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20대와 30대의 이탈이다. 9월 첫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전체 40%였지만 18~29세는 25%, 30대는 31%에 그쳤다. 40대 55%, 50대 49%와 비교하면 세대 간 격차가 현격하다. 지난 몇 달간의 흐름을 보더라도 청년층의 정부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왔기 때문에 더이상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이반이 일어나는 것일까? 가장 손쉬운 설명은 2030 세대의 보수화라는 명제를 다시 꺼내 드는 것이다. 이대남 현상이 부각한 이후 청년층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 때마다 청년세대의 보수화론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지금의 현상을 포함하여 그간의 추세를 그렇게만 읽는다면 정작 중요한 현실을 놓치게 된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거나 철회한다고 해서 청년들이 일관되게 보수정당 지지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특정 정당에 안정적으로 귀속되기보다 무당층으로 남거나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지지 여부를 선택하는 경향도 짙다.
그렇다면 이제 "청년은 왜 보수화하는가"라는 물음을 "왜 개혁정치는 청년들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가"로 바꾸어야 한다. 특히 최근 지지율이 보여주는 청년층의 이반은 국민주권정부의 정체성과 개혁노선을 둘러싼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청년세대, 보수화가 아니라 미래의 상실
대개 최근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부동산 정책과 세법 개정이다. 전체 지지율 하락에 그것이 미친 영향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청년층의 이반에는 더 깊은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청년에게 부동산은 단순히 집값 변동에 따른 손익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향후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결혼하여 가족을 이루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삶의 조건의 문제다. 일자리 부족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소득도 소득이지만, 앞으로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는가라는 전망의 문제다.
지금의 2030세대는 한국 현대사에서 고도성장이 끝난 이후의 '수축사회'를 본격적으로 살아가는 첫 세대다. 저성장과 인구감소, 불안정 노동과 주거불안,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 기후위기와 AI 전환이 한꺼번에 이들의 삶을 압박한다. 비록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지만 부모세대가 가질 수 있었던 '열심히 노력하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진다'는 성장사회의 기대는 수축사회에서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왜 청년들의 불안과 불만은 사회구조의 개혁을 향한 집단적 요구로 모이지 않는가? 왜 개혁과 변화의 목소리가 청년층으로부터 강력하게 분출되지 않는가? 그것은 2030이 겪고 있는 문제가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개인의 실패로 번역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취업이 안 되면 자신의 스펙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집을 마련하지 못하면 투자에 뒤처졌다고 여기며, 입시경쟁에서 밀려나면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받아들인다.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가 개인의 경쟁력 문제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 같은 총체적 시각의 결핍은 같은 처지에 놓인 청년들의 불만이 집단적인 사회개혁 요구로 발전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오히려 한정된 기회를 둘러싼 상호경쟁이 격화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계층과 계층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반페미니즘과 이대남 현상으로 부각된 젠더 갈등 역시 그 같은 사회적 분절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의 청년 남성과 여성은 다같이 불안정한 시대를 살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청년 여성은 취업과 승진의 차별, 돌봄 부담, 안전, 경력단절 등의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면 청년 남성 일부는 군복무와 취업경쟁, 젠더 정책 등을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받아들이면서 심한 박탈감을 느낀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남성은 보수적이고 여성은 진보적이다'는 식으로 설명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놓친다.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왜 같은 세대의 불안과 박탈감이 공동의 사회개혁 요구로 모이지 않고 서로를 향한 적대로 갈라지고 있는가이다. 여기에 수축사회의 그림자가 있다.
기회가 확대되는 사회에서는 다른 집단의 진출이 반드시 나의 손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자리와 주거, 사회적 상승의 기회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얻으면 내가 잃는다는 제로섬 감각이 강해진다. 물론 젠더 불평등과 젠더에 따른 서로 다른 경험 자체를 이런 경제적 불안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늘날 첨예하게 나타나는 젠더 갈등은 젠더에 따른 서로 다른 경험과 구조적 불안이 결합하면서 정치적으로 증폭된 측면이 있다. 구조적 불안정이 심화할수록 분노는 위를 향하기보다 옆을 향하기 쉽다.
청년문제 핵심 고리로서의 대학서열체제
오늘날 청년문제를 야기하는 여러 사회적 구조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지만 흔히 간과되는 것이 있다. 바로 한국 특유의 극단적으로 구조화된 대학서열체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단순한 고등교육기관만이 아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과도하게 형성된 수도권 중심의 대학서열체제는 청년들이 경험하는 경쟁과 불평등, 수도권 집중과 지역격차를 서로 연결하는 핵심적인 제도적 고리다.
대학서열로 인한 극심한 입시경쟁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들의 삶을 규정한다. 어느 대학에 진학하는가에 따라 취업 가능성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고, 그것이 다시 소득과 주거, 인간관계와 미래의 삶을 위한 기회에 영향을 미친다. 출신 대학이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대리지표처럼 기능하는 사회에서는 입시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사교육 시장의 팽창과 부모의 경제력이 입시에 개입하고, 그 결과 계층과 부의 격차가 다시 교육격차로 재생산된다.
