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비극인가 희극인가: 연상호의 <실낙원>

[이동윤의 무비언박싱] <실낙원>

* 영화 <실낙원>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실낙원>(2026)의 서사는 기이하다. 모든 사건들의 중심 축은 은폐된 진실을 파헤치도록 이끄는 미스터리 서사 구조로 짜여져 있지만, 정작 영화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데 관심이 없다. 대신 사건에 휘말린 주인공 소영(김현주)에게 선택해야 하는 미션을 부여하고 그녀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는 데 보다 많은 서사적 공간을 할애한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선우(배현성)가 9년 만에 살아 돌아왔을 때 소영은 과연 선우에게 9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살아있는 동안 빨리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는지, 돌아온 자가 진짜 자신의 아들이 맞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응당 질문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역할임에도 이 모든 서사적 질문들은 소영 주변 인물들이 대신 맡아 해소한다. 오직 소영은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을 경계하고, 장성한 아들과 AI 가상 세계 속에 복원된 아들 선우(유지완) 사이에서 갈등할 뿐이다.

미스터리적 요소를 심어 놓고도 이를 충분히 해소하지 않는 것은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선택이다. 이러한 선택은 극적 몰입을 약화하고 서사적 긴장을 해소하지 못한 채 남겨둘 위험을 감수한다. 그러나 <실낙원>은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보다 사건에 휘말린 소영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에 더 많은 서사적 공간을 할애한다. 영화는 미스터리를 해결해야 할 수수께끼로 제시하면서도, 그 해답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지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소영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으로 부상한다. 이러한 서사적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비밀보다 인물의 선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소영과 아들 선우의 행복한 한 때를 담은 사진. ⓒCJ ENM

소영은 9년 만에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받고 곧바로 경찰서로 향한다. 창 너머로 장성해버린 아들을 처음 마주한 그녀는 몸과 표정이 굳은 채로 멈춰선다. 주변 모두가 '기적'이라 칭할 정도로 그토록 바라던 현실이 도래했지만, 소영은 막상 돌아온 아들을 마주하자 그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영화는 이러한 거부감을 선우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설정과 연결한다. 그러나 소영의 태도를 단순히 아들의 잔인성을 먼저 알아차린 결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녀가 마주한 것은 살아 돌아온 아들이라는 기적만이 아니다. 9년 동안 가상현실 속에서 간직해 온 아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 그리고 그 두 존재를 더는 하나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돌아온 소영은 AI로 부활시킨 아들을 찾는다. 어릴 적 선함을 온전히 간직한 가상 현실 속 아들과의 만남에 위로 받는 소영을 보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 작품이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소영이 AI 속 아들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이기적인 모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나의 자녀임에도 내 뜻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외면하는 행동은 자신이 믿고 신뢰하던 세계가 붕괴했을 때 극단적 광기에 휩싸여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려 했던 연상호 감독의 이전 작품들 속 인물들과도 비슷하게 겹친다. <계시록>(2025)의 민찬(류준열)은 자신의 욕망과 범행을 신의 계시로 정당화하고, <얼굴>(2025)의 임영규(박정민)는 자신이 쌓아온 삶을 지키려 아내를 살해한 뒤 진실을 감춘다. <군체>(2026)의 서영철(구교환)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은 인간 사회에 대한 환멸을 키우는 계기다. 민찬과 영규, 영철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응한다. 민찬은 현실을 신의 계시라는 믿음으로 재구성하고, 영규는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진실을 은폐하며, 영철은 인간에 대한 환멸을 극단적인 행동으로 표출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실의 균열을 마주했을 때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형하거나 제거하려 한다는 데 있다. 이들의 태도는 범죄자로 돌아온 아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가상현실 속 아들에게서 위안을 구하는 소영의 모습과 겹친다. 그러나 소영은 이들처럼 자신의 믿음이나 행동을 통해 현실을 지워 버리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두 아들 사이에서 갈등하며 선택을 유예한다. 바로 이 유예의 시간이 <실낙원>을 이전 작품들과 구별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증강 현실로 복원된 선우를 만나는 소영. ⓒCJ ENM

만약 <실낙원>의 서사가 가상 현실의 아들을 선택한 뒤 그를 지키기 위해 연쇄살인마로 돌아온 아들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우리는 이 작품을 이전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선상 위에 올려 놓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소영은 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받으면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고 갈등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여기에 개입하는 서사적 요소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웃집 아이, 하오다. 하오를 납치한 선우는 소영이 경찰에 신고하면 하오가 있는 곳을 절대로 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한다. 대신 자신의 범행을 도우면 하오의 위치를 알려주겠다며 일종의 거래를 제안한다. 그 순간 소영에게 떠밀려 오는 선택은 가상현실 속 아들과 현실의 아들 사이의 선택이 아니다. 현실의 이웃집 아이와 현실의 아들 사이의 선택이다. 가상과 실재 중 어느 쪽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은 잠시 뒤로 물러나고, 대신 타인의 생명과 자신의 혈육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윤리적 문제가 전면에 부상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가상현실이라는 설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설정을 통해 제기했던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두 번째는 가상 현실 속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설정이다. 선우와 함께 아이들이 실종되고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AI 가상 현실 개발 업체 '트랜스 휴먼'은 신기술을 통해 아이들을 복원하는 '낙원의 아이들'을 서비스한다. 증강현실 기술로 마치 아이를 삶 속에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끼도록 만들어 고통 속에 놓인 부모들을 위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신기술을 소영은 9년간 이용하며 낙원을 살아가는 선우를 실체적 존재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상현실 속 존재와 물리적 현실 속 존재를 서로 다른 존재 양식으로 구분한다. 가상현실 속 아들을 실제 아들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소영의 태도는 이러한 구분에 익숙한 관객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가상은 물리적 실체를 지닌 현실과 동일하지 않다는 통념 때문이다. 반면 <실낙원>은 서로 다른 존재 양식을 지닌 대상이 우리에게 어떤 관계를 맺고 영향을 미칠 때, 우리는 어디까지 그것을 실재하는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질문한다.

