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에 군대 대신 평화 특사를 보내자

[정욱식 칼럼] '파병 고심'은 접고 '종전 기여' 방안을 찾아야

이재명 정부의 '호르무즈 파병' 여부를 둘러싼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부 언론에선 국회에 파병 동의안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정부 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미간의 협의도 본격화될 조짐이다. 오는 16〜18일에는 한미 국방 당국의 고위급 회의체인 '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가 부산에서 개최된다. 또 17∼19일에는 조현 외교부 장관이 워싱턴DC를 방문해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과 외교장관 회담을 갖는다. 이들 회의에서 호르무즈 파병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미간에 파병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가 흐르고 있다"며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던 세계의 국가들은 이 사기 같은 전쟁이 모두 끝났을 때 배상해야 하며 배상할 것"이라고 썼다. 스스로 "사기 같은 전쟁"을 벌여놓고선 동맹국 등을 상대로 청구서를 내밀겠다는 위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간 회의의 의제를 잘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동 사태 논의가 불가피해졌다라도 '호르무즈 파병 문제'라는 프레임에 갇히면,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위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정부는 '종전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종전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입장이 현격하게 벌어졌지만, 조속한 종전은 두 나라를 포함해 모두에게 이로운 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태의 악화와 장기화를 초래할 수 있는 '군사적 기여'에는 선을 긋고 '종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외교적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에선 재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와 통제권을 주장하는 이란의 입장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근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란은 종전 조건 가운데 하나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또다시 공격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보장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란은 외교적인 약속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언제든 약속을 뒤집고 공격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에 집착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침략에 맞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두 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강력한 타격을 가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이 해협의 통제권을 장악해 미국 등 외부의 군사적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호르무즈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미국 등 국제사회가 이란에 신뢰할만한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100% 완벽한 방법은 없더라도 상당한 규범력을 갖춘 방식은 찾을 수 있다. 상호 불가침 약속을 포함한 '종전 합의'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형태로 채택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란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수록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도 커질 수 있다. 재개방이라는 큰 원칙하에 이란의 부분적인 통제를 담아낼 수 있는 대안을 찾는 데에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나라가 언급한 바 있다. 한국도 이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이란과도 오랜 기간 우호관계를 맺어온 한국의 위치는 종전 중재와 기여에 나설 수 있는 외교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제 한국도 외교적 지평을 넓혀야 한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와 더불어 이란과 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 파키스탄은 미국-이란 중재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온 나라이자 유엔 안보리의 비상임 이사국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종전을 향한 유력한 파트너로 대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호르무즈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이 아니라 중동에 평화특사를 파견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일 뿐만 아니라 교착 상태에 빠진 '종전 논의'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18일로 예정된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 사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그 일환으로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겠다는 발표가 나오길 바라는 까닭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신간 <자주국방의 가성비>를 출간했습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