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김정은 조선(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구애'가 관심을 끌고 있다. 트럼프의 희망대로 '연내' 만남이 성사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먼저 따져봐야 할 질문은 '왜인가'이다.
이를 두고 중동 사태가 트럼프의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고,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외교적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유행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트럼프의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은 매우 오래된, 그리고 일관된 것이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권의 꿈을 본격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 조미정상회담을 강력히 원해왔다.(자세한 내용은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 참조)
트럼프는 1999년 10월 24일 미국 방송 NBC에 출현해 "나는 (조선과) 먼저 협상을 할 것이다. 정말 미친 듯이 협상해서 최선의 거래를 이끌어내려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결코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대화를 통해 그 이유를 캐내겠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렇게 미국이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런 일", 즉 미국이 조선을 정밀 폭격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미국 조야에서 불거진 대북선제공격론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트럼프의 조미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은 NBA 스타 출신인 데니스 로드맨이 2013년 2월 평양을 방문한 직후에도 나왔다. 당시 로드맨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는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하고 싶다'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발신했다. 그러자 미국 내에선 로드맨를 향해 '친북주의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트럼프는 달랐다. 미국 방송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데니스는 대단히 영리한 사람"이라며 그가 말한 조미 정상간의 소통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라고 엄호했다.
이랬던 트럼프는 2016년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김 위원장과 만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이를 두고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 측에서 '친북주의자'로 몰아붙여도 트럼프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2017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는 1년 내내 김 위원장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공언한 김 위원장을 상대로 "최대의 압박"을 가했다.
그런데 그해 연말에 오래된 본인의 소신을 비밀리에 조선측에 전달했다. 내막은 이렇다. 조미 간의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7년 말 조선은 제프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이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지만, 트럼프의 생각은 달랐다.
트럼프는 백악관을 방문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 "제프 펠트먼은 평양에 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김정은과 만날 의사가 있다는 점을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전달받은 펠트먼은 평양에서 리용호 외무상을 만나 트럼프의 비밀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에 놀란 리용호는 "믿을 수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펠트먼은 "나를 믿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유엔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메시지를 전달해달라는 위임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펠트먼이 2021년 2월 21일 영국 공영방송 BBC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조미정상회담의 최초 제안자가 트럼프였던 것이다.
1기 행정부 시절에 세 차례의 조미정상회담이 허무하게 끝난 이후에도 트럼프의 욕구는 수그러지지 않았다. 그는 2024년 대선 유세 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 위원장과의 재회 의지를 밝혔다.
특히 7월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나는 그들과 잘 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백악관에 재입성한 2025년 1월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미정상회담 재개에 대한 희망을 지속적으로 표출해왔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최근 트럼프의 '연내' 조미정상회담 추진 의사가 즉흥적으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 배경으로는 오바마나 바이든이 안하거나 못한 일을 '나는 하고 있다'는 과시욕이 깔려 있다. 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아실현 욕구도 강하게 깔려 있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때와 비교할 때 오늘날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1기 때의 목표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실현"에 방점에 찍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이러한 목표를 내려놓지 않는 한 트럼프가 간절히 원하는 김 위원장과의 재회는 성사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트럼프는 '비핵화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퉁치고 넘어간다. 이게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용인하겠다는 것인지, 김 위원장과 만나면 얘기해보겠다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조미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를 가를 최대 변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2기 트럼프는 '코페르니쿠스적 비핵화'를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은 일체 사용하지 않으면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 핵무기를 늘리고 있는 중국이 먼저 핵군축을 추진하면서 조선 등 다른 핵보유국도 여기에 참여해 "세계의 비핵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해온 것이다.
트럼프는 또한 한국전쟁 종식에 관한 의지도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다. 일례로 2025년 10월 29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가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김정은과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더구나 조기 종전을 호언장담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인 미국·이스라엘-이란 사태의 대혼란, 가지지구 평화 구상의 혼선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고 있을 개연성도 존재한다.
세계의 핵군축이라는 큰 그릇에 조선의 핵문제도 담아보자는 것도,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전쟁 종식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자는 것도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전자의 현실성과 타당성은 차분히 짚어보더라도 후자의 동력을 살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때마침 이재명 정부도 평화체제 추진 의지를 적극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힘을 받으려면 한반도 비핵화는 '묵음'으로 처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세계의 비핵화에 담아낼 수 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말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자주국방의 가성비>를 출간했습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