▲살인을 저지른 선우가 소영에게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제안한다. ⓒCJ ENM

낙원을 살아가는 선우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 할 때 소영은 트랜스 휴먼의 담당자에게 항의한다. 그때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모님들의 고통이 접속하는 동안 낙원의 아이들을 오염시켰다.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도 부모들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낙원의 아이들은 현실 속 부모와 연결되어 부모의 영향 하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가상과 현실이 분명한 경계 선상 위에 놓여 있는 분리된 두 영역이라면 낙원의 아이들은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바라만 보는 대상이어야 한다. 증강 현실로 만나는 아이들은 모두 프로그램되어 있고 프로그램 속에서 아이들은 정해진 각본 속에서 부모와 만나야 한다. 하지만 낙원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영향 받으며 변화한다. <실낙원>은 그 아이들을 가상 속 객체로 치부해버리지 않는다.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존재로서 가상 존재를 단순한 대체물로 취급하는 관점에 균열을 낸다.

이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면 <실낙원>은 기이한 영화가 되어 버린다. 이전의 영화들처럼 가상을 지독한 계시로 받아들이며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도피처로 그렸다면 오히려 <실낙원>은 현재의 관객들에게 좀 더 선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영화였을 것이다. 감독은 정해진 길을 포기하고 대신 가상 현실이 곧 현실일 수 있는 세계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그리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소영을 통해 가상이 곧 실체를 대체할 수 있음을 예시한다.

가상을 대하는 <실낙원>의 태도는 도전적이다. 동시에 현실적이다. AI 기술이 우리의 일상과 관계 형성에 개입하는 오늘날,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다시 질문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물리적 실체를 직접 감각하는 경험만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관계 역시 우리의 감정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그녀>(2014)가 개봉했을 때 관객들은 AI 에이전트와 사랑에 빠지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AI는 더 이상 영화 속 상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상과 실재를 구분하는 우리의 기준 역시 다시 검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선우가 죽었다고 생각한 장소로 꽃을 들고 찾아가는 소영. ⓒCJ ENM

<실낙원>은 그 주장을 관객에게 친절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반대로 극단적 설정 속에서 AI에 기대 의존하는 부모의 위태로운 모습에서 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한다. 돌이켜보면 소영은 마지막까지 아들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들의 범죄를 용서하거나 정당화한다는 뜻은 아니다. 소영은 아들의 범죄를 지워 버린 채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범죄자가 된 아들을 단순히 외면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끝낼 수도 없다. 그녀가 마주한 것은 아들을 사랑하는 일과 아들의 범죄에 책임을 묻는 일이 더는 쉽게 양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영의 선택은 이 모순을 해결하기보다, 그 모순을 감당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시된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에서 어머니(김혜자)는 아들 도준(원빈)의 범행을 알고도 이를 묵인하고, 기억을 잊기 위해 자신의 다리에 침을 꽂는다. 반면 이창동 감독의 <시>(2010)에서 미자(윤정희)는 손자 종욱(이다윗)의 범죄를 마주하고 그를 경찰에 넘기는 선택을 한다. 두 인물은 모두 모성의 이름으로 자녀의 범죄와 마주하지만, 그 책임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다. 한쪽이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한다면, 다른 한쪽은 자녀를 향한 사랑과 별개로 그 범죄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실낙원>의 소영은 이 두 선택의 어느 한쪽에 간단히 놓이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법적 책임을 묻는 현실과, 가상현실 속에서 아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또 다른 세계가 함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소영은 현실의 아들과 함께 죽음을 선택하고, 낙원의 아이들 곁에 머무는 가상의 부모가 된다. 현실의 관점에서 그녀의 선택은 비극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선택을 비극이라는 말로만 봉합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낙원의 아이들 곁에 선 소영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그 행복이 가상에서 비롯했다는 이유만으로 무효라고 선언할 수 있을까. <실낙원>은 가상이 실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가상에서 발생한 감정과 관계를 비실재적이라고 배제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에 따라 소영의 마지막은 비극이 될 수도,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다.

▲<실낙원> 메인 포스터.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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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 연출, 시나리오, 영상문화이론을 전공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2007), <오이시맨>(2008)의 시나리오를 집필 했으며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춘천SF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 했다. 2019년부터 4년 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와 함께 ‘한국퀴어영화사’ 연작 시리즈를 책임 편집 했으며 『A Collection of Korean Queer Cinema』(2023)를 집필하여 영문으로 출간했다. 현재 영화 평론, 시나리오, 영화 연출 등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와 창작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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