더구나 대학서열은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과 결합해 있다.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한 지역의 청년은 대학 진학 단계부터 수도권으로 이동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청년이 빠져나간 지역은 대학과 산업의 기반이 약화하고, 지역의 쇠퇴는 다시 더 많은 청년을 수도권으로 밀어낸다. 그 결과 수도권에서는 주택가격과 주거비가 상승하고 취업과 생존 경쟁은 더욱 격화한다. 결국 대학서열―입시경쟁―수도권 집중―주거불안―지역소멸은 서로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청년의 취업난과 주거난을 이야기하면서 대학체제를 그대로 두거나, 지역소멸을 걱정하면서 수도권 대학 집중을 방치하는 것은 문제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대학이 청년들의 의식과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학은 점점 더 취업 준비기관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학생들은 학점, 자격증, 인턴, 취업시험과 스펙 경쟁에 몰두한다. 같은 강의실의 동료가 함께 사회를 고민하는 동료이기 이전에 취업전쟁에서의 경쟁자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신이 경험하는 고통을 사회 전체의 문제와 연결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대학은 이 악순환을 끊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과 연결하고,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회구조의 문제임을 발견하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토론하고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민주적 공론장이어야 한다. 대학체제 개편은 그래서 단순히 고등교육 정책의 일환만이 아니다. 청년의 파편화된 불안을 사회적 인식과 민주적 실천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개혁의 핵심 과제다.
청년정책을 넘어 개혁정치의 새로운 기획으로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청년을 지원정책의 대상으로만 불러내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년수당, 취업지원, 주거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사후적으로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오늘의 청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몇 가지 혜택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다. 일할 기회, 독립할 기회, 집을 구할 기회, 어느 지역에서든 살아갈 기회,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청년정책을 노동·주거·교육·지역정책을 묶는 구조개혁 정책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특히 대학체제 개편을 그 중심에 놓을 필요가 있다. 대학서열을 완화하고 지역대학의 교육과 연구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수도권 대학에 집중된 교육기회를 전국적으로 분산하고, 지역대학과 지역의 산업·연구·문화 생태계를 연결해야 한다. 어느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더라도 양질의 교육을 받고 그 지역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으며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대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이유도 단지 지역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수도권의 대다수 청년을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수도권으로 청년과 일자리가 몰리는 구조를 완화하지 않고서는 서울과 수도권의 살인적인 주거비와 경쟁풍토 역시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대학을 살리는 것과 수도권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사실상 같은 구조개혁의 두 측면이다.
무엇보다 대학체제 개편은 출신 대학에 따라 삶의 기회가 과도하게 배분되는 구조 자체를 완화한다는 점에서 청년들이 요구하는 공정의 문제와 직결된다. 청년들의 공정 감각을 능력주의에 빠진 결과라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경쟁 속에서 살아온 청년들이 적어도 경쟁의 규칙만큼은 공정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개혁정치가 해야 할 일은 그 요구를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심화하는 것이다. 부모의 자산과 출신지역,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가 평생의 기회를 좌우하는 사회 자체가 과연 공정한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청년의 이탈은 개혁정치에 보내는 경고다
지난 논평에서 필자가 '젊음의 정치학'을 제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젊음의 정치학'은 청년은 본래 진보적이라는 낭만적인 믿음에 따른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사회변화의 충격을 가장 먼저 경험하는 집단이며 그런 점에서 기존질서에 누구보다 먼저 문제를 제기할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저절로 사회개혁의 힘으로 결집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 불안이 자신의 삶을 둘러싼 더 큰 사회문제와 연결되지 못하면 청년의 분노는 정치적 냉소로 흐를 수도 있고, 젠더와 세대 간의 적대로 전환될 수도 있으며, 극단적인 각자도생의 논리로 귀결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2030 세대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단순한 정권 지지율의 문제가 아니라 개혁정치에 보내는 경고다. 청년들이 경험하는 삶의 위기를 개혁정치가 아직 설득력 있는 사회개혁의 전망으로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다. 따라서 청년의 이탈에 대한 해답은 청년정책 몇 가지를 추가하는 데 있지 않다. 노동과 주거, 교육과 지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사회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학체제의 개편이 있어야 한다. 대학서열과 수도권 집중을 그대로 둔 채 청년의 미래와 공정한 기회를 말하는 것은 공허한 수사가 될 수밖에 없다.
청년에게 다시 미래를 돌려주는 것, 젠더와 지역과 계층으로 갈라진 불안을 공동의 사회개혁 요구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대학서열과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여 청년의 삶의 기회를 보다 평등하게 재구성하는 것. 동시에 대학을 각자도생의 경쟁터에서 새로운 사회를 함께 상상하고 토론하는 공론장으로 되살리는 것. 그것이 지금 개혁정치가 감당해야 할 과제이며, '젊음의 정치학'을 현실의 정치로 만드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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