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를 촉구하며 19일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919 기후정의행진', 전북 무주군에서 서 온 푸른꿈고등학교 학생들이 "지구를 불태우는 폭주를 멈춰라"는 현수막을 들고 맨 앞에 섰다. 푸른꿈고 학생들만이 아니다. 시청역에서 숭례문 입구까지 이어진 행렬의 앞자리 3분의 1가량은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들이 채웠다.
이우고등학교와 영림중학교에서 온 류민호·봉새별·송하율 학생은 지난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기후위기대응을위한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이하 탄소중립법)이 청소년의 요구를 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무대에 오른 학생들은 "청소년 1300여명을 포함해 전국 학생회 서명을 받아 탄소감축법 선언문을 국회에 전달했으나, 국회는 우리가 문제삼은 선형 단축안을 그대로 채택했다"며 "초반에 빠르게 단축하지 않을수록 누적 배출량이 커지고 그만큼 미래 세대에게 주어지는 부담도 커진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국회는 청소년을 명백히 기만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은 또한 "청소년의 문제의식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기특하고 어린 시민이 아니라 당당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자 현재를 사랑하고 또 미래를 만들어 갈 시민"이라며 "우리 목소리에 진심을 다해 귀 기울여 제대로 된 개정안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행진은 청소년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는 자리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오디세이고등학교에서 온 임도윤(15) 학생은 "3대 메가프로젝트 등 이재명 대통령이 주도하는 반도체 정책을 그나마 잘 하는 정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행진에서 '기후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들으니 정부의 반도체 정책에 명과 암이 확실히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학생은 청소년이 다른 세대에 비해 기후위기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기성세대의 다음 세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위기가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구를 계속 망친다면 우리가 기성세대가 됐을 때 더이상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진다"며 "힘을 합쳐 대응하면 우리 모두가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청소년들이 기후위기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청소년만이 아니다. 여성, 장애인, 반도체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기후위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각계 시민들이 행진에 모여 들었다.
우다야 라이 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동조합위원장은 "제가 있던 네팔은 지난달 빙하 붕괴와 홍수 재난으로 크나큰 고통을 받고 있다. 전세계 탄소의 0.01%퍼센트를 배출하는 나라가 왜 이 고통을 감당해야 하느냐"며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삶터를 떠나는 이주민을 만들고, 이주민은 또다시 폭염과 폭우, 한파 등 기후위기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 기후정의가 곧 인권인 이유"라고 했다.
반도체 기업 앰코에서 일하는 오세중 노동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가 기후위기와 노동자 건강 모두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과 전기, 노동자의 땀과 같은 공공재를 기업에 아낌없이 퍼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국민에게 떠넘기고, 이윤은 다시 반도체 기업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더는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노동권을 파괴하고 불평등을 강화하는 메가프로젝트를 정부는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미현 참여연대 활동가는 "미국이 이란에 쏟아부은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전쟁에 동원된 전투기와 항공모함 역시 막대한 화석연료를 소모하고 있으며, 문화재 시설들을 제거하는 데도 엄청난 탄소가 배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엇보다 전쟁과 기후위기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위태롭게 한다. 전쟁 중인 이란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산불을 겪는 네팔 등에서 가장 취약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오늘 우리가 탄소 축소와 함꼐 전쟁 지역 파병 반대를 외쳐야 하는 이유다"라고 강조했다.
593개 시민사회단체, 추진위원 1847명, 이밖에 기후정의를 바라는 시민들은 발언을 마친 뒤 세종대로 일대를 행진하며 3대 메가프로젝트·호르무즈 파병 반대 등을 외쳤다. 서울뿐아니라 부산, 울산, 대구, 광주, 대전, 제주 등 전국 17곳에서 동시에 행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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