 위기 여성 청소년 구하려면

[고통을 새기는 소녀들] ④ 위험 신호 청취 구멍 메우고, 위기 만드는 사회 구조 개선해야

푸른(23) 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자살충동을 겪었다.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자살을 떠올리며 유서를 썼다. 칼에 찔려 사람이 사망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면 식칼로 자신의 배를 지그시 눌러보곤 했다. 중학생 때부터는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몸을 해쳤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자신의 손목을 긋는 식으로 해소했다.

푸른 씨의 자살충동·자해 원인은 '엄마와의 갈등'이었다. 그의 엄마는 푸른 씨와 남동생에게 애정을 너무 다르게 줬다. 남동생과는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등 스킨십이 자연스러웠는데, 푸른 씨가 손을 잡으려 하면 "찝찝하다"며 못 잡게 했다. 남동생과 푸른 씨가 싸울 때도 "네가 누나 노릇을 못 하니 동생이랑 싸우는 것 아니냐"며 푸른 씨만 타박했다. 가정에서 환대받는 남동생과 멸시당하는 자신 사이 괴리감은 단순히 원하는 만큼의 애정을 받지 못해 생기는 스트레스를 넘어서는 고통이었다.

푸른 씨의 고통을 알아줄 외부 기관은 학교뿐이었다. 실제로 푸른 씨는 중학교 1학년 시기 학교에서 실시한 정서행동 특성검사 결과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이에 교내 상담실인 위클래스에도 불려갔다. 하지만 위클래스 상담교사는 '평소에 활달하고 교우관계가 원만한다'는 이유로 푸른 씨의 마음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은 채 교실로 돌려보냈다. 담임 교사들도 푸른 씨가 고통을 몸에 새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학교가 방임한 결과 푸른 씨의 자살충동 및 자해는 더욱 심해졌다. 대학생이 되자 스스로 목을 매달거나 창문에 올라가는 등 자살 시도가 잦아졌고, 손목에서 그치던 자해는 목 조르기, 머리 박기, 약물 과복용 등 갖가지 유형으로 늘었다. 폐쇄병동에 두 차례 입원할 정도로 심해진 우울감이 심했던 푸른 씨는 최근 들어서야 대학 동료와 교수의 도움으로 조금씩 대응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다.

푸른 씨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학교가 아이들의 위험 신호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른 씨를 비롯해 <프레시안>이 만난 자해 경험 여성 청소년 16명 가운데 11명이 위클래스에 방문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위클래스 상담을 통해 심리적 위기가 해소되거나 자해 횟수를 줄일 수 있었다고 답한 이는 '0명'이었다. 이들은 상담교사들이 자신의 고민을 별일 아니라고 치부하거나, "그래도 자해는 안 된다"며 단순히 문제 행동을 교정하려고만 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출처 : 픽사베이(pixabay)

위클래스 상담교사 사이에서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고 싶어도 여건상 쉽지 않다"는 호소가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위클래스 구축율은 77.3%, 학교 내 전문상담인력 배치율은 61%다. 상담실보다 상담교사 수가 적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상담교사 한 명이 여러 학교를 동시에 맡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에 상담 외 행정업무까지 부담으로 작용해 위기 학생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기 어려워진다.

문혜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문상담위원장은 <프레시안>에 "자살예방, 사회정서교육, 학생맞춤통합지원 등 여러 사업이 위클래스 상담교사에게 맡겨지면서 행정업무에 치이느라 내담자 이야기를 충분히 듣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학교에서 돌보기 어려운 수준의 위기 학생의 경우 상급기관인 '위센터'로 보내는데, 인력 부족으로 저연차 상담교사를 배치하는 일이 많아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잦다"고 덧붙였다.

담임 교사가 위기 청소년을 발견하고 개입하는 데도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교조는 지난 13일 학교 공동체 회복이 청소년 자살 대책의 핵심이라는 취지의 논평을 내며 교사가 학생 곁에 있을 시간을 달라고 촉구했다. "과밀학급과 행정업무 때문에 담임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상황을 알 수 없"으며 "학급당 학생 수 감축, 행정업무의 교사 분리, 담임 업무 경감 없이 교사·학생 관계 회복은 구호에 그친다"는 이유다.

전교조는 이어 "어떻게 상담·생활지도하고 학급을 운영해야 하는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누가 지원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다. 권한도, 기준도, 지원도 없이 교사 개인의 선의에 책임만 떠넘겨 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교사의 상담권과 생활지도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그 역할과 기준, 지원 체계를 법과 제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학교가 위기 개입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해를 경험한 청소년들은 가족과 교사에게 위기 상황을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퇴와 병원 치료 등으로 학교가 개입할 수 없는 청소년도 많다. 학교 밖 지원체계를 함께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해외 각국은 위기 청소년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상담·의료 기관을 두고 있다. 호주 전역에 설치된 청소년 지원기관 헤드스페이스(Headspace)의 경우 본인 동의 없이 부모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상담 내용을 전달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 동의 없이 의료 서비스를 지원한다. 캐나다도 12~24세 청소년에게 비밀이 보장되는 정신건강 통합서비스 '파운드리'(Foundry)'를 운영한다.

한국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여성 청소년 건강지원단 '나는봄'이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쁨나눔재단의 장소 대여와 시민들의 후원 덕에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이곳을 찾은 여성 청소년들은 상담과 심리치료, 여성의학과 진료 등을 무료로 지원받을 수 있다. 의료법상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익명을 보장한다.

이곳에서 여성 청소년을 지원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이영희 씨는 "부산, 강릉, 청주에서 아침 기차 타고 올 정도로 나는봄은 위기 여성 청소년들에게 최후의 보루 역할이 돼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간단체인 나는봄이 언제까지 서비스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유사 서비스가 공적 체계로 자리 잡혀 하루빨리 전국에 퍼지길 바란다"고 했다.

▲여성 청소년 건강지원단 나는봄에 설치된 의료기기ⓒ프레시안(박상혁)

본질적으로는 청소년, 특히 여성 청소년을 위기로 몰아넣는 사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책 <여자라서 우울하다고?>를 집필한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프레시안>에 "한국의 교육·양육 시스템은 굉장히 통제적일뿐더러 사회적 기준과 규범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수치심을 주는 방식으로 10대를 억압한다. 특히 여성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통제의 강도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 청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통제력을 느끼지 못하고 좌절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해는 이런 억압 속에서 스스로 신체적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잠시 정신적 고통을 잊거나 자기 몸에 대한 통제력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과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줄이고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위기 여성 청소년을 줄이기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끝)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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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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