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는데 승짱이 홈런을 쳐 울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에서 한국대표팀이 8회 이승엽의 극적인 역전 홈런으로 일본에 승리해 결승에 진출한 후 포수 강민호가 한 말이다. 올림픽 은메달은 병역 면제다.
그런데 경기를 승리로 이끈 이승엽의 경기 직후 인터뷰도 희한하다. 준결승까지 타격부진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펑펑 울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팬이나 국민한테 미안한 게 아니고 후배들에게 미안했단다. 어떤 후배들? 바로 메달 못 따면 군대 끌려가야 할 후배들. 그렇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야구선수들이 똘똘 뭉쳐 우승을 일군 원동력은 바로 병역면제였다.
국가대표 남성 선수들이 메달 자체보다 병역면제에 더 메달렸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정희준의 어퍼컷, "한국 야구가 '사고' 치는 진짜 이유") 이로 인한 논란은 2002년 월드컵 16강에 진출하자마자 (온 국민이 열광하니까) 정치권이 전광석화처럼 병역특혜를 주면서부터 시작됐으니 무려 24년 묶은 논란이다. 월드컵, WBC, 올림픽, 아시안게임 때마다 반복돼온, 참으로 지겨운 논란이다. 이제는 끝을 봐야 한다.
올림픽도 아닌 축구 단일 종목 대회에 16강에 올랐다고 정치인들이 병역을 면제해줬고, 또 족보(?)에도 없고 세계적이지도 않은 야구대회에서 4강에 올랐다고 또 면제해줬다. 정말 한심한 이들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올림픽 금·은·동메달과 아시인게임 금메달로 한정했음에도 요즘 또 이 난리다.
자고로 행정은 공평하고 일관되어야 한다. 타 종목과의 형평성은 무시당했고, 전적으로 남성만을 위한 제도일 뿐 아니라 (맞다. 체육계에서 여성은 부속품일 뿐이다.) 무엇보다 일반 남성들과의 공정성은 처참하게 유린당했다. 목숨 걸고 병역의 의무를 다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을 조롱하다니. 국민 세금으로 운동하면서 연금도 받는데 국방의 의무마저 회피하는 자들이 이를 자랑으로 여기는 한심함을 넘어 군인들을 모욕하는 저 오만방자함은 누구에게서 배웠나. 선배들인가, 스승들인가.
병역특례는 용납하기 힘든 이유가 너무나 많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하나 딴 선수와 은메달 세 개를 딴 선수가 있다. 누가 더 훌륭한 선수인가? 또 병역특례는 법질서의 기본인 비례의 원칙 역시 심각하게 훼손한다. 행위의 수준과 보상 또는 처벌의 수준은 비례해야 한다. 금메달이면 면제고 은메달이면 징집인가! 이렇게 메달 빛깔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 사례에서 보듯 군대 안 가면 감옥 간다. 대한민국의 남성은 장애인이 아니라면 모두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기간도 짧다. 과거 3년이 넘었는데 이젠 고작 18개월이다. 병역의 의무가 국민에게 의무가 되려면 특례라는 예외조항이 있어선 안 된다. 현재 각종 병역특례가 존재하는데 대부분이 각 이익집단의 로비에 의한 생겨난 것이기에 없어져야 할 것인데 나아가 최근 병역 자원이 감소하는 추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몇 가지 절충안도 가능하다. 만약 국제무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선수가 현역 선수 생활 중 군대에 가기를 원한다면 기간을 단축해서 1년만 복무하게 하는 것이다. 프로선수도 한 시즌만 비우면 된다. 만약 선수 수명이 짧고 젊은 시절의 선수생활이 중요하다면 은퇴 후 공익요원으로 3년 정도 봉사하는 것으로 설계해볼 수도 있다. 개인 종목 중 투기 종목이나 예술요원 중 무용 분야도 이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안게임 폐막과 함께 불거진 논란이 안타까운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실수가 '국가대표의 일베화'라는. 혐오문화의 영역으로까지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한 문화장르의 청년들이 사회적 금기가 된 조롱문화의 행위자들로 전락한 지금의 세태는 배재고 야구부의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에 이어 처참한 스포츠계의 민낯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어린 나이에 운동을 시작해서 담임선생님 이름도 잘 모르고, 운동부 아니면 친구도 없고,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볼 기회도 없이 운동기계로 성장한 이들에겐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어찌 보면 이들도, 어린 선수들을 그저 메달 획득을 위한 도구 또는 생계의 방편으로 여기는 협회와 지도자들이 만들어낸, '오직 성적'을 위한 대한민국 스포츠의 희생양 아닐까. 늦기 전에 병역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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