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환의 산업경제 뷰파인더] 상가 공실률 전국 1위, 세종의 빈 상가를 도심형 산업단지로

세종특별자치시의 거리를 걷다 보면 도시의 화려한 외형과 지역경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새 건물과 잘 정비된 거리 곳곳에 ‘임대 문의’가 붙어 있고, 도시 중심부에서도 오랫동안 불이 꺼진 상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4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세종시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1%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전국 평균 13.0%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세종시와 행복청, LH도 상가 허용 용도 완화, 상권별 맞춤형 지원, 접근성 개선과 소상공인 금융지원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해 왔다. 모두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세종의 모든 빈 상가를 다시 음식점과 카페, 소매점으로 채우는 것이 가능한가?

세종의 상가 공실은 단순한 경기침체의 결과가 아니다. 도시 건설 과정에서 상업시설은 빠르게 공급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업과 민간 일자리, 업무 인구와 유동 인구는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온라인 소비 확대와 역외 소비, 유사 업종의 과잉 경쟁까지 겹치면서 상업 수요만으로 공실을 해소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빈 상가에 또 다른 자영업자를 입점시키는 방식만 반복한다면 한 점포의 공실을 다른 점포로 옮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제 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가게를 더 채울 것인가’에서 ‘어떻게 새로운 도시 기능을 넣을 것인가’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지금은 행정수도특별법 제정 논의와 맞물려 세종의 도시공간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국회에는 세종을 행정수도로 명시하고 국회와 대통령 집무실 설치, 중앙행정기관 추가 이전 등을 담은 특별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고 국회와 대통령실, 중앙행정기관의 기능이 확대되면 세종에는 공무원뿐 아니라 정부 정책과 공공사업에 참여하려는 기업, 협회, 연구기관과 언론, 법률·회계·세무·특허·컨설팅 등 전문 서비스 인력이 모이게 된다. 각종 회의와 행사도 증가하면서 새로운 업무·비즈니스 수요가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특별법이 제정된다고 상가 공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늘어나는 국가 기능과 업무 수요를 지역 경제에 담아낼 공간 전략을 준비하지 않으면 방문객이 회의만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고, 기업은 세종에 주소만 두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세종의 빈 상가를 AI·지식서비스 기업과 스타트업이 일하고 성장하는 ‘도심형 산업단지’로 바꾸자.

여기서 말하는 도심형 산업단지는 거대한 공장이나 법률상의 산업단지가 아니다. 도시 곳곳의 빈 상가를 기업 사무실과 연구개발실, 창업 공간과 공동 업무공간으로 활용하는 분산형 산업공간이다.

AI와 소프트웨어, 데이터 분석, 디지털 콘텐츠, 디자인, 특허·기술사업화, 공공조달과 GovTech 기업은 대규모 공장 부지가 필요하지 않다. 통신망과 회의시설, 기업지원 서비스가 갖춰진 소규모 공간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중앙부처와 국책연구기관이 밀집하고 국회와 대통령실 기능까지 확대될 세종은 이러한 기업에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첫째, 공실에 대한 정밀한 산업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별 공실 규모와 면적, 임대료, 주차, 접근성, 건축물 용도와 소유관계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나성동과 어진동은 의정지원·GovTech·비즈니스 서비스, 도담동은 교육·콘텐츠, 집현동은 AI·연구개발 등 생활권별 특화 기능을 설정할 수 있다.

둘째, 행정수도 특별법 제정에 맞춰 ‘행정수도 산업경제·공간전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국회와 대통령실, 중앙행정기관의 이전 일정에 따라 발생할 업무인구와 기업, 전문서비스 수요를 상가·업무시설·MICE·숙박·문화공간 배치와 연결해야 한다. 기관 이전과 상권정책을 별개의 문제로 다뤄서는 안 된다.

셋째, 건물주와 세종시, 기업지원기관이 참여하는 ‘공실 상가 혁신공간 전환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낮추고 장기임대에 동의하면 세종시는 리모델링과 공동시설 조성을 지원하고, 기업지원기관은 유망기업을 발굴해 입주시킬 수 있다. 공공기관이 여러 상가를 장기 임차한 뒤 기업에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넷째, 공간 제공을 기업 성장지원과 결합해야 한다. 입주기업에 연구개발, 투자유치, 판로, 공공조달과 인재 채용을 통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세종시와 세종테크노파크, 창조경제혁신센터, 대학·연구기관, 지식재산센터가 기관별 사업을 하나로 묶는 협업체계가 필요하다.

AI·지식서비스 기업의 핵심 자산은 건물이나 기계가 아니라 알고리즘과 데이터, 소프트웨어, 특허, 디자인과 브랜드다. 입주기업의 기술을 특허와 영업비밀로 보호하고 우수한 지식재산을 기술가치평가, 정책금융과 투자유치로 연결하는 ‘도심형 IP 사업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기업의 초기시장이 돼야 한다. 행정 AI, 민원 자동화, 의정활동 지원, 정책 데이터 분석과 사이버보안 등 정부와 국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세종기업이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 세종에서 실증한 뒤 공공조달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한다면 빈 상가에서 출발한 작은 기업도 전국 시장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처음부터 대규모 사업으로 추진할 필요는 없다. 공실이 밀집하고 기업 수요가 있는 지역을 선정해 20개 정도의 상가에 30∼50개 기업을 유치하는 시범 사업부터 시작할 수 있다. 성과는 입주기업 수가 아니라 기업 생존율, 매출과 고용, 투자유치, 특허 출원, 공공조달 실적과 주변 상권 매출 변화로 평가해야 한다.

물론 모든 빈 상가를 기업공간으로 전환할 수는 없다. 주차와 소방, 보안, 건축물 용도와 관리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과 근로자가 들어오면 식사와 회의, 쇼핑과 문화소비가 늘어난다. 새로운 음식점 한 곳을 더 입점시키는 것보다 여러 명이 상시 근무하는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주변 상권에 더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세종시는 집현동에 공공임대형 지식산업센터를 조성하고 있고, 나성동에서는 AI융합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개별 시설을 도시 곳곳의 빈 상가와 연결해 여러 생활권이 참여하는 ‘분산형 스타트업파크’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산업단지는 도시 외곽에 공장과 창고를 모아놓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AI와 지식서비스 시대에는 도심의 빈 상가도 기업이 모이고 기술과 지식재산이 만들어지며 청년이 일하는 새로운 산업공간이 될 수 있다.

행정수도특별법 제정은 세종의 법적 지위를 완성하는 일이지만 그것만으로 시민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종으로 이동하는 국가 기능을 기업과 일자리, 지역 소비와 상권 회복으로 연결해야 한다. 행정수도 완성의 성과가 정부청사와 국회 건물에 머물지 않고 도시 곳곳의 꺼진 상가 불빛을 다시 밝힐 때 시민도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세종시는 이제 빈 상가를 단순히 채우는 정책에서 도시의 기능을 바꾸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 행정수도특별법이 세종의 새로운 문을 연다면, 빈 상가를 도심형 산업단지로 전환하는 일은 그 기회를 시민의 일자리와 지역경제의 성